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각도

3화

by 이동준

명절 전날의 지하철은 물리적인 무게로 가득하다.

너나 할 것 없이 받아 든 선물 상자들이 통로를 메우고 서로의 발등을 건드린다.

짐은 고단하지만, 지하철 안에는 가벼운 공기가 감돈다.

발치에 짐을 내려놓고 주위를 둘러본다.

사람들의 고단한 얼굴에서 내일부터 시작될 휴식에 대한 기대가 읽힌다.


몇 정거장 뒤, 예닐곱 살의 여자 아이와 아버지가 지하철에 올라탄다.

아버지는 내 옆자리에 아이를 앉히고 그 앞에 선다.

아버지를 올려다보는 어린 딸의 눈망울과,

그 시선을 받아내는 아버지의 애틋한 눈빛이 고단한 퇴근길이 무색할 만큼 반짝인다.


그때 아이가 아버지를 보며 조잘거린다.

"아빠, 아까 먹은 붕어빵 진짜 맛있었어. 또 먹고 싶어."


아이의 조그만 목소리는 지하철의 소음과 안내 방송에 묻혀 자꾸만 흩어진다.


아버지는 허리를 푹 숙여 귀를 아이의 입가에 바짝 가져다 대며 묻는다.

"응? 아빠가 못 들었어. 뭐라고?"


"아니, 아까 붕어빵 맛있었다고!"

아이의 대답에 까르륵 웃음이 묻어 있다.


그제야 내용을 알아들은 아버지의 얼굴에도 화사한 미소가 번진다.

"응, 우리 다음에 또 먹자."


아버지는 그 대답을 끝으로 한동안 허리를 펴지 못한다.

아이가 쏟아내는 캐릭터 이야기와 친구들 소식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기꺼이 불편한 자세를 유지하며 아이의 입가에 머물러 있다.


그 온기를 조금 더 가까이 지켜주고 싶어 자리에서 일어난다.

가벼운 눈인사를 건네고 자리를 비켜주자, 아버지는 딸아이 곁에 나란히 앉아 다시 허리를 숙인다.

아이의 작은 목소리를 놓치지 않으려는 다정한 기울임이다.


참새가 지저귀는 모습을 '조잘조잘'이라 한다던데,

아빠를 향해 쉴 새 없이 이야기를 쏟아내는 아이는 영락없는 참새 한 마리다.

아이의 조잘거림에 온 마음으로 화답하는 그의 굽은 등 위로,

불편함을 기꺼이 감내하는 숭고한 사랑이 내려앉아 있다.


사랑은 수려한 선언이 아니라, 상대를 향해 기울이는 물리적인 각도로 증명된다.

그 다정한 헌신은 건조한 지하철조차도 세상에 하나뿐인 온기 어린 현장으로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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