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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준 Dec 29. 2020

무지한 배려

인종차별에 대한 잘못된 인식

최근 유럽 축구에서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바로 12월 8일 프랑스 파리에서 있었던 파리 생제르망과 이스탄불 바샤크셰히르의 축구시합에서 바샤크셰히르 선수단이 경기 도중 갑자기 시합을 멈추고 심판들과 언쟁을 벌인 뒤 경기장을 그대로 떠나버린 것이다. 그 이유는 경기를 담당하던 대기심이 바샤크셰히르 팀의 한 흑인 감독에게 인종차별적 발언을 한 것 때문이었다. 대기심은 그 감독을 "니그로(Negro)"라고 불렀는데, 이는 '검은색'을 뜻하는 스페인어에서 유래된 단어로, 미국에서 흑인을 낮춰 부르거나 조롱할 때 사용되던 용어이다. 어떤 이들은 이 사건을 보며 별거 아닌 일에 너무 과하게 반응한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지만, 이는 5월 25일에 발생한 미국 미네소타 흑인 사망 사건 이후 끊임없이 “No Room for Racism”을 외쳐오던 유럽축구단체에 반하는 행위였을 뿐더러 그의 인종차별적 행위가 편파판정의 요인이 될 수 있었기 때문에 한 팀 전체가 분노하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함께 있던 바샤크셰히르의 뎀바바라는 한 흑인 축구선수가 경기를 담당하던 심판들과 언쟁할 때에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은 ‘이 백인’이라고 불러본 적 있어? 그냥 이 사람이라고 지칭하잖아. 근데 왜? 왜 흑인을 부를 때는 ‘이 흑인’이라고 부르는 거야?” (출처: 박문성 ‘달수네 라이브’ 유튜브)


이러한 일들이 단순히 스포츠 문화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모든 독자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특정 집단-흑인, 아시아인, 여성, 남성, 장애인, 종교인 등등-이라는 이유로 인해 고의적이고 악의적인 차별적 대우를 받고 있으며 그와 동시에 다른 공동체들로부터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인종차별이 잘못되었음을 완벽히 인지한 채 다른 이들을 향한 차별적인 대우를 없애며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딱히 흑인비하발언을 한 적도 없고,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무시한 적도 없어. 오히려 배려하는 마음으로 그 사람들을 더 챙겨주고 더 도와줬지. 그러니 나는 인종차별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야

대다수의 사람들이 아마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는 완전히 잘못된 인식이며, 만약 당신이 지금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당신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걸어왔던 길에는 인종차별주의자(!)로서 살아갔던 흔적들이 남아 있을 것이다.

최근에 유튜브를 통해서 한국에 거주하던 외국인에게 한국에서의 경험이 어땠는지 질문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그 영상에서 외국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두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주 잘해주죠. 가끔은 너무 잘해줘요, 제가 피곤할 정도로요. 저는 다른 사람들보다 눈에 띄거나, 더 좋은 혹은 더 나은 대접을 받고 싶지 않거든요. 전 그냥 섞이고 싶어요. 하지만 정말 힘들죠. 불평하고 싶지는 않지만 가끔은 그냥 다른 사람들처럼 대해줬으면 좋겠어요.” (출처: 션 파블로 Sean Pablo 유튜브)


'차별하면 안 돼'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우리의 배려와 친절이 때로는 그들이 공동체에 스며들지 못하도록 하는 벽이 될 때가 있다는 것이다. 장애인, 외국인과 같이 오랜 시간 동안 차별을 겪어왔던 사람들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친절과 배려가 아닌 "똑같은 사람으로서의 대우"이다.


"차별"이라는 것은 왜 존재하는 것인가? 인간은 자기 자신과 공통점이 많은 이들에게 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다. 외국인들보다는 같은 국적을 지닌 사람들을 선호하며, 같은 종교, 같은 문화, 같은 생각, 그리고 같은 취향을 갖는 사람들을 찾게 된다. 인간의 이러한 특성에 관하여서 토론토 대 심리학과 교수인 조던 피터슨이 책을 통해 이런 말을 남겼다.

“사람들은 신념(자신만의 관점이나 생각)을 지키려고 싸우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싸우는 진짜 이유는 믿음과 기대, 욕망 등이 서로 일치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기 기대와 사람들 행동이 일치하는 체제를 지키기 위해 싸운다. 그런 것들이 서로 일치해야 모두 생산적이고, 예측할 수 있으며, 평화롭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불확실성이 줄어들고, 불확실성 때문에 생기는 고통스러운 감정의 혼돈도 줄어든다.” (12가지 인생의 법칙 pg.13)


같은 생각,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한다면 그 과정이 비교적으로 수월할 것이다. 반대로 다른 문화,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한다면 서로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일의 과정에 예측 불가능한 일들, 그리고 불확실성이 증가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인간은 서로 다름으로 인해 생기는 갈등을 피하고 싶어 하며 이러한 습성이 자연스럽게 다른 존재에 대한 반감으로 변질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과 생각이 다른 존재를 향하여 부정적인 감정과 함께 반감을 드러내는 것을 시작으로 사회 공동체에 탄생한 것이 바로 “차별”이다.

차별이란 기본적으로 평등한 지위의 집단을 자의적(恣意的)인 기준에 의해 불평등하게 대우함으로써, 특정 집단을 사회적으로 격리시키는 통제 형태이다.

(이 정의를 보았을 때, 차별은 “평등한 지위의 집단”, 다시 말하면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타난다. 즉, 선생과 학생을 다르게 대우하는 것까지 차별이라고 보기에는 어렵다는 것이다. 단순히 모든 인간들을 같은 위치에 있는 존재로서 대우한다는 것이 동등한 대우는 아니다. 동등한 대우라는 것은 각각의 노력과 위치에 맞는 대우를 의미한다. 이에 대한 내용은 "쌤, 저희 허락받으셨어요?"라는 글에서 이미 다루었기에  넘어가도록 하겠다.)

그렇다면 위의 차별의 정의에서 언급된 “격리”라는 것은 무엇인가? 사전에서는 격리를 “다른 것과 통하지 못하게 사이를 막거나 떼어 놓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즉, 위의 두 정의를 기반으로 놓았을 때, 차별이란 사람들을 여러 집단으로 나누고, 그중에서 특정 집단을 사회적 공동체로부터 떼어 놓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의 의도성과는 상관없이 말이다. 


사회에서 드러나는 특정 공동체를 향한 비하적인 발언이나 행위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인종차별은 조롱하거나 무시하는 행동들이다'라는 고정적인 관념을 가지며 살아간다. 그리고 이러한 관념에 얽매여서 오히려 그들을 너무 과하게 배려하는 일들이 사회에 매우 빈번한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이런 배려심에 고마움을 느끼는 사람들도 다수 있겠지만, 때로는 그 배려가 오히려 그들이 원하던 "공동체로 스며드는 삶"에서 멀어지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잘못된 배려의식으로 인해 한국 사회에 탄생한 단어가 하나 있는데 바로 "장애우"라는 용어이다. 이 단어는 한때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부를 때 '친구'라는 의미를 더해서 부르기 위해 벗 우(友) 자를 사용하자는 일종의 배려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이 단어는  의도치 않게 "장애인은 친구가 필요하고 도움이 필요한 대상, 불쌍하고 보호받아야 하는 불편한 사람"이라는 의미로까지 전달되면서 오히려 장애인을 비장애인들로부터 더 분리시키는 모습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수많은 사람들, 심지어 언론이나 공공시설에서도 이 "장애우"라는 단어를 계속 사용할뿐더러 이것이 장애인을 배려하는 행동이라고 믿고 있다. 이와 같은 잘못된 인식과 섣부른 판단으로 인해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여러 사람들이 공동체로부터 더 분리되고 격리되고 있음을 자주 볼 수 있으며, 이것이 우리들의 말과 행동으로부터 시작됐을 가능성도 없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것이다.   


이러한 방식의 비의도적 차별까지 생각한다면 현대 사회에는 아직까지도 인종차별이 만연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장 본질적인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우리는 의도적이고 악의적인 조롱만이 차별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인식해야 한다. 비하적 표현이 최악의 인종차별일 뿐이지 그것이 차별의 전부라고 생각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특별하게 대우받는 것"이 아니라 "구별되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진정 그들을 위해서 해야 되는 것은 그들이 우리와 구별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인식하고, 그들이 우리 공동체에 완전히 녹아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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