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정의
세상에는 거대한 정의만 있는 것 이 아니다. 때로는 작은 정의 지만 그것은 인간의 대한 근본적인 염원 일 수가 있다. 또한 그것은 젊은 날에 낭만 일 수도 있다. 작은 정의가 모여서 세상은 큰 정의가 형성되고 작동한다. 언젠가 내가 아는 지인 중, 오래전 첫 회사가 당시 유명한 금융 관련 회사였으며 군대 전역 후 바로 취직하였는데 그 당시도 어렵게 취업의 문을 뚫었다고 하였다.
하는 일은 채권을 추심하는 일이었다고 한다. 빚 있는 사람들을 주소지로 찾아가서 어떻게, 언제 상환할 것인지 대화를 하고 빚을 회수하는 업무였다고 한다. 하지만 주소지를 찾아서 가보면 당연하게 빚을 진 사람은 없고 노부모와 아이들만 지내는 집들이 일상이었다고 한다. 하루는 어느 집을 찾아갔고 정장 차림에 언덕을 땀을 흘리면서 올라가서 주소가 적힌 집을 찾아 두드렸다고 한다.
문을 두드리면서 " 여기 000 씨 계세요. "라고 계속 외쳤다고 한다. 하지만 조금 뒤에 어린애들 2명이 있었고, 내가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아이들이 남자애들인지 여자애들인지 몇 살인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라고 생각된다. 어쨌든 부모님이 어디 계시는지 물었고 당연히 그 아이들도 모른다고 하였다. 딱 봐도 아무것도 먹지 않은 상태 같아 보였다고 한다.
그날 라면을 3박스를 사서 아이들에게 쥐어 주고 돌아왔다고 하였다. 그렇게 그 일을 하다가 1년 인가? 지나서 그 회사를 그만두고, 돈을 많이 받아도 도저히 인간으로서 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만뒀다고 한다. 하지만 그 직장을 그만둔다고 하니 주변에서 말렸다고 한다. 좋은 회사를 왜 그만두는지 아무도 납득하지 못했다고 한다.
당시 학습지가 한국 사회에 정착하는 시기여서 어떤 마음이 들었는지 모르지만 교육 쪽으로 무엇인가 해보겠다며 방향을 틀었다고 한다. 그 형님이 말하길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아이가 있다고 한다. 아이의 집은 동네에서 가장 허름했고 공부를 봐주러 가면 그 아이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전에 배운 학습지 부분을 확인하면 글씨 하나 빼먹지 않고 다 외웠다고 했다. 분명 오래전 이야기 이지만 아이 이야기를 할 때는 말에 힘이 있고 목소리에는 기쁨이 넘쳤다. 아마도 그 순간이 가장 일을 하면서 기뻤던 순간이라 추정해 본다.
많은 돈을 받는 직장을 포기하면서까지 얻으려 했던 행복이 아닐까?
전 직장에서 돈 앞에 버려는지는 아이들의 현실을 경험했던 그것이 자신의 마음을 무의식적으로 교육이라는 방향으로 움직인 게 아닐까?라는 추측을 해본다. 적어도 자신이 일을 하면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으로 바꿔보려는 작은 도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누군가의 이야기를 통해 감동을 쥐어짜려고 하는 것 아니다. 한 인간, 한 국민, 한 시민이 적어도 삶에서 양심이라는 거울 앞에서 최대한 떳떳하게 살려는 작은 정의라는 생각이 든다. 이것은 분명 보이지도 않는 거대 세상 안에 극도로 작은 물결이다. 하지만 이러한 물결이 모여서 거대한 정의가 이뤄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의 사소한 것에 정의가 결국은 거대한 물결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어쭙잖은 말 뿐인 정의관이 아니라 현실에서 누구나 돈을 벌어야 하지만 그래도 금융 회사보다 확연하게 적게 벌더라도 큰 의미를 택한 작은 누군가의 선택이라는 것이다. 결국은 이것은 욕망을 제어하고 무욕을 실천한 한 사람의 인생이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