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낙이 많을수록 우리는 행복해진다.
HJ와 퇴근길에 만나 집 근처 추어탕 집으로 갔다. 퇴근 시간이 이십 분 정도 차이나는 우리는 평소엔 따로 집에 가지만 이 날은 운이 좋았다. 나는 십 분 늦게 HJ는 십 분 일찍 나와 출근길 타이밍이 맞았다.
식당에 들어가 창가 옆 자리에 앉아 추어탕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맞은편 테이블에서 다음과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담배랑 이거 없으면 무슨 낙으로 살아?”40대로 보이는 아저씨가 술병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아저씨는 웃으면서 이야기했지만 난 이 말이 서글프게 들렸다.
인생의 즐거움이 두 가지밖에 없다는 말 때문이었다. 이 세상에 즐길 게 얼마나 많은데 그중 술, 담배만 낙이라고 말하는 걸까. 물론 농담으로 얘기하셨을 수도 있겠지만 여기엔 일말의 진실이 담겨 있다고 느껴졌다. 세상에 태어나 한정적인 즐거움만 누리고 간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특히 술 같은 것들은 쾌락의 강도가 강력해서 다른 소소한 낙들로 누릴 수 있는 즐거움들을 무뎌지게 만든다. 물론 이것만 하면 행복하지 않냐고 말할 수도 있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이런 쾌락들은 금세 익숙해져 우리는 더 강력한 것을 찾게 된다. 한 잔이 한 병 되고 곧 두 병 되는 건 시간문제다. 이렇게 강도를 점점 높여간다 보면 이 행위를 하는 동안은 즐겁지만 나머지 시간은 공허감에 빠져 살게 된다.
이렇게 사람은 망가진다. 내가 해봤기 때문에 안다. 결국,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소소한 낙들을 지키고 늘리며 살아갈수록 행복해진다. 음식에 반드시 향신료가 필요하진 않지만 있으면 음식을 더 다채롭고 풍미 있게 먹을 수 있다는 어디서 본 비유가 떠오른다. 이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낙들은 우리 삶을 좀 더 다채롭고 풍미 있게 만들어 준다.
나 또한 지극히 소소한 낙들이 있다. 미세먼지가 없는 맑은 날 구름 보는 걸 좋아한다. 또 테이블 간에 거리가 넉넉한 카페에 가는 것도 좋다. 거기서 아이스라테를 마시며 좋아하는 저자의 책을 보는 것은 나에겐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다.
그 밖에 헬스를 하고 샤워한 후 거울너머로 펌핑된 내 몸을 바라보는 것도 좋다. HJ가 내 말장난에 크게 웃을 때도 큰 행복감을 느낀다. 글쓰기도 내 낙 중 하나다. 창작의 고통을 이겨낸 후 그럴싸한 글을 발행한 후에 느끼는 후련함은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알 수 없는 즐거움이다.
이런 수많은 낙들이 내 삶을 잘 살아갈 수 있게 지탱해 준다. 가끔 게임에 빠져 한 가지 즐거움에만 몰두할 때가 있는데, 귀신 같이 우울감이 찾아온다. 몸과 마음이 내게 주는 경고 사이렌이다. 이렇듯 한 가지 낙에만 의존하는 건 위험하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낙의 개수가 많을수록 행복해지는 것 같다. 그리고 이런 낙들이 모여 삶의 풍파로부터 우리 삶을 튼튼히 지탱해 준다. 소소한 즐거움이 있는 사람은 힘든 상황에서도 잘 견딘다. 인생의 즐거움이 없다는 사람도 있을 거다.
이런 사람에게는 뭐라도 해볼 것을 추천한다. 종목을 추천하긴 애매하다. 사람마다 꽂히는 부분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나만의 즐거움은 그냥 생기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려고 꾸준히 노력할 때만 우리에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인생이 건조하게 느껴진다면 작은 것이라도 좋다. 뭐라도 해보시라. 이런 시도가 반복될수록 우리는 점점 더 행복해질 테니깐.
Brett Sayles님의 사진: https://www.pexels.com/ko-kr/photo/210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