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하고 지내니?
" 밥은 먹었니? 언제 밥이나 먹을까? 형제는 몇이니? 부모님은 살아계시고? 가족들은 자주 만나? 하는 일은 뭐고? 취미는 뭐야? 종교는 있고? 예전에는 무슨 일 했어? 좋아하는 게 뭐야? 여자친구는? 남자친구는? 연애는 하니? 결혼은 했니? 연봉은? 휴가는 어디 갔니?..... "
" 어......"
사람을 간 보는 행동은 참 나쁜 것이다. 알면서 속아주는 것 은 안쓰러운 사람이라 생각해서 그대로 두는 것이다. 상대를 간을 봐야 할 만큼 인간을 믿지 못한다는 것이며 자기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전제가 깔린 것이며 본질적으로 자신에 대한 불안도가 높다는 것이다. 그래서 적당히 두고 적당히 지내고 진심을 다하고 칼 같이 끊어야 하는 것이다.
아마도 스스로 간을 보는 것조차 모를 것이다. 그렇게 살았고 그렇게 해왔던 행동들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심각하면 반드시 몸에는 환경과 무관하게 병이 생기기 마련이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이치다. 내가 사람들을 관찰하며 얻은 결론이다.
과거에는 단순하게 사람을 알아가는 모든 과정이 인간의 속과 배경을 알아보려고 하는 체크의 과정으로 전락해 버렸다. 그 사람의 가치관과 도덕적 행위가 중요사항이 아니라 겉과 배경이 중요해진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것에 결과든 과정이든 맥락의 중요성이 사라져 버렸다. 맥락을 알아야 판단도 하는데 맥락을 버리고 과정과 결과 값에 수치에만 관심을 가지니 인간의 속을 알려고 극단적으로 보는 것이다.
맥락과 전체적인 흐름, 이것에 만약 내가 상대방이라면이라는 가정 없이, 결과에서 체크를 하니 틀릴 수밖에 없고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속을 극단적으로 파악하려니 더 헛발을 내딛는 것이다. 다양성을 떠들고 사람마다 다르다는 말과 생각을 시전 하면서 그렇게 바라본다는 것은 참 답답한 무엇인가 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다양하지 않고 현대사회는 더더욱 그렇다고 본다. 다양성은 허황된 인간들에 욕망에 산물이다. 자신의 욕구를 정당화하고 실수나 죄를 덮기 위한 도구로 쓰인다고 생각한다.
다양과 다양하지 않은 관점에서도 맥락, 전체적인 흐름과 내가 만약 상대방이라는 관점, 그것이 그 어느 관점에서도 중요하다. 이것은 인간을 전체적으로 포괄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현대인은 결과와 과정과 인간의 속, 그것에 미쳐 있는 것이며 자신이 그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즉 결과로 체크하고 과정으로 체크하고 상대방 인간의 속으로 판단해 보려는 것이다. 자신도 아마 그렇게 바라볼 것이다. 동시에 이것이 인간마다 비율의 차이일 것이다.
어쨌든 이 모든 것이 불안에서 오는 것이며 그것은 외부와 내부에서 오는 불안이라고 본다. 불안의 근원은 욕망이며 그 욕망은 스스로 객관적으로 봐도 더럽고 치사하기에 더 불안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