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에 읽은 『넥서스』, 퇴근길에 생각하는 우리 회사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출근하면서 유발 하라리의 『넥서스』를 읽었다. '인류가 네트워크를 다루고 정보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노력해온 결과물이 바로 우리의 문명과 사회'라는 구절에서 문득 고개를 들었다. 30분 후, 나는 사무실에서 '전무님께 보고드리겠습니다'라는 말을 하고 있었다.
이상했다. 집에서는 아이 교육 방침도 아내와 민주적으로 상의하고, 주말 계획도 가족 회의를 통해 정하는 내가, 왜 회사에서만큼은 이렇게 달라지는 걸까?
바로 그 질문에서 이 글이 출발한다. 우리가 오랫동안 효율적이라고 믿어왔던 기업 조직이 과연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가?
(로마 제국이 우리에게 남긴 것)
고대 로마 제국을 떠올려보자. 방대한 영토와 수많은 인구를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그들이 만든 건 단순히 군사력이 아니었다. 중앙에서 발신된 명령이 지방 총독과 군대에 신속하게 전달되고, 현지 상황이 다시 중앙으로 보고되는 체계. 바로 계층적이고 수직적인 조직 구조였다.
왜 하필 수직적이었을까? 답은 간단하다. 정보의 희소성 때문이다.
수렵채집 시대의 작은 무리들은 모두가 대면하며 정보를 나눴다. 마치 현재의 5명짜리 스타트업처럼 말이다. 하지만 농업 혁명 이후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이런 분산형 구조로는 거대한 공동체를 유지할 수 없게 됐다.
복잡성을 처리하기 위해 정보는 특정 권위자에게 집중되고, 그 권위자가 내린 명령이 하달되는 중앙 집중식 시스템이 필요했다. 정보를 독점한 자가 권력을 가졌고, 조직은 그 정보를 가장 효과적으로 다루기 위한 피라미드 형태로 진화했다.
이 논리는 산업혁명 시대에 더욱 공고해진다.
프레더릭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법을 기억하는가? 공장 노동자들은 마치 기계 부품처럼 정해진 역할과 순서에 따라 움직여야 했다. 이 시스템에서 정보는 오직 위에서 아래로만 흘렀다. '생산성'이라는 단 하나의 목표 아래, 모든 의사결정은 소수의 관리자에게 집중됐다.
당시에는 이게 가장 효율적인 정보 처리 시스템이었다. 정보의 물리적 전달이 어렵고, 소수가 많은 것을 결정해야 했던 환경에서 말이다.
결국,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수직적 조직은 인류가 오랜 시간 정보의 한계와 씨름하며 만들어낸 생존 전략이었던 것이다.
민주주의 시민에서 전체주의 직장인으로
우리는 모두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다. 개인의 자유와 자율성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투표를 통해 권력을 위임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낼 권리가 있다. 학교나 사회단체에서도 점점 더 수평적 관계와 자율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런데 이 자유로운 개인이 직장에 출근하는 순간, 놀라운 변신이 일어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벗어나 상명하복의 규칙이 지배하는 위계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다.
개인의 자율성보다 조직의 통제가 우선되고, 논리적 설득보다는 명령이 더 큰 힘을 갖는 세계. 우리 모두가 매일 마주하는 이 모순적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프레드릭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법이 이런 시대적 요구에 완벽하게 부응했던 것처럼, 공장 노동자들은 마치 기계의 부품처럼 정해진 역할과 순서에 따라 움직여야 했다. 그들의 모든 움직임은 관리자에 의해 철저히 통제됐다.
이 시스템에서 정보는 오직 위에서 아래로만 흘렀다. '생산성'이라는 단 하나의 목표 아래, 모든 의사결정은 소수의 관리자에게 집중되고, 노동자들은 그저 그 명령을 실행하는 존재에 불과했다.
하지만 잠깐, 지금은 어떤 세상인가?
개인이 마음만 먹으면 전문가 수준의 정보를 가질 수 있고, 정보는 더 이상 통제되지 않으며, 누구나 손쉽게 접근하고 공유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과거에 만들어진 정보 관리 시스템에 기반한 수직적 조직 속에서 살고 있다. 마치 스마트폰 시대에 흑백 TV 사용법을 고집하는 것과 같다.
2025년 초, 한때 시장을 선도했던 거대 IT 기업에서 일어난 일이다. 수평적 협업을 중요시하는 새로운 경쟁사들과 달리, 이 회사의 모든 의사결정은 여전히 소수의 임원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현장의 핵심 정보는 최고위층까지 도달하지 못했고, 결국 치명적인 사업 판단 실수로 막대한 손실을 봤다.
이런 실패 사례들 때문에 많은 기업들이 기존의 경직된 조직 구조를 바꾸려 노력하고 있다. '님' 호칭으로 대표되는 수평적 조직 문화 도입이 그 예다. 하지만 단어를 바꾸는 것만으로 조직 운영의 효율성이 나타날까?
이는 곧 진정한 변화가 형식적인 것이 아닌, 조직의 근본적인 정보 시스템을 재설계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말해준다.
AI 기술이 의사결정의 새로운 주체로 부상하는 시대에, 우리는 통제와 조율 사이에서 어떤 균형을 찾아야 할까? 그리고 CEO부터 신입사원까지, 정보에 대한 권한을 어떻게 재정의해야 조직 전체의 효율성과 창의성을 극대화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