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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준 Mar 17. 2021

변화된 사회에서의 새로운 군주론

지도자의 조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국가를 발전시키고 안정적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필요한 전략, 핵심요인, 그리고 군주가 갖춰야 할 요소에 대해서 묘사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군주론을 읽으면서 가장 주목하는 부분은 지도자가 갖춰야 하는 요소이다. 그는 군주론에서 우리가 지도자라고 하면 흔히 생각하게 되는 모습들- 인자함, 사랑,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부정하고 비판한다. 마키아벨리의 지도자에 대한 완전히 상반된 의견을 보고 많은 사람들은 군주론을 비판함과 동시에 “마키아벨리즘”이라는 정치적 용어를 만들었다. 사전에서는 이를 “국가의 운영이나 일반적인 행위에서 속임수와 표리 부동한 방법을 동원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한 때는 군주론이 많은 이들에게 비판을 받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마키아벨리즘을 옹호하고 그것을 따라가는 지도자가 점차 생겨나기 시작한다. 특히, 히틀러, 스탈린, 무솔리니와 같은 과거의 지도자들은 군주론의 애독가로 불리며 그들의 정치체제는 군주론으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사회는 끊임없이 변화했다. 현 시대에 대부분의 전쟁은 사라졌다. 세계적인 전쟁이 언제 일어날지 모르던 과거의 군주사회와는 달리 이제는 전쟁이 아닌 협력이 각 국가들 사이에 이루어지고 있다. 이와 함께 세상이 발전하고 많은 사람들의 경제력이 안정된 상태에 접어들게 되자 이제 국민들이 눈을 돌린 곳은 정치였다. 그들의 지도자가 어떤 사람인지에 더욱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지도자의 행동 하나하나가 그의 지지도에 영향을 주는 시대가 된 것이다. 심지어 현대 사회에 수 많은 국가들은 민주주의 체제를 갖고 있다. 이는 시민들이 어느 정도의 정치적인 권력을 갖고 있으며 지도자를 향한 그들의 생각과 의견이 직접적으로 지도자의 권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회를 의미한다.

비록 이렇게 변화된 사회 속에서도 많은 지도자들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으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는다고 하지만,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에는 이에 적합한 또 다른 군주론이 필요하며, 나는 그것이 바로 성경이라고 확신한다. 마카아벨리의 군주론에는 부정할 수 없는 한 가지 큰 결함이 있는데, 바로 시대적 한계성이다. 특히, 군주의 덕목에 관한 내용은 현재 시대에서 적용되기 힘든 측면이 상당히 많으나, 그에 비해 성경의 가르침은 기원전부터 쓰여졌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사회환경에 완벽히 적용이 가능하다. 이를 다시 한번 설명함으로써 나는 이 세대의 지도자를 위한 지침서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아닌 예수님의 군주론, 즉 성경이라는 것을 증명하고자 한다.




    마키아벨리가 군주의 덕목에 대하여 얘기할 때 가장 먼저 내세운 주제는 관대함과 인색함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는 지혜로운 군주라면 인색하다는 평판에는 신경 쓰지 말아야 한다 주장하며 지도자의 관대함이 아닌 인색함을 지지하고 있다. 그는 지도자가 너그러움이라는 평판을 얻기 위해서는 끊임 없는 사치에 기울여야 하고, 이는 무거운 과세와 경제적 약화, 그리고 결국 국민들로부터 오는 미움까지 마주할 것이라 주장한다. 그에 반대로 군주가 인색하고 검소한 생활을 하면서 축적된 경제력으로 국방력을 강화하고, 민중에게 부담을 주지 않은 상태에서 전쟁을 할 수 있게 되면서 이것이 오히려 그에게 관대하다라는 평판을 심어줄 수 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은 완전히 다르게 주장하고 있다. 성경에서는 가난한 형제에게 그에게 필요한 대로 쓸 것을 넉넉히 주라고 말한다. 이 두 개의 상반되는 의견 속에서 현재 수 많은 지도자와 미래의 지도자를 꿈꾸는 이들이 더 주목해야 하는 것은 관대함이다. 현대 사회에서 한 지도자가 그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국민들의 그를 향한 신뢰와 기대이다. 과거의 중세시대와 달리 지금의 지도자는 군주의 핏줄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투표로부터 나온다. 이 중요한 선택을 앞두고 국민들이 가장 고려하는 것은 ‘어떤 지도자가 국민들의 삶을 개선시킴과 동시에 더 살기 좋은 국가로 만들 수 있을 것인가’이며, 이것이 곧 지금의 지도자의 사명이 되어왔다. 그런데 이 와중에 인색한 마음을 가지고 대중들을 위한 정책을 베풀지 못하는 지도자가 있다면, 대중들은 그를 향하여 손가락질을 할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인색함으로 인한 부정적인 평판을 신경 쓰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지도자의 평판은 그의 권력 또는 국가의 능력과 직결된다. 과거와 달리 현재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들이 지도자를 향한 반감을 갖게 된다면 그들은 파업이나 시위와 같은 활동을 통해 그들의 정치적 반감을 드러낼 수 있고, 이를 본 다른 국민들 또한 국가를 향한 반감을 형성하는 악순환이 이어지며 결국 지도자에게는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밖에 없다.




    앞서 언급한 파업, 시위와 같은 국가를 향한 저항의 표시를 국민들이 드러낸다면, 과거에는 군주가 단번에 그들을 묵살시키고 군대를 보내 그들을 포함한 모든 백성들에게 두려움을 심어줄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마키아벨리가 사랑보다 더 중요시 여긴 두려움을 통한 통치이다. 그러나 현재의 국가, 특히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지도자가 국민에게 두려움을 가하는 것에는 법적으로 매우 제한되어 있다. 이 변화를 만든 가장 큰 요소는 바로 변화된 법의 위치다. 과거 군주제 사회에서는 왕이 곧 법이었으며, 왕의 명령은 아무도 거역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공화제로써 국가의 지도자 또한 국민들과 같이 법 아래에 있다. 게다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국민의 정치적 참여 및 권력을 인정하기 위해 특정 범위 내에서 파업과 시위와 같은 행위가 법적으로 허락된다. 국민들의 국가를 향한 저항과 그들의 의사표현이 합법화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국민들이 어느 정도의 정치적 권력을 쥐고 있는 한, 지도자의 “두려움”이라는 검은 무뎌질 뿐 아니라 그것을 사용할 때 오히려 국민들의 검을 더욱 날카롭게 만들 뿐이다.


    세 번째로 마키아벨리가 강조한 것은 신의를 저버리는 것의 필요성이다. 그는 지혜로운 군주라면 신의를 지키는 일이 오히려 자기에게 불리할 경우나, 약속을 했을 무렵의 동기가 이미 없어졌을 경우에는 신의를 지킬 수도 없고, 또한 지켜서도 안 된다고 주장한다. 현대 사회에서도 지도자가 되고 싶어하는 자들은 선거 이전에 그들이 지도자가 된 후에 지키겠다 맹세하는 공약들을 내세운다. 수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거주하는 지역이나 그들의 삶을 개선시키기 위해서 지도자 후보들에 대한 공약들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오히려 지도자를 보는 것이 아니라 공약을 우선시하며 지도자를 뽑는 사람들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선출된 지도자가 시간이 지나고 나서 그가 이전에 맹세한 약속들을 저버리는 것은 그를 향한 국민의 신뢰감에 큰 파동을 일으킬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지도자는 국민들 앞에서 어떠한 모습을 보여야 하는가? 진정한 지도자라면 인색함을 드러내기 보다는 국민을 위해 끊임없이 베푸는 모습을 보여주고 국민들에게 두려움을 심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사랑함과 동시에 그들이 정부를 향해 원하는 것들을 듣고 이해할 줄 알아야 하며, 국민들 앞에서 맹세한 약속들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이러한 덕목들이 지도자에게 갖춰졌을 때, 국민들의 그를 향한 신뢰도는 더욱 높아질 것이며, 뿐만 아니라 국민들이 원하는 정책이 반복적으로 추진될수록 국민들은 더 나은 삶을 직면함과 동시에 그들의 경제활동을 가속화시킬 수 있다. 전 세계는 지금 자본주의 경제체제로 구성되어 있다. 이 체제에서 국민들의 경제활동이 가속화된다면 자본주의의 부산물인 자유시장 경제의 이점이 극대화 되며, 결론적으로 국가의 발전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즉,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민들을 위한 베풂과 정책이 그들의 경제활동을 개선시킨다면, 그것이 곧 국가의 힘이 되고 국가의 발전으로 이어지며 이것이 바로 진정한 지도자가 가져올 수 있는 결과이자 지도자가 성공적으로 국가를 통치했다는 증거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관대함, 사랑, 그리고 신의를 지키는 행위는 모두 긍정적인 것이고, 인색함, 두려움, 그리고 신의를 저버리는 행위는 모두 부정적인 것이라고 여기는 이분법적 사고가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우리가 부정적이라고 생각했던 위의 세 가지의 요소들이 오히려 더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가 있는데, 인색함은 지나친 관대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경제적 불안정을 회복시킬 유일한 수단이며, 엄격한 법의 처벌을 통해 심어주는 두려움은 국민의 불법행위나 비윤리적 행동을 미리 차단함으로써 사회를 안정적으로 유지시킬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다. 만약 경제적 및 사회적 환경에 갑작스러운 변화가 생긴다면 불가피하게 이전에 맹세했던 공약을 지키지 않는 것이 더 올바른 선택일 때도 있다. 중요한 것은, 위 세 가지가 마키아벨리즘, 즉 지도자 개인의 권위나 이득을 위해 사용된다면 비극만을 불러올 뿐이지만, 사회 전체의 이익 그리고 공동체의 안정성을 위해 사용된다면 오히려 사회를 훨씬 더 안정적이게 지탱해주는 뿌리의 역할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지도자라는 것은 국가를 통치하는 리더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는 한 소규모 모임의 지도자고 누군가는 한 기업의 지도자이며, 또 누군가는 한 나라가 아닌 지구 전체를 이끌어갈 지도자로서 존재하고 있다. 이들 또한 각자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성경에서 가르치는 지도자의 모습을 닮아야 한다. 지도자를 따르는 사람들이 없다면 그의 존재는 의미가 없다. 지도자가 한 공동체를 이끌어가고 그 공동체의 궁극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들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들에게 과도한 인색함, 두려움을 심어주는 행위, 그리고 서로간의 신의를 저버림과 같은 행동은 그들이 존중 받고 있지 못함을 느끼게 하며 공동체를 떠나도록 할지도 모른다. 반대로 지도자의 관대함과 사랑을 통해 이루어지는 공동체 안에서의 이해와 의사소통, 그리고 서로간의 신의를 지킴을 통해 쌓여지는 신뢰와 믿음은 공동체의 필수불가결한 요소인 “협력”에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다. 여기에 더해 우리에게는 양날의 검과도 같은 인색함, 두려움, 신의를 묵살하는 행위를 오로지 개인의 욕망이 아닌 진정한 공동체 전체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 적절하게 활용한다면, 그 공동체는 더 완전하고 깊은 뿌리를 통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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