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앉아서 가기는 글렀다.
퇴근길 승강장에는 이미 긴 줄이 늘어섰다.
지하철에 오르는 건 의지라기보다 밀려드는 압력에 가깝다.
그 압력에 떠밀려 멈춰 선 자리, 바로 옆 남자의 공기가 유독 무겁다.
예순쯤 되었을까.
남자는 터질 듯한 누빔 가방을 들고, 근심 어린 표정으로 앞에 앉은 여성을 바라보고 있다.
벙거지 모자 아래로 힘없이 떨궈진 그녀의 손등에는 피멍 든 주삿바늘 자국이 선명하다.
입원실에서 이제 막 나온 환자와 보호자의 모습이다.
여성이 가방을 들어주겠다며 힘겹게 손을 뻗자, 남자는 말없이 손사래를 친다.
대신 그녀의 머리맡으로 바짝 다가선다.
고꾸라지는 그녀의 이마가 온전히 기댈 수 있도록, 그는 기꺼이 제 몸을 내어준다.
아픈 아내의 버팀목이 된 남편의 모습에 마음이 머물 무렵, 그의 휴대폰이 울린다.
스피커 너머로 새어 나오는 딸의 목소리는 걱정이 앞선 나머지 뾰족하게 날이 서 있다.
왜 택시를 타지 않았느냐는, 염려를 가장한 타박이다.
그 날카로운 목소리를 그는 허허 웃으며 둥글게 받아낸다.
시선은 여전히 아내에게 고정된 채다.
"괜찮아. 지하철에 사람 별로 없어. 아빠가 있는데 뭘 걱정해. 너는 어서 들어가 쉬어."
통화를 마친 남성은 아내를 내려다보며 묵묵히 서 있다.
그는 공원의 나무를 닮았다.
누군가에게는 고단한 등을 기댈 그늘이 되어주지만,
누군가에게는 신발 밑창의 흙을 털어내는 거친 밑동이 된다.
딸의 날 선 타박도 그는 그저 받아낸다.
딸은 아빠라는 나무에 불안과 짜증이라는 흙을 문질러 닦고,
아버지는 그 무례한 사랑마저 묵묵히 수용하며 서 있다.
아내의 '기댐'과 딸의 '타박'은 전혀 다른 모습이지만, 결국 하나의 뿌리에 닿아 있다.
어떤 무게로 눌러오든, 어떤 거친 발길질을 해대든
결코 흔들리지 않고 그 자리를 지켜낼 것이라는 절대적인 신뢰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가 이토록 단단하지는 않겠지만,
우리가 마음속 깊이 그리워하는 아버지의 원형은 분명 이런 모습이다.
기어이 내어준 몸과 묵묵히 받아낸 투정.
그 두 가지는 모두 아버지가 가진 너른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
퇴근길 지하철의 무질서한 압력이 다시금 몸을 짓누른다.
하지만 이 숨 막히는 밀어내기 속에서도 문득 숨통이 트이는 건,
내 삶의 거친 하중을 묵묵히 받아내던 한 사람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신발 밑창의 흙을 털어내듯 함부로 대했던 그 단단한 밑동에,
오늘은 뒤늦은 안부를 묻고 싶은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