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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준 Feb 17. 2021

3단계 독서

    유튜브에 어떤 키워드를 검색하면 그 키워드와 관련이 있는 영상들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영상이 맨 위쪽에 자리를 잡게 된다. 한 번은 단순한 호기심이 생겨서 유튜브에 "독서"라고 검색을 한 적이 있다. 과연 어떤 영상이 가장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을까? 놀랍게도, 검색결과로 나온 모든 영상들을 통틀어 가장 조회수가 높은 영상이자 가장 위에 자리를 잡고 있는 영상은 "독서하는 방법"도 "독서를 해야 되는 이유"도 아닌 그냥 공부하거나 독서할 때 듣기 좋은 음악들을 모아 놓은 영상이었다. 의외의 결과에 조금 놀란 나는 더 궁금증이 커진채로 그 영상에 들어가봤다. 그 영상의 댓글을 통해서 정말 많은 학생들의 이야기를 볼 수 있었다. 각자의 꿈과 목표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 그리고 그것들에 대한 응원이 댓글창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 글들을 하나하나 읽어보며 우리나라 학생들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참 안타까운 기분이 들었다. 그 수많은 위로를 주고 동기부여를 주는 댓글들 중에서 독서, 그 중에서도 학교생활을 위한 독서가 아닌 자기자신을 위한 독서에 관한 댓글은 단 한 개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치열한 경쟁과 “집-학교-학원”이라는 무한의 사이클 속에서 악착같이 공부에 매진하다가 드디어 졸업을 한 수많은 학생들, 이 학생들의 평균 독서량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 아마 평균적으로 보았을 때, 이들이 중학교를 졸업한 이후로부터 읽었던 책의 수는 교과서를 제외한다면 20권도 안될 것이다. 이런 현상이 정말 단순히 학생들이 독서를 싫어한다는 이유에서 시작된걸까?

필자도 이 학생들과 거의 똑같은 길을 걸어왔다. 내가 지금껏 살면서 읽어본 책의 수는 300권이 안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어쩌면 최근 2년 동안 읽는 책 페이지 수가 그전까지 읽었던 책 페이지 수보다 더 많을지도 모른다. 어릴 때부터 책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고, 애초에 내가 자발적으로 책을 읽었던 날들을 손으로 셀 수 있을 정도이다.
이 정도로 필자는 독서에 대한 기반이 제대로 다져져 있지 않은 사람이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난 뒤, 코로나19로 인해 대학에 입학하지 못하면서 생긴 1년이라는 긴 시간을 독서에 투자하고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1년 동안 여러 가지 글을 쓰면서, 내가 쓰는 글들의 퀄리티가 눈에 띄게 좋아지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고등학교를 다닐 때 썼던 글과 최근에 썼던 글을 비교해보면, 정말 다른 사람이 썼다고 생각될 정도로 글의 방향성이나 완성도가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자주 느끼고 있다. 하지만, 이 변화는 다독에서 오지 않았다. 1년 동안 내가 읽은 책은 30권도채 되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에 썼던 글들을 다시 한번 쭉 읽어보면서 ‘내가 어떤 방식으로 책을 읽었기에 독서의 효율을 극대화시킬 수 있었던 것일까?’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러다가 나는 독서를 총 3가지 단계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며, 이번에는 다른 것들보다도 이 독서의 3단계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보려 한다. 참고로 나는 전문가가 아니기에 뇌에 대한 연구를 해본 적도 없으며, 내가 앞으로 말할 “독서 3단계”도 검증된 이론은 아니다. 오로지 필자의 주관성과 경험을 기반으로 쓰여진 글이니, 큰 거리낌 없이 “한 학생의 특별한 독서법”정도로만 참고해줬으면 한다.


STEP 1: 이해

    나이에 상관없이 책을 읽는 모든 사람들은 항상 이 첫 번째 단계를 거친다. 이는 책에 나오는 사건들을 이해하고 그것들의 과정과 결말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파악하는 단계이다. 더 쉽게 말하자면 1단계는 “책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이 과정이 제대로 되지 않은 사람들, 다시 말하자면 책을 읽는데 줄거리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은 독서를 했다고 말하기가 어렵다고 볼 수 있으며, 당연히 그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도 없다.
대부분의 초등학생들이나 중학생들은 보통 이 1단계가 끝났다고 판단되면 책을 덮기 시작한다. 즉, 책 하나의 줄거리가 다 이해됐고, 결말까지 다 봤다면, 그들에게 그것은 이제 더 이상 볼 일이 없는 책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 1단계 독서만 한다고 해서 그들의 삶에 도움이 안 되는 것은 전혀 아니다. 글자로만 되어 있는 책 전체를 이해하는 훈련은 글을 읽는 기술과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줄 뿐만 아니라 언어능력과 이해력이 좋아지고, 인내심까지도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에게 개인적으로 가장 추천하는 독서 방법은 1단계만으로 여러 가지 책을 읽어보는 것이다. 사실은, 애초에 이 스마트폰이 만연한 사회에서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이 스스로 독서를 하고 있다면 그 친구들은 이미 또래 학생들보다 훨씬 더 앞장서서 독서를 하고 있는 상태이다.
하지만, 고등학생이나 성인, 그 중에서도 특히 대학생이나 작가처럼 글을 많이 써야 하는 사람들이 만약 이 1단계 이상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있다면, 자신이 독서를 정말 제대로 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이 1단계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은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가? “이해”단계에서 독서가 끝난 사람들에게는 셰익스피어의 비극이 그냥 가치 없는 막장드라마처럼 느껴질 수 있으며, “레 미제라블”의 자베르 경감이 왜 자살을 했는지도 이해하지 못한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도 그냥 동물들이 농장을 운영해가는 이야기정도로만 느껴질 수 있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그들은 이따금씩 고전명작을 읽어도 그게 왜 명작인지 모른다. 오히려 그들에게는 추리소설이 훨씬 더 가치 있게 느껴질 것이다. 안타깝게도, 많은 고등학생들이 지금 이 상태에 놓여져 있다.
하지만, 다행히도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결코 이 1단계에 하루 종일 머물러 있지는 않는다. 책을 억지로 읽는 사람들을 제외한 17살 이상의 모든 독서가들은 설령 처음에는 1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아주 자연스럽게 2단계 독서로 넘어갈 것이다.


STEP 2: 분석

    이제부터는 작가의 의도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다. 책에서 나오는 특정 등장인물이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저자가 왜 이런 장면을 넣었는지, 이 장면을 통해서 작가가 우리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이러한 것들을 분석해보고 정리하는 과정이다. 한마디로, “분석” 단계에서는 책의 줄거리 혹은 책에서 작가가 한 말의 “의미”를 생각해보고, 이를 통해 작가의 생각과 지혜를 배우게 되는 것이다.
1단계에서는 등장인물의 행동을 봤을 때 ‘아, 이런 식으로 내용이 전개가 되는구나.’라는 생각에서 끝났다면, 2단계부터는 이제 등장인물의 행동에 대해 질문을 하기 시작한다. ‘왜 이런 행동을 했지? 이 행동이 어떤 감정과 어떤 생각에서 시작된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다 보면 반드시 작가의 메시지를 발견하거나 작가가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이 바로 “분석”단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책을 쓰는 대부분의 저자들은 그들의 생각을 책의 내용 속에 주입시킨다. 그리고, 그 생각을 접하게 되는 것이 바로 독서의 가장 핵심이 되는 요소인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누군가의 생각을 접하고 배울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 독서이며, 그 과정이 바로 “분석” 단계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고전명작은 단지 우리보다 조금 더 똑똑한 사람의 생각을 담고 있는 정도가 아니다. 그들은 그야말로 한 시대를 대표하는 천재 수준의 지식인들이다. 그들이 사회를 향하여 말하고 싶은 것들, 그리고 삶을 살아가면서 얻은 지혜를 여러 등장인물의 성격과 또 그들 사이의 사건들을 통해 전달하고 있는데, 이 작업을 하기 위해 그들은 적게는 1년 길게는 30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하곤 했다. 그런 값진 과정을 거쳐서 나온 결과물을 단순히 줄거리만 읽고 그 안에 내포된 상징적 의미를 찾지 못한다면, 과연 천재들의 생각을 제대로 접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다행히도, 모든 책이 작가의 주장이나 생각을 특정 등장인물이나 이야기에 숨겨놓는 방식으로 구성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한스 로슬링의 “팩트풀니스”, 그리고 리처드 도킨슨의 “이기적 유전자”처럼 작가의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독자에게 전달하는 “정보 전달” 형태의 책들이 요즘 독서 문화권의 주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책들은 어린 학생들이 읽기에는 조금 어렵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 대신 1단계 작업과 2단계 작업, 즉 “이해”와 “분석”이 동시에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작가의 생각이 숨김없이 책의 문장에 그대로 적혀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서, 누구든지 블로그나 브런치에 “분석”단계를 마친 뒤 그것에 대한 글을 쓰시는 분들을 쉽게 찾을 수 있으며, 이 글들은 자연스럽게 독자들의 “분석”작업의 보탬이 되고 있다. 그만큼 2단계 작업은 이미 다수의 독서가분들에게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작업으로 여겨지고 있다.


3단계: 재구성 (창조)

    “분석”단계를 마치고 나면 그것에 대한 글을 쓸 때 훨씬 더 논리 정연하고 깔끔한 글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가기는 어렵다. 안타깝지만, 이 “분석”단계에 멈춘 채로 쓴 글들은 4년제 대학을 나온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라면 누구나 쓸 수 있는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이 “재구성”이라는 마지막 단계를 거친 뒤에 그것에 대해 글을 쓴다면, 글을 쓰는 실력이 엄청나게 늘게 될 뿐만 아니라 최소한 1개~3개 정도의 글에서는 정말 엄청난 가치를 지닌 작품이 나올 것이다. 그렇다면 이 “재구성”은 무엇을 하는 과정인가? 바로 책의 내용과 작가의 주장을 내 생각, 내 사상과 대치시켜보는 것, 그리고 책의 내용을 내 생각에 기반하여 다시 구성해보고, 이를 통해 내 것을 직접 만드는 것이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라는 작품을 예로 들어보자. “분석”단계에서는 “멋진 신세계”의 줄거리에 내포되어 있는 행복, 쾌락, 평등, 자유와 같은 여러가지 키워드에 대한 작가의 생각 혹은 주장을 배운다. 그리고 마지막 “재구성”단계에서는 ‘내가 생각하는 행복은 무엇인가, 그것이 멋진 신세계에서 주장하는 행복과 어떤 다른 점이 있는가’를 고민해보고 정리해보는 것이다. 거기에 더해 책 속에서 작가의 질문을 발견했다면 그 질문에 대한 자신만의 답을 만들어보고, 만약 저자의 생각이나 주장이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된다면, 그것에 반박하는 것도 도전해보는 것이다. 이런 모든 과정, 즉 나의 답을 찾는 과정이 바로 “재구성” 단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마지막 단계는 혼자서 새로 구성하고 혼자만의 것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다른 과정들에 비해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리곤 한다. 물론 자기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글들을 참고할 수는 있지만 그 모든 것들을 정리해서 재구성하는 것은 순전히 자신의 몫이다. 하지만, 책 한 권으로 이 3단계 독서까지 마치게 된다면, 그 책은 이미 당신의 것이 되어 있을 것이다. “멋진 신세계”를 이 방법으로 완독한다면, 누군가 “행복”에 대해 물어봤을 때 그것에 대해서 자신만의 완벽한 답을 내놓을 수 있음과 동시에 언제 어디서든지 그 책에 대해서 훌륭하게 설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글을 마치며

    나는 1년간 이 모든 작업을 총 10개의 작품을 통해 진행했다. 비록 1년 동안 이 10개의 책만 읽은 것은 아니지만, 내 독서 시간의 절반 이상을 오로지 이 10개의 작품에 투자했으며, 이는 그만큼 독서의 3단계를 모두 마치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줄거리만 이해하고 끝내는 독서보다는 최소한 2배 이상은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끝낼 수 있는 작업이었다. 하지만, 이 오랜 시간을 거친 독서는 지금까지 얻었던 것들과는 차원이 다른 지식과 지혜를 가져왔으며,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 10권의 책은 내가 살아오면서 읽어온 200여 권의 다른 책들보다 훨씬 더 가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10권 중 9권의 책에 대한 글들을 모아 완성한 것이 바로 "하늘의 지혜"라는 브런치북이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속독이나 다독보다는 이 방법의 독서를 적극 추천하고 싶다. 특히, 독서량이 많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고등학생들, 앞으로 많은 글을 써야 하는 대학생들, 그리고 그 외에 독서라는 가장 가치 있는 여가생활을 선택한 모든 분들에게 이 방식의 독서가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독서는 단순히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는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혼자 생각하고, 배우고, 결론짓는 그 모든 과정까지 독서에 포함되는 것이다. 이제는 줄거리만 이해하고 끝내는 반쪽짜리 독서에서 벗어나 더 효율적이고 더 깊은 독서로 나아가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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