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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냥이 Jun 24. 2023

당신은 책을 보는 가? 읽는가?

잠깐 하려고 했던 카톡이 두 시간 넘게 이어졌다. 친구 A와의 대화였다. 안부로 시작된 카톡이 현재 읽고 있는 책 소감부터 우리나라 교육 문제까지 이어졌다. 평소 독서모임을 해도 세 명이서 한 시간 반 이상을 떠들기도 힘들다. 그런데 사랑하는 연인 사이도 아닌 서른 넘은 남자 둘이서 두 시간이나 카톡 하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원래 이랬던 건 아니고 A가 최근 독서와 글쓰기 시작하면서 이런 날이 잦아졌다. 그는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면서 드는 생각을 나에게 공유한다. 그러면 나도 그 생각에 자극받아 한마디 보탠다. 그렇게 서로의 생각이 하나씩 얽히면서 긴 시간 티키타카가 이어진다.     

 

이 날도 이랬다. 원래는 삼 십 분을 채 넘기지 않는데 이 날은 서로 주파수가 일치했는지 대화가 술술 이어졌다. 한 주제에서 다른 주제로 대화가 끊김 없이 자연스럽게 넘나들면서 이어졌다.    


이런 대화를 하다 보면 상대방과 바둑을 두는 기분이다. 나의 의도를 가진 한 수를 상대에게 보여주면 상대방은 거기에 반응해 또 자신만의 한 수를 둔다. 이렇게 치열하게 수를 주고받다 보면 어느새 하나의 대국이 완성된다. 우리 대화도 그랬다. 서로 맥락이 없는 이야기들을 주고받는 과정 속에 평소 뭉그러져 있던 추상적인 개념들이 구체화되는 쾌감을 느꼈다. 


친구와 카톡 하면서 많은 얘기를 나눴는데,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친구 A의 책 읽는 태도였다.      


A는 책을 읽을 때, 단순히 내용만 읽지 않는다고 한다. 이 얘기를 듣고 속으로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책을 읽은 지 얼마 안 됐는데, 내용도 소화하기 벅찰 텐데’그런데 다음 이어지는 친구 설명에 무릎을 탁 치고 감탄했다.     

A는 작가가 어떤 마음으로 이런 글을 썼는지 상상하면서 읽는단다. 작가는 어떤 삶을 살았기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됐고 어떤 관점에서 글을 쓰고 있는지를 고민한단다.      


예를 들어, C작가가 “인간은 동물보다 우수하다”란 주장을 했을 때 인간이 동물보다 우수하다는 논리를 이해하는데 그치지 않고 작가가 당시에 살았던 동물에 대한 인식과 이와 관련된 어떤 경험을 가지고 있기에 이런 글을 쓰게 됐는 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이렇게 사유하는 과정을 거치다 보면 머리가 뜨거워지고 지끈지끈해지는데 이런 과정을 즐긴단다. 보통 사람은 이렇게 머리 아픈 걸 싫어해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 이것까지 기꺼이 즐긴다고 하니 감탄스러웠다. 


내 경우 저자의 권위에 눌려 지식을 흡수해 나가는데 급급했었는데 이런 얘기를 들으니 내 책 읽는 태도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됐다. 책을 읽는 방식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어떤 사람은 책을 본다. 글자의 내용을 이해하는 식이다. 우리가 교과서를 보면서 학습했던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어떤 사람은 책을 읽는다. 교과서의 내용을 단순히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 이 이론을 만든 사람이 어떤 관점에서 이런 이론을 제시했는 지를 생각하는 것이다. 훨씬 더 깊은 독서라고 할 수 있다. 좀 오버해서 작가와 대화하는 경지라고 할 수 있다.     


독서를 시작한진 얼마 안 됐지만 책을 대하는 태도 자체는 나보다 훨씬 우수했다. 조금 더 일찍 독서를 시작한 내가 현재는 지식이 조금 더 많을지 모르지만 머지않아 큰 차이가 없어질 거라고 본다. 자기가 스스로 읽고 판단하는 사람은 지식과 지혜가 복리로 쌓인다. 얼마 전에 읽었던 이어령 작가님의 <마지막 수업>이 떠오른다.   

   

한 권의 책을 다 읽어도 모르는 거야. 책 많이 읽고 쓴다고 크리에이티브가 나오는 것 같아? 아니야. 제 머리로 읽고 써야지. 일례로 번역은 창조지만 학술논문은 창조가 아니거든. “               


사진: Unsplash의 David Lezc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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