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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냥이 Jul 18. 2023

직장에서는 뛰지 마세요.

내 인생의 속도는 얼마인가?


아이들이 크면서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말이 뭘까? 그건 아마 “뛰면 안 돼”일 것이다. 쿵쾅거리는 애들 발소리에 밑에 있는 집이 올라오진 않을까 하는 걱정을 아이 있는 집에선 누구나 한 번씩은 경험한다. 나도 조카를 놀아주려다가 엄마한테 애들 흥분시키지 말라는 핀잔을 여러 번 들었다. 이렇듯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까치발을 몸으로 체득한다. 그런데 성인도 마찬가지다. 그들도 뛰면 안 된다. 마룻바닥에서 뒤꿈치로 바닥을 쿵쾅쿵쾅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심리적으로 급해지면 안 된다는 말이다. 난 이 사실을 회사에 들어온 지 육 개월이 될 때쯤 배웠다. 이날도 난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를 보고 있던 윗 선임인 대리가 나에게 진지한 목소리로 쉬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처음에는 그의 말이 무슨 의도인지 모르겠어서 고개를 갸웃했다. 이런 나를 보고 그는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퇴근 두 시간 전쯤엔 컴퓨터 앞에서 앉아 일하는 척하며 멍 때리라는 거다. 이런 대리 말에 처음으로 든 감정은 반발심이었다. 내가 열심히 일하니깐 지가 눈치 보여서 그런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위에서 까라면 까야지. 아.. 난 참 MZ 하지 못하다. 곧 나는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났고, 다시 바쁘게 일하는 패턴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회사 연차가 쌓여가다 보니 이제는 대리가 왜 그렇게 말했는지 알 것 같다. 늘 열심히 하려다 보니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분명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도 일은 계속 쌓였다. 이상하게도 일을 더 많이 하고 있는데도 줄어들기는커녕 점점 더 일은 많아졌다. 나중에는 점심시간과 야간 쉬는 시간을 빼면서까지 일했다.    

  

이러다가 넘치는 일에 심적으로 부치는 날엔 나만 일한다는 생각에 같이 일하는 동료를 미워하기도 했다. 저 사람은 노는데 나만 일하는 것 같았다. 회사 안뿐만 아니라 밖에서도 문제였다. 모든 에너지를 회사에 쏟고 퇴근해 집에 와서는 기진맥진해 자극적인 음식과 맥주가 당겼다. 이렇게 과식·과음하고 난 후에 내일은 더 피곤했다. 이런 악순환이 지속되니 회사에서 잔실수가 늘어났다. 이런 실수에 괴로워하며 집에서는 자극적인 음식과 유튜브 영상들만 찾았다. 이렇게 자극적인 것에 몰두한 후에 찾아오는 깊은 공허감은 덤이었다.  

   

난 계속 뛰어다니면서 열성적으로 일하는 사람이 좋아 보였다. 하지만 보는 것과 실제는 달랐다. 이렇게 계속 일하다 보니 번아웃이 찾아왔다. 사람은 전선만 꽂아두면 일하는 기계가 아니다.     


심리학엔 투쟁·도피 반응이라는 개념이 있다. 옛날에 길에서 갑작스럽게 호랑이를 만나면 우리는 이런 상태가 됐다. 고등적인 판단을 담당하는 대뇌 전전두피질이 둔화되고 원초적인 뇌 부분인 편도체가 활성화된다.  

   

그러면서 심장은 피를 강하게 수축해 각 기관을 보내어 우리가 도망치거나 맞서 싸우는 것을 용이하게 만든다. 스타크래프트란 게임에서 마린이 스팀팩 먹는 것과 같다. 스팀팩을 사용하면 순간적으로 이동속도와 공격속도가 빨라진다. 하지만 체력이 단다. 즉, 우리도 이런 상태가 되면 몸은 손상된다.     


나는 이 점을 몰랐다. 아니 이론적인 지식은 알았던 것 같기도 한데 실제 삶에 연결할 생각은 못했다. 지식을 아는 것과 그것을 삶에 적용하는 건 엄연히 다른 분야다. 거기다 일을 열심히 한다는 그 기분 자체에 취해 있기도 했다. 내가 회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좋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리 큰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볼 때 이런 각성 상태에선 일의 능률은 떨어진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런 내 행동은 어리석었다. 투쟁·도피 상태에선 본 문서를 보고 또 봤고 일을 할 때 몸부터 움직였다. 계획 없이 일하니 당연히 시간이 오래 걸리고 힘은 더 들었다. 이런 상태에 괴로워하다가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나에게 문제가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 후로는 다음과 같이 일하는 방식을 바꿨다. 


무작정 일에 돌입하기보다는 체크리스트를 만들었다. 일상적으로 해야 할 일과 특별히 해야 할 일을 구분해 적었다. 그리고 여기에 A, B, C 등을 붙여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할 일의 순위를 부여했다. 마지막으로 오전과 오후를 나눠 각각의 시간에 어떤 일을 할지 미리 계획했다.   

  

점심시간에도 일하거나 핸드폰 하곤 했었는데, 이제는 이십 분 정도 독서 하고 사십 분은 낮잠을 잔다. 이렇게 잠깐 쉬고 나니 오후에는 한결 개운해진 상태로 일할 수 있었다. 

     

순간적으로 일이 몰려서 마음이 급해질 때는 오히려 컴퓨터 앞을 벗어난다. 너무 오래 비우면 하기 싫은 마음이 커지니 한 5분 정도 사무실 밖을 걷고 돌아와서 다시 일에 집중한다.  

    

이렇게 내 일하는 방식을 바꾸고 속도를 의도적으로 늦췄는데도 불구하고 능률은 전보다 높아졌다. 오히려 전 보다 더 많은 양의 일을 훨씬 더 쉽게 처리한다. 롤이란 게임을 할 때는 죽을 뚱 살 뚱할 때는 오히려 이기기 힘들다. 차분한 마음으로 가볍게 해야 승률이 잘 나온다. 이렇게 이기다 보면 게임이 참 쉽게 느껴진다. 일도 비슷하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무언가를 해나갈 때 우리만의 속도를 지킬 필요가 있다. 누군가는 이런 모습을 이기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건 이기적인 게 아니다. 모두에게 이롭다. 개인으로는 더 많은 양의 일을 덜 힘들게 수월하게 해낼 수 있다. 남은 에너지로 여가 생활을 즐길 수 있는 건 덤이다. 회사 입장에서는 개인이 더욱더 큰 퍼포먼스를 내고 장기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니 좋다. 괜히 고소득 연봉자들이 즐비한 실리콘 밸리에서 명상을 권장하는 게 아니다.      


물론 일이 쏟아져서 이럴 여유가 없다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분명 조절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사실 우리가 일을 빠르게 만들고 있는 부분도 있다. 최근에 읽었던 <도둑맞은 집중력>에서 작가는 몇 개월동안 이메일을 차단하고 쌓여있을 메신저를 다시 확인할 생각에 두려웠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확인했을 때 생각보다 적은 양이 있었고 두 시간 안에 처리할 수 있었다. 이렇듯 우리가 빠르게 움직이면 세상은 더 빠르게 우리에게 대응한다. 우리가 의도적으로 늦추면 세상도 늦어진다.


Image by Ryan McGuire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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