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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keone Jan 26. 2016

악마/만년필

신청해주시는 소재로 짧은 이야기를 만들어 드립니다.

눈이 시큼거릴 정도로 따가운 햇빛이 내리쬐는 오후. 거대한 창을 뚫고 햇빛을 따라 내려가니 그곳에는 만년필 하나가 나뒹굴고 있다. 만년필 끝에는 붉은 잉크가 눈물처럼 매달려 있다. 그 뒤로 양복을 입은 한 남자가 갸냘픈 호흡을 겨우 유지해 보려하지만 끝내 숨을 거두고 만다.


폭우는 아니지만 우산도 없이 맞는 안개같은 비는 기분 나쁠 정도로 살갗에 달라붙어 옷이 쩍쩍 달라붙는다.

남자의 손에는 중요한 듯 여러번 비닐로 뒤덮은 서류봉투가 있고 안주머니에는 버젓이 케이스가 있음에도 서류봉투보다 신경써서 포장한 만년필이 있다. 남자는 다이아라도 되는 듯 만년필을 소중히 품에 안고 약속장소에 도착한다. 화장실에서 손수건으로 잠시 매무새를 가다듬고 습기같은 찝찝함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환한 미소를 띄며 상대를 만난다. 상대와 열띈 대화를 주고 받은 뒤 가지고온 서류에 싸인을 받을 준비를 한다.


상대방은 고작 만년필 하나 꺼내는데 한참이나 걸리는 것이 짜증난다. 자신의 볼펜을 꺼내 끄적일까 하다가 눈치를 보고 급히 볼펜을 쥐었던 손에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주머니에서 손을 뺀다. 말로만 듣던 만년필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소문으로만 퍼지는 줄 알았는데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에 넋이 나가버린 것 같았다. 어떤 사람들은 사람보다 그 만년필을 더 신뢰한다는 말을 하곤 했다. 다른 잉크에서는 찾을 수 없는 신비로운 붉은 빛이 마치 혈서와 같은 느낌이 들고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들 이야기 했다. 사람은 거짓말을 하지만 그것은 거짓말을 할리 없다는 알 수 없는 논리였다. 만년필이 누가 만들었고 누가 소유하기 시작했는지에 대한 소문은 무성했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 그가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남자는 이번에도 순조롭게 계약은 성사시키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의 사무실은 거리를 걷는 사람들을 하찮다는 듯 내리깔아 볼 수 있는 높은 위치에 있었다. 단순한 거대한 창문조차 그의 자신감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잠시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만족감에 취해있던 남자는 순간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표정이 일그러지며 뒤로 물러났다. 그 모습에서 자신이 저 아래로 추락할 것에 대한 두려움이 느껴졌다. 보통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의미의 고소 공포였다. 그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비서에게 잠시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달라고 한다. 잠시후 소매를 걷어올리자 약물중독자도 아닌데 팔에 오래되 보이는 상처가 여럿 보였다. 남자는 능숙하게 바늘을 꽂아 자신의 피를 뽑아냈다. 서랍속에 있던 검정 잉크와 적당한 비율을 섞어서 만년필 안에 섞어 넣는다. 만년필로 몇 자 적어보고는 기분좋게 미소짓는다.


남자는 허공에 대고 기도라도 하듯이 중얼거리기 시작한다. 사람의 말이 아닌 듯한 기괴한 말을 쏟아내던 남자는 천장을 바라보며 애원하는 눈빛을 보냈다. 그는 자신만이 열 수 있는 서랍을 열었다. 그 안에는 악마를 숭배하는 듯한 소름끼치는 문양들이 가득했다. 악마에게 감사하다고 말하는 듯 했다. 


잠시후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문에 귀를 기울여 들어보니 남자에게 볼 일이 있어보이는 경찰들이었다. 남자는 패닉에 빠진다. 허공을 보며 자신을 구해달라는 제스처를 취해보지만 아무 변화가 없다.

순간 정신을 차리고 창밖을 내다보지만 도저히 뛰어내릴 용기가 나지 않는다. 숨어보려하지만 숨을 만한 공간도 없다. 점점 그의 방으로 가까워지는 소란스러움에 이성을 잃고 만다. 


이곳에서 더 올라가지 못할 바에 이 곳에서 영원히 머물겠다는 생각으로 그곳에서 영원히 잠들려한다. 제발구해 달라며 악마의 소품인 만년필을 들고 애원해보지만 역시 소용없다. 결국 벽에 머리를 들이박고 온갖 난리를 치다가 결국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마지막 순간에도 남자는 떨어지지 않게 되어 다행이라며 미소지으며 눈을 감았다. 그 모습을 아주 높은 곳에서 가소롭다는 듯 햇빛이 강렬하게 내려다보고 있다.


사람들은 그가 말하는 악마의 실체를 찾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고 남자가 믿던 악마의 실체가 드러났다. 악마는 어디에도 없었다. 악마대신 그 만년필로 적은 듯한 계약서가 있었다. 그것은 금전적인 거래가 아니었다. 마치 노예계약과도 같은 일방적인 계약이었다. 실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의 명령을 이행하면 지속적인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추적을 해봐도 그 누군가의 정체는 결국 밝혀낼 수 없었다. 밝힐 수 없는 것인지 밝히려는 노력이 없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결국 만년필이 만든 악마가 또다른 악마를 만들어 낸 것이었다. 


사건을 어느정도 수습 된 후 다른 형사가 만년필에 관심이 가서 찾으려 해봤지만 이미 사라진 후였다. 수사기관 어느 곳에서도 만년필을 찾을 수 없었다. 지금도 어디선가 휘갈겨지고 있을 만년필에 순간 소름이 끼친다. 형사는 소름을 거두고 빠르게 포기하고 다시 자신의 업무로 돌아간다.




누구나 소재 신청 가능합니다. 

아래쪽 글을 참고하시고 신청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https://brunch.co.kr/@ehdwlsez4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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