받는 즐거움에서 주는 기쁨으로
자주 보진 않지만 가끔 연말에 삼사 방송연예 대상이나 청룡 영화제를 볼 때가 있다. 상을 타서 기뻐하는 연예인이나 배우들을 보다 보면 “이 장면 웃겼었지”,“이 프로 재밌었지”란 생각이 들다가도 한편으론 괴리감이 든다.
직장인들에겐 왜 한해 노고를 인정해 주는 이런 시상식이 없을까란 생각 때문이다. 물론 회사에서 상을 주기도 하지만 심사기준이 모호할 때도 많고 받는 사람조차 “내가 왜 받는 거지?”라며 어리둥절하는 경우도 봤다. 무엇보다도 이런 일은 드물고 이마저도 극소수에게만 해당된다.
이렇듯 평범한 직장인이 회사에서 인정을 받기란 어렵다. 이 문제는 회사에 대한 기여도를 평가하는 게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맡고 있던 상품 매출이 전년 대비 두 배가 됐다면 이건 내가 잘해서일까? 아니면 시장 상황이 바뀐 탓일까. 또 내가 잘한 걸까 아니면 우리 팀이 잘한 걸까?
이렇게 파고들기 시작하면 머리가 아파온다. 혹은 이익 추구와는 관련 없는 기업일 수도 있다.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도 그렇다, 물건이나 상품을 팔아서 매출을 올리는 직종이 아니라 사회 복지 차원에서 시민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다. 마지막으로 직장인들은 이미 자기 일에 치여 누군가를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이런 여러 이유들로 직장인들은 회사에서 누군가의 인정이나 칭찬을 받기가 참 어렵다. 나는 이점이 참 아쉽다. 나도 직장인이기도 하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원하는 인정과 칭찬을 받기를 원치 않을 리 없기 때문이다.
조직이 크면 클수록 이런 경향은 더 커진다. 그리곤 우리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다는 취급만 받기 십상이다. 이런 냉정한 사실에 원래 그런 거지 하면서 초연해보려 하지만 문득 우린 서러워진다. 이렇게 아무도 우리의 노고를 알아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예전 같으면 인정받을 때까지 인내하라고 했을 것 같다. 하지만 이젠 시대가 달라졌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기념해야 한다.
그래서 난 상장을 만든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 상장 맞다.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친구들 앞에서 이름을 호명하면서 나눠줬던 그것. 조금은 부끄러우면서도 좋기도 했던 그것 말이다. 인사철이 되면 난 상장 용지와 케이스를 사고 한글로 나만의 양식을 만들고 출력해 나눈다.
수상 기준은 내가 생각하기에 열심히 일했다고 느낀 분이다. 지금까지는 나를 포함해 부장님, 과장님 그리고 대리님께 드렸다. 상 이름은 제각각이다. 새로운 업무에 잘 적응하신 분께는 신인상을 드렸고 보고서를 많이 올리신 분께는 최대 기안상을 수상했다. 오랫동안 회사에서 일해오신 부장님께는 공로상을 드렸다. 아. 나는 노력상을 받았다.
상장을 만드는 일은 참 신난다. 부모님이 알면 혼날 일을 몰래 꾸미는 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간 것 같은 설렘을 느낀다. 만들면서도 “이걸 과연 좋아하실까?, 장난친다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란 걱정도 들지만 부엌에 두고 매일 본다는 부장님 말에 나는 이 일을 또 하게 될 것 같다.
우리나라가 세계 2위 노동시간을 가진 국가라는 말을 차치해도 우리는 일을 참 많이 한다. 대부분 직장인들은 하루에 적어도 아홉 시간은 직장에 있다. 따지고 보면 가족보다 동료들을 더 자주 보는 셈이다.
이런 일터에서 보내는 시간은 친한 친구도 가족도 알 수 없다. 아주 가까이 일하는 동료만이 알 수 있는 그들만의 노고가 있다. 나는 이런 순간을 포착해 상장을 만들고 수상한다. 권위 있진 않지만 일을 같이 하는 사람만이 줄 수 있는 그런 상이다.
이렇듯 우리와 같이 지내는 사람을 기념하는 일을 계획해 보면 어떨까? 굳이 상장이 아니더라도 괜찮다. “XX 씨와 같이 일해서 좋아요”라는 말 한마디는 그 사람에게 하루 이상의 행복한 기억을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직장 동료가 아니더라도 괜찮다.
가족, 친구 반려동물까지도 모두 기념해 보자. 덤으로 나까지 주자. 이런 일을 해본 사람은 안다. 내가 받을 때 보다 줄 때 더 기쁘다는 걸. 받는 건 내가 원할 때 할 수 없지만 주는 건 가능하기 때문이다. 여러분도 받는 수동자에서 주는 능동자의 기쁨을 느껴보시라.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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