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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준 Mar 17. 2023

가벼운 다중우주론 비판

해당 글은 상당히 복잡하고, 또 그만큼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점 참고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가장 먼저, 우리가 사는 이 우주 이외에도 무수히 많은 우주들이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들은 그 다중우주가 우리 우주의 법칙과 동일한 형식의 법칙으로 운영되고 또 우리의 우주와 비슷한 종류의 물질만을 포함하고 있는지, 그게 아니라면 우리의 우주에서 작용하는 법칙과 전혀 다른 형식의 법칙을 따라 운영되고 또 우리의 우주와는 서로 다른 종류의 물질을 가지고 있는지를 선택해야 한다. 이에 대해 리차드 스윈번은 전자를 좁은 다중우주(narrow multiverse), 후자를 넓은 가능 다중우주(wide possible multiverse)로 구분짓는데, 둘 중 어느 편을 선택한다 할지라도 무신론자들은 어려운 난제를 마주할 수밖에 없다.

좁은 다중우주를 선택한다는 것은 곧 그 모든 우주에 속한 모든 물질적인 대상들이 서로 동일한 단순보편적인 힘과 성향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우리는 이 굉장한 사실에 대한 설명을 찾아야 한다. 수십억개도 넘는 수의 우주가 통일되고 보편화된 단순한 법칙들에 의해 지배받는다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엄청난 일이다. 모든 우주가  아주 보편적인 법칙, 조금 더 쉽게 말하자면 우리가 아는 뉴턴의 법칙과 같은 아주 간단한 과학적인 법칙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는 점은 신적인 존재를 통해서라면 너무나도 쉽게 설명되지만, 신이 없다면 절대로 절대로 간단히 설명할 수 없다. 존경스럽게도 우리의 과학은 우리의 자연계가 얼마나 질서정연한지를 아주 성공적으로 증명해주었다. 그러나 그 질서가 어떻게 그리고 왜 탄생하게 되었는지는 과학이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큰 주제들이며, 이 주제 앞에서 과학은 멈출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만약 넓은 다중우주를 선택한다면 어떨까? 넓은 다중우주론에서는 모든 우주가 우리의 우주와는 전혀 다른 물질들 그리고 전혀 다른 종류의 법칙들을 갖게 된다. 그리고 이런 우주들이 무한대라면, 우리의 우주와 비슷한 우주를 만드는 것 그리고 우리와 비슷한 인간이 존재하는 다른 우주들이 있을 가능성도 나름 주목할만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기적이라는 단어보다 더 대단한 단어를 요구할 정도로 매우 엄청난 우주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다중우주를 다루는 영화들을 보면, 우리와 똑같은 방식으로 살아가는 인간들이 또 다른 우주에서 살아가는 장면들이 나오지만, 서로 각기 다른 자연법칙을 따르는 다중우주에서는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 그 모든 우주들은 절대로 우리의 우주와 유사하지는 않을 것이다. 극악의 확률을 뚫고 생명이 발현될 수 있는 우주가 탄생한다는 점도 어려운 일이지만, 그것을 넘어서서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생명이 탄생할 확률은 나중에 더 설명하겠지만 또 다른 극악의 확률을 지닌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이 우주는 그저 생각하고 판단하는 생명체를 만든 정도가 아니다. 설령 정말 엄청난 우연의 일치로 우리와 비슷한 인간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우주가 어딘가에 존재한다 할지라도, "그러한 우주에 살고 있는 인류는 자신에게든지 남에게든지 좋거나 나쁜 영향을 미칠 만한 힘을 가지고 있지 않을 수도 있다. 그들은 단단한 껍질 안에서 살기 때문에 서로에게 도움을 주거나 혹은 해를 가하지 못할 수도 있다. 식량이 풍부하게 있어서 음식을 생산하기 위하여 협력할 필요도 없을 수도 있다. 아기들은 부모의 돌봄이 필요 없는 무성 생긱의 방법으로 태어날 수도 있다. 사람들에게는 서로를 향한 자연적인 사랑과 도덕 감정이 없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우주에는 우리의 우주에 존재하는 고통보다 훨씬 더 심각한 유형의 고통이 있을 수도 있다.(신은 존재하는가 pp.121)." 그런 우주에서 사는 사람들과는 달리 우리는 굉장히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우주에 살고 있다. 만약 신이라는 존재가 우리의 우주를 의도적으로 그렇게 만들었다면, 이 모든 사실들은 아주 단순하게 설명될 수 있다. 그러나 신에 의해 생성되지 않은 우주가 이렇게 만들어졌다는 것은 아주 개연성이 낮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사실 이것은 좁은 다중우주론도 여전히 직면할수밖에 없는 문제이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해 무신론자들은 또 다시 '우연'이라는 단어를 꺼낼 수밖에 없다. 그저 어쩌다가 우연히. 운좋게 이런 엄청난 우주가 탄생했다고 말이다.  


    앨빈 플란팅가는 결국 또 다시 '우연'이라는 단어에 의존하는 다중우주론를 카드게임에 빗대어 설명하였다. 포커 게임에서 카드를 돌리는데 매번 돌릴 때마다 유독 한 사람에게만 에이스 네 장이 계속해서 돌아온다. 함께 게임을 즐기던 사람들이 그를 향해 총을 겨누자 에이스를 받은 사람이 다급하게 말한다. “나도 알아! 스무 번 게임을 했는데 나에게만 에이스 네 장이 연속으로 나올 확률이 매우 희박하다는건 나도 알고 있어. 하지만,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무수히 많은 우주가 있다고 생각해봐. 그 무수히 많은 우주에서는 어떤 패라도 나올 수 있어. 그리고 우리가 있는 이 우주가 우연의 일치로 어떤 속임수도 없이 나한테 계속 에이스 네 장이 돌아오는 우주인거야.” 물론 에이스가 한꺼번에 네 장 씩이나 묶인 패가 스무 번 연속으로 들어온다는 것은 사실상 기술적으로만 가능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설령 그와 함께 게임을 한 사람들이 그의 속임수를 입증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그가 그들을 속이지 않았다고 속단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일 것이다.

        

    철학자 존 레슬리(John Leslie)도 이와 비슷한 예시를 든 적이 있다. 한 죄수가 총살형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그 총살형을 집행하는데 무려 50명의 노련한 군인들이 참여했다. 그런데, 그 50명의 군인들이 2미터 남짓 되는 거리에서 죄수를 향해 총을 쏘았지만 모든 총알이 하나같이 빗나가고 말았다. 물론 아무리 노련한 사수라고 해도 가까운 거리에서 표적을 맞추지 못할 가능성은 있기 때문에 어쩌다 보니 50명이 동시에 못 맞추는 사태도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설령 그들의 공모를 입증할 방법은 없다 해도 증거가 없다는 이유때문에 그들이 공모했을 리가 없다고 마무리짓는 것은 매우 비합리적인 것이다. 다중우주론도 마찬가지다. 어쩌다 보니 우리가 이런 엄청난 가치를 지닌 우주에서 살게 되었다는 것을 반박할 증거는 우리에게 없다. 그러나 그것을 반박할 증거가 없다고 해서 우주가 누군가의 설계에 의해 만들어졌을리가 절대 없다고 섣부르게 결론짓는 것은 지극히 비합리적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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