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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냥이 Aug 03. 2023

바로 위 선임이 과장이다.

이제 회사 다닌 지 삼 년이 다 돼 간다. 그동안 신입도 열 명 넘게 들어왔단다. 남 얘기 하듯 썼는데 맞다. 남 얘기다. 내가 있는 곳으론 한 명도 충원이 안 됐다. 덕분에 삼 년이 다 돼 가도록 막내 노릇 중이다. 이러다 막내생활만 하다가 대리달 게 생겼다. 경험하진 못했지만 꼬인 군번이 이런 건가 싶다.      


이런 상황에 내 바로 위 사수가 과장이다. 나랑은 경력 차이가 15년 이상 난다. 그가 회사에 입사했을 땐 난 중학생이었다. 전 사수인 대리가 있을 땐 그와 일을 나눠서 했다. 일은 많았지만 분산이 되니 할만했다. 그런데 과장이 사수로 오고 난 이후로 대리가 하던 일이 나에게로 온전히 돌아왔다. 


과장은 행정업무를 거의 하지 않는다. 물론 물건을 사고 영수증처리를 하는 잡다한 서무업무 같은 것들은 안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본인이 담당자로서 해야 할 일도 안 한다. 현장에 나가 일을 하고서 사무실에서 거기에 해당하는 행정적인 업무들을 처리해야 하는데 그것도 안 한다. 그래서 다른 조에서 이런 일을 부담하고 있다. 말은 안 하지만 거기서도 불만이 분명 있을 거다.     


그러다 보니 가뜩이나 할 것도 많은데 그 과장의 일까지 넘어올 때가 종종 있다. 다른 조 대리들은 과장에게 직접적으로 얘기하기가 어려운지 나에게 이야기한다. 이런 식으로 몇 번 이어지다니 보니 다른 조의 사람들도 내가 담당자로 인식하고 있다.      


업무분장을 다시 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에 조장은 네가 해야지 어쩌겠느냐는 말뿐이다. 위에 불만을 잔뜩 토해냈지만 그럼에도 일 자체는 할만하다. 우리 회사에 다른 곳보단 우리 근무 지역이 힘들긴 하다. 그럼에도 공무원·공기업 특성상 근무시간 이내에 끝내지 못할 일은 거의 없다. 그리고 지금 있는 곳은 교대근무이니 못하게 되면 다른 조가 할 수도 있다.     


요컨대 근무 시간에만 열심히만 하면 다 끝낼 수 있을 정도다. 그런데 사람은 비교의 동물이다. 월에 500 받더라도 옆 동료가 1000 받으면 불만이 생기는 게 사람이다. 나도 그렇다.     


일을 하나씩 처내다가도 맞은편에서 이어폰을 끼고 깔깔대는 사수 목소리를 들으면 순간 울컥한다. 일어나서 나만 일하냐고 고래고래 소리치고 싶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나만 미친놈 될 걸 아니 참는다. 꽉 깨문이의 긴장을 풀고 크게 심호흡을 한다. 그래도 감정이 요동친다.      


나보다 두 배는 넘는 월급을 받아가면서 일은 이분의 일만 하는 이 상황이 화가 난다. 이런 상황을 중재해주지 못하는 조장이 원망스럽고 무사태평한 사수도 밉다. 두 분 다 불의에 대해 분노하고 기득권을 싫어한다. 하지만 이런 일은 방관한다. 나에겐 그들이 기득권이다.


그럼에도 마냥 그가 싫은 것만은 아니다. 일에는 소극적이지만 넉살도 좋고 성격도 좋다. 자식 네 명을 부양하며 교육비 걱정을 하는 과장 모습을 보면 연민의 마음도 든다. 가끔 밥도 사주고 커피도 사준다. 밉든 곱든 같은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기에 쌓이는 정이 분명 있다. 일로 만났기에 이런 불만이 생겼지만 다른 조건에서 만났다면 좋은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갑자기 이렇게 원망하는 게 미안해진다. 머리 아프다. 아예 싫었다면 미워만 하면 될 텐데 좋았다 미웠다 해야 하니 감정소모가 더 심한 거 같다.          


내가 좋아하는 김영하 작가는 쓴 <읽다>라는 에세이에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고 나는 복잡하게 좋은 

사람인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대체로 복잡하게 나쁜 사람이라는 것을.”라는 말이 나온다.      


이 말처럼 그도 나도 대체로 복잡하고 나쁜 사람일 거다. 내가 불만이 있듯 그도 나에게 불만이 있을 수 있다. 이렇게 일희일비하면서 하루하루를 지나 보낸다. 지금 힘든 만큼 나중에는 편할 거야라며 합리화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다윗왕의 반지에 새겨진 문구처럼 이런 힘듦도 곧 지나갈 것이다. 그리고 언제 이런 일이 있었나 싶듯 살아가겠지.                


Andrea Piacquadio님의 사진: https://www.pexels.com/ko-kr/photo/37607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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