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지 고민이 될 때 해봐야 할 질문.
대학교에 입학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대학교만 들어가면 모든 게 해결될 거라는 내 생각이 깨지자 더 큰 혼란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처음엔 일기였다. 내 고민들을 무작정 메모장에 휘갈겨 적었다. 논리도 근거도 없는 감정의 배설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고함치든 내 감정의 찌꺼기들을 빈 종이 위에 쏟아 내고 나면 조금이나마 속이 풀렸다. 난 매운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땀을 뻘뻘 흘리며 시원하다 말하는 사람들의 기분이 이런 것일 거라 짐작한다.
삼십이 넘은 지금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이십 대 때 비하면 거의 없는 수준이다. 전에는 고민에 삶이 휘청 휘청했다면 지금은 '또 찾아왔구나' 생각하며 그럭저럭 삶을 꾸려나갈 수 있을 정도가 됐다. 즉, 불안감이 들지만 거기에 크게 사로잡히지는 않는다. 자연히 글 쓰는 목적도 바뀌었다.
감정의 배설이 목적이었던 전과 다르게 지금 내가 글 쓰는 이유는 내 생각을 좀 더 명료하게 만드는 데 있다. 초안을 빠르게 적고 글을 수정해 나가는 작업이 즐겁다. 한 번에 수정을 거칠 때마다 좋아지는 글을 볼 때마다 뿌듯하다. 두툼한 찰흙덩어리를 나만의 모양으로 조각해 나가는 느낌이다. 예전에는 살려고 적었다면 지금은 잘살려고 적는다.
그런데 이렇게 즐거움을 느끼다가도 “내가 정말 글쓰기를 좋아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대부분 보면 마감일이 다가왔는데, 글을 못쓰고 차일피일 미룰 때다. 억지로 꾸역꾸역 쓴다는 느낌이 들 때 주로 이런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마감 일을 없애면 생각만 하고 또 쓰지 않을 나를 안다.
이런 마음은 PC방에 가서 글을 쓰는 친구 A를 보면서 더욱 심해졌다. "난 PC방까지 가서 글은 못쓸 것 같은데, 그럼 난 사실 그 정도 좋아하는 건 아니지 않을까?"란 생각에서였다.
일곱 명의 작가들이 합작해서 쓴 책인 <작가의 루틴>에서는 자신의 감정과는 별개로 어떤 일을 꾸준히 해나가고 있으면 좋아하는 걸로 봐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한다. 나도 이 정의에 따르면 어찌 됐든 꾸준히 써내려 가고 있으니 좋아하는 거 아닐까란 생각이 들다가도 왠지 모르게 '정말 그런가?' 하며 반문하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이런 고민에 갈팡질팡 하다가 최근 독서모임에서 받은 질문을 통해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어느 정도는 찾은 것 같다.
독서모임이 거의 끝날 무렵, 책을 발제한 P님은 모두에게 만약, 경제적 자유를 이뤘다고 하면 어떤 하루를 보내겠냐고 물었다. 그 질문을 받자마자 내가 돈으로부터 해방된 삶을 산다면 어떤 삶을 살지 곰곰이 떠올려 봤다. 직장은 더 다닐지 자신할 순 없었고 책은 지금보다 더 다양하게 볼 것 같고, 여전히 글은 쓸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이때, 깨달았다. '아 내가 글 쓰는 걸 좋아하는구나' 돈을 안 벌어도 되는데 쓰려고 할 정도면 좋아한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 거다. 이제 좀 더 당당히 글 쓰는 거 좋아한다고 얘기해도 될 듯하다. 그리고 내가 왜 이런 질문을 던졌는 지도 알 것 같다. 짧은 주기 속에서 쓰는 글에서 만족감을 못 느꼈던 것 같다. 내가 쓰고 싶은 것보다는 써야 하는 것을 쓰는 스트레스도 있었을 거다.
조건은 달라진 게 없는데 마음이 달라지니 쓰는 게 새삼 즐겁다. 최근에 봤던 책인 <도둑맞은 집중력>에서 칙센트 미하이가 예술가들을 밀접 연구했는데, 그들이 작품을 만드는 과정 자체를 즐긴다는 내용이 인상 깊었다. 다. 그래서 한 작품이 완성되면 미련 없이 다음 작품으로 달린다는 거다. 과정 자체를 즐기던 과거에 내가 떠올랐다. 다시 그 마음을 되찾을 때가 온 것 같다.
Andrea Piacquadio님의 사진: https://www.pexels.com/ko-kr/photo/37607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