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냥이 Jun 19. 2023

과장님 모친상에 가지 않은 이유

모처럼 회사에 안 가고 집에서 쉬고 있는데 핸드폰으로 아래 같은 문자 한 통이 왔다. 

[XXX과장 모친상 알림, 장례식장 : 통영 XX구 YY장례식장…]. 내용을 보자마자 가장 먼저 든 감정은 귀찮음이었다. 얼마 전에도 연차를 쓰고도 연달아 경조사에 다녀오느라 제대로 휴일을 즐기지 못했었다.    

  

집에서 쉴 생각에 행복했었는데 갑자기 마음이 심란해졌다. 침대에 뒹굴거리며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했다. 아마 옆에 네 잎클로버가 있었다면 잘린 잎이 수북이 쌓였을 거다. 고민하면 고민할수록 안 가는 방향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그리곤 다음과 같은 가지 말아야 할 이유들이 떠올랐다.   

  

1. 상주인 과장님과 같은 사무실을 공유하긴 하지만 같이 일하진 않는다. 

2. 장례식장이 통영이라 너무 멀다.

3. 문자에 가족장이라 외부 문상을 자제해 달라고 쓰여있었다.     


3번을 보고 '가지 않아도 되겠구나' 란 생각이 들었지만 멀리서 올 사람들을 배려하느라 이렇게 쓰셨다고 생각하니 가야 할 것 같기도 했다. 복잡하게 생각하는 내가 새삼 원망스럽다. '나 왜 이리 꼬였을까.' 


일단 네이버 지도로 우리 집에서 장례식장까지 검색해 보니 차로 5시간 반이 걸린다. 아마 가면 내 황금 같은 연차를 통으로 여기에만 쓰게 된다. 또한 같이 갈 사람도 마땅히 없었고 KTX를 타고 가는 돈도 부담됐다.     


결국은 안 갔다. 내가 위에 가지 않아도 될 여러 이유들을 적었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분의 슬픔이 나에겐 와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머리로는 슬픈 일이라는 걸 알아도 가슴으로는 공감이 안 갔다. 이런 마음으로 조사를 가는 게 내키지가 않았다. 


이런 내 생각은 내가 아직 조사를 안 겪어봐서 그런가 싶기도 하다. 이렇게 내 감정을 솔직히 쓰는 게 무섭다. 다른 사람에게 타인의 마음을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비췰까 싶어서다. 하지만 이렇게 느껴지는 걸 가식으로 포장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막상 가지 않기로 결정하고 난 후에 이 날부터 난 괴로워졌다. 심지어 장례식에 안 온 나를 사무실에서 만난 과장님이 나를 타박하는 꿈까지 꿨다. 나에게 이 일이 어지간히 스트레스였나 보다. 장례를 치르고 회사에 온 과장님을 어떤 표정과 톤으로 이야기해야 할지 고민됐다. 아마 그분은 내가 신경 쓴 것에 반에 반도 신경 안 쓸 텐데 말이다. 이런 걸로 일주일 내내 마음 고생했다. 차라리 갔다 올 걸 그랬나 싶었고 하루라도 빨리 과장님 얼굴을 보고 싶었다. 얼굴을 못 보니 나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나 스스로를 괴롭혔다.


이런 심적 고통을 겪고 나서 경조사 문화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된다. 상대방에 슬픔이나 기쁨을 위로하거나 축하해 주려고 가는 게 경조사의 본질인데, 과연 몇 사람이나 이런 마음을 가지고 가는지 잘 모르겠다. 이보다는 내 사회적 평판이나 내가 겪었던 껄끄러운 마음을 피하기 위해서 가는 느낌이다. 

 

내 결혼식 때를 생각해 보면, 나랑 친하지 않은 사람이 와준 일이 기뻤는지 잘 모르겠다. 앞으로 경조사는 "내가 해줬으니 너도 와"보단 정말 마음을 공유하고 싶은 사람들만 가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사진: Unsplash의 The Good Funeral Guide              

매거진의 이전글 회사 차로 첫 교통사고를 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