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겨울 아침, 아직 깨지 않은 걸음으로 집을 나선다.
무심히 올려다본 하늘은 무거운 회색이고 채도를 잃은 빛깔은 사람들의 얼굴 위로 고스란히 내려앉아 있다.
판화로 찍어낸 듯 닮은 무표정들이 지하철 칸을 채우고, 저마다의 시선은 액정 속에 고립되어 있다.
역을 지나며 사람이 바뀌어도, 금속 차내에 쌓이는 건 단단해진 무표정의 겹뿐이다.
모두 아무런 기대 없이 시간을 쫓는 듯하다.
대부분의 목적지인 교대역을 앞두고 있을 때,
덜컹거리는 기계음 사이로 예상치 못한 다정한 진심이 울린다.
"승객 여러분, 오늘 출근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십니다. 오늘도 파이팅 하시길 바랍니다."
경쾌하고도 차분한 목소리. 늘 같은 시간, 같은 방향을 오가는 출근길에 처음 들어보는 인사다.
종이를 읽는 낭독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건네는 말 같아 마음의 벽에 균열이 생긴다.
그 인사가 회색빛 가면의 겹을 비집고 들어와 예상치 못한 빛깔로 번져 나간다.
이 온기 있는 목소리의 주인은 오늘 몇 시에 출근했을까.
우리가 일상을 시작하려 부대끼는 시간보다 훨씬 이른 새벽, 어둠을 뚫고 텅 빈 열차에 올랐을 그의 아침을 그려본다.
그 역시 출근의 고단함을 먼저 삼켜본 직장인이기에,
이제 막 일터로 향하는 이들에게 건네는 인사에는 동료를 향한 따뜻한 응원이 담겨 있다.
우리의 일상에는 뿌리 없이 떠도는 말들이 많다.
해보지 않은 일, 겪어보지 않은 감정에 대해 가볍게 뱉어내는 말들.
그런 말들은 아무런 힘도 없이 허공에서 흩어지거나, 오히려 마음을 할퀴어 차갑게 식게 한다.
그런 말에는 온기가 없다.
하지만 경험이 깃든 말은 무게가 다르다.
먼저 겪은 이가 건네는 응원, 아파본 이가 건네는 위로에는 굳은살 같은 힘이 실린다.
그 말은 잊고 지낸 온기를 깨우고, 얼굴도 모르는 타인을 기어이 일으켜 세운다.
겨울 새벽 공기를 먼저 가른 기관사가 건넨 "파이팅"에 나 역시 기꺼이 마음으로 응답하고 싶어진 건 그 때문이다.
어쩌면 오늘 아침의 하늘은 처음부터 회색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사소하지만 온기 어린 응원이 무표정의 가면을 벗기고,
가려져 있던 오늘의 다채로움을 기어이 움트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