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열기 전,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입에 담기 힘든 종류의 사건이었다.
그런 사건 뒤에는 반드시 누군가 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지금 저 안에 앉아 있다.
복도는 조용하다.
형광등 불빛만이 균일하게 깔려 있다.
손잡이를 잡기 전, 나는 한 번 호흡을 고른다.
이건 의례다.
확신을 정돈하는 시간.
취조실 문을 열면
가장 먼저 보이는 건 단방향 거울다.
왼쪽 벽면 전체를 차지한 거울.
대상은 자신의 얼굴을 볼 것이다.
나는 거울 너머의 존재들을 의식할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저쪽에서 이쪽은 보이지만
이쪽에서 저쪽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나는 관찰자다.
통제하는 쪽이다.
질문을 던지고, 답을 받고, 기록을 남기는 위치.
거울은 그걸 확인시켜준다.
매번.
테이블 위에는 이미 준비되어 있다.
녹음기와 조서.
녹음기의 빨간 불이 켜지는 순간,
모든 말은 증거가 된다.
지각이 실존으로 전환되는 경계선.
"네"라는 대답은 그냥 "네"가 아니다.
00시 00분 00초, 대상이 긍정했다는 기록.
되돌릴 수 없는 사실.
조서는 더 명확하다.
백지 위에 기입되는 문장들.
"피의자는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음"
진술.
그 단어가 중요하다.
대상이 말한 건 그냥 말이다.
하지만 조서에 적히는 순간,
그건 진술이 된다.
법적 효력을 가진, 번복할 수 없는 실존.
나는 이 메커니즘을 안다.
그래서 준비할 수 있다.
어떤 질문이 어떤 대답을 유도할지.
어떤 침묵이 기록될 가치가 있는지.
어떤 순간에 펜을 들어야 하는지.
문을 연다.
대상은 이미 앉아 있다.
등을 곧게 펴고, 손은 무릎 위에 가지런히 모은 채.
나는 맞은편에 앉는다.
120센티미터의 거리.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계산된 간격.
단방향 거울에 우리의 모습이 비친다.
대상은 자신을 본다.
나는 우리를 본다.
그리고 거울 너머에서,
누군가 나를 보고 있다.
평가하고 있다.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괜찮다.
나는 이 시스템을 운용하는 쪽이니까.
질문을 던지는 쪽이니까.
확신을 가진 쪽이니까.
녹음기에 손을 뻗는다.
빨간 불이 켜진다.
"녹음을 시작하겠습니다.
2025년 00월 00일, 00시 00분.
피의자 신문을 시작합니다."
조서의 첫 줄에 날짜를 적는다.
펜 끝에서 잉크가 번진다.
백지가 채워지기 시작한다.
대상이 나를 본다.
나는 대상을 본다.
거울은 우리를 비춘다.
그리고 이 방 안의 모든 것은
이제 기록되고 있다.
지각이 아니라 실존으로.
해석이 아니라 사실로.
의심이 아니라 증거로.
"성명을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첫 질문.
무해하고, 절차적이며, 당연한 질문.
하지만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이 질문부터 시작해서
120분 뒤 어디에 도착할지.
확신은 흔들리지 않는다.
녹음기는 돌아가고 있다.
조서는 채워질 것이다.
거울은 나를 비추고 있다.
통제하는 나를.
질문하는 나를.
옳은 나를.
아직은.
문을 열기 전,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입에 담기 힘든 종류의 사건이었다.
그런 사건 뒤에는 반드시 누군가 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지금 저 안에 앉아 있다.
복도는 조용하다.
형광등 불빛만이 균일하게 깔려 있다.
손잡이를 잡기 전, 나는 한 번 호흡을 고른다.
확신을 정돈하는 시간.
이런 케이스를 세 번 봤다.
세 번 모두, 같은 방식으로 자백을 받았다.
시간대 교차검증.
진술 불일치 지적.
5초 이상의 침묵 압박.
효과적이었다.
매뉴얼대로 했고, 결과가 나왔다.
그리고 이번에도 효과가 있을 것이다.
취조실 문을 연다.
왼쪽 벽면 전체를 차지한 단방향 거울.
대상은 자신의 얼굴을 볼 것이다.
나는 거울 너머의 존재들을 의식할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나는 관찰자라는 것.
통제하는 쪽이라는 것.
대상은 이미 앉아 있다.
등을 곧게 펴고, 손은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준비되어 있다.
나는 맞은편에 앉는다.
120센티미터의 거리.
단방향 거울에 우리의 모습이 비친다.
그리고 거울 너머에서 누군가 나를 본다.
테이블 위, 녹음기와 조서.
녹음기의 빨간 불이 켜지는 순간,
모든 말은 증거가 된다.
조서에 적히는 순간,
진술은 실존이 된다.
나는 이 메커니즘을 안다.
11년간 사용해왔다.
빨간 불이 켜진다.
"녹음을 시작하겠습니다.
2024년 11월 14일, 오후 2시 30분.
참고인 조사를 시작합니다."
조서의 첫 줄에 날짜를 적는다.
"성명을 말씀해주시겠습니까."
"김ㅇㅇ입니다."
"생년월일은요."
"1989년 3월 15일입니다."
즉각적인 대답.
준비된 사람.
조서에 적는다.
성명, 생년월일, 주소.
"직업이 무엇입니까."
"회사원입니다."
"ㅇㅇ산업, 기획팀. 근무시간은 9시부터 6시."
대상이 나를 본다.
"11월 7일, 정시 퇴근 했습니까."
그날.
입에 담기 힘든 종류의 사건이 있었던 날.
3초의 침묵.
"네, 했습니다."
"몇 시에요."
"6시요."
조서에 적는다.
퇴근 시간: 18:00.
하지만 나는 이미 안다.
출입 기록상 17:45.
15분의 차이.
아직은 지적하지 않는다.
"퇴근 후 어디 갔습니까."
"집에 갔습니다."
"바로요."
"네."
조서에 적는다.
직행 귀가.
나는 서류를 꺼낸다.
CCTV 캡처 이미지.
"11월 7일, 오후 7시 15분. ㅇㅇ역 3번 출구입니다."
대상이 서류를 본다.
"여기 이 사람이 누구죠."
4초.
"저입니다."
"바로 집에 갔다고 하셨습니다."
5초.
"아... 편의점에 들렀습니다."
조서에 적는다.
진술 수정: 편의점 경유.
첫 번째 불일치.
"왜 처음엔 말 안 했습니까."
"깜빡했습니다."
"일주일 전 일을요."
"네..."
"편의점에서 뭘 샀습니까."
"담배요."
"영수증은요."
"버렸습니다."
"왜요."
"필요 없어서요."
손이 테이블 아래로 내려간다.
처음으로.
나는 지도를 펼친다.
"회사가 여기. ㅇㅇ역이 여기. 집이 여기입니다."
손가락으로 세 지점을 가리킨다.
"반대 방향입니다."
5초.
"산책을 했습니다."
조서에 적는다.
진술 재수정: 산책.
두 번째 불일치.
"처음엔 직행, 그 다음 편의점, 지금은 산책입니다."
"죄송합니다. 순서가 헷갈려서요."
"그날 날씨 어땠습니까."
"비가 왔던 것 같습니다."
조서에 표시한다.
나는 기상청 자료를 꺼낸다.
"11월 7일은 맑았습니다. 강수량 0mm."
대상의 얼굴이 굳는다.
"제가 착각했나 봅니다."
세 번째 불일치.
30분.
조서는 다섯 페이지.
세 개의 균열.
퇴근 시간, 경로, 날씨.
패턴대로다.
"잠깐 쉬겠습니다."
녹음기는 여전히 돌아간다.
단방향 거울을 본다.
확신에 찬 내 얼굴이 비친다.
세 번의 케이스.
같은 패턴.
같은 결과.
나는 옳다.
매뉴얼대로 하고 있다.
곧 자백할 것이다.
거울은 나를 비추고 있다.
통제하는 나를.
확신에 찬 나를.
아직은.
"계속하겠습니다."
조서를 펼친다.
이제 하나씩 무너뜨릴 차례다.
"17시 45분."
"네?"
"퇴근 시간입니다. 출입 기록상."
"아..."
"왜 18시라고 했습니까."
"착각했습니다."
"15분을요."
"네..."
조서에 적는다.
시간 불일치 인정.
"편의점 영수증."
"없습니다."
"왜 버렸습니까."
"그냥..."
"항상 버립니까."
침묵.
"대답하십시오."
"아니요."
"그럼 왜 그날만요."
"기억이... 안 납니다."
호흡이 빨라진다.
대상의, 그리고 나의.
"산책은 왜 했습니까."
"그냥 하고 싶어서요."
"반대 방향으로요."
"네."
"어두운데요. 일몰 시각 17시 32분입니다."
"..."
"어두운데 왜 산책을 했습니까."
"그냥..."
"비도 안 왔는데 왜 비가 왔다고 했습니까."
"착각했습니다."
"일주일 전 날씨를요."
"네."
질문.
대답.
기록.
패턴대로다.
나는 새 서류를 꺼낸다.
"핸드폰 위치기록 나왔습니다."
대상의 눈이 흔들린다.
"11월 7일, 오후 7시부터 8시.
ㅇㅇ역 일대에 있었습니다."
"네... 맞습니다."
"정확히 어디 있었습니까."
침묵.
7초.
"산책했다고 했습니다."
"어디를요."
"그냥... 역 주변이요."
"왜요."
"..."
"왜 하필 거기서 산책을 했습니까."
10초.
"대답하십시오."
대상의 손이 떨린다.
"그냥...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습니다."
"무슨 생각이요."
"..."
"김ㅇㅇ씨."
목소리를 낮춘다.
압박의 기법.
"거짓말하고 있습니까."
대상이 나를 본다.
처음으로 제대로.
"제가 뭘 했다는 겁니까."
그 질문.
세 번의 케이스에서
이 질문 뒤에는 항상 자백이 있었다.
"그건 제가 물어야 할 질문입니다."
"저는 아무것도 안 했습니다."
"그럼 왜 거짓말을 했습니까."
"거짓말 안 했습니다."
"세 번 진술을 바꿨습니다."
"착각했을 뿐입니다."
"퇴근 시간, 경로, 날씨. 전부요."
"네."
목소리가 떨린다.
곧 무너진다.
패턴대로.
"다시 묻겠습니다."
나는 조서를 펼친다.
"11월 7일, 오후 7시부터 8시.
정확히 어디서 무엇을 했습니까."
침묵.
15초.
"산책했습니다."
"어디를요."
"ㅇㅇ역 주변이요."
"왜요."
"생각 정리요."
똑같은 대답.
각본처럼.
나는 조서에 적는다.
그런데.
손이 멈춘다.
"생각 정리"
이 단어.
어디서 들었지.
아니.
내가 먼저 말했나.
조서를 넘긴다.
3페이지.
"무슨 생각 정리하고 싶었습니까" 이건 내가한 질문이였다
"그냥 생각 정리요" 대상이 대답했다
4페이지.
"왜 산책했습니까" 내가 질문했다
"생각 정리요" 대상이 대답했다
두 번.
똑같은 표현.
내가 먼저 썼고
대상이 따라 했다.
잠깐.
나는 펜을 내려놓는다.
대상이 고개를 든다.
의아한 표정.
나는 녹음기를 본다.
여전히 빨간 불.
파일 재생 버튼을 누른다.
되감기.
내 목소리가 들린다.
"그날 날씨 어땠습니까."
대상의 목소리.
"음..."
내 목소리.
"비 왔죠?"
잠깐.
"비 왔습니까"가 아니라
"비 왔죠"라고 물었다.
이미 전제했다.
비가 왔다고.
대상의 목소리.
"네... 왔던 것 같습니다."
유도된 대답.
나는 더 되감는다.
내 목소리.
"ㅇㅇ역에 갔었죠?"
또.
"편의점 들렀죠?"
또.
모든 질문이
이미 답을 포함하고 있었다.
조서를 다시 본다.
1페이지.
"퇴근 후 어디 갔습니까" ← 중립적 질문
"집에 갔습니다" ← 대상의 대답
2페이지.
나는 CCTV를 보여줬다.
ㅇㅇ역이 찍힌 사진을.
"여기 이 사람이 ㅇㅇ씨 맞죠?" 내가 물어봤다
대상은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사진에 나와 있으니까.
그리고 나는 물었다.
"왜 처음엔 말 안 했습니까"
말 안 한 게 아니라
내가 묻지 않았다.
"어디 갔냐"고 물었지
"ㅇㅇ역 갔냐"고 묻지 않았다.
3페이지.
나는 지도를 펼쳤다.
회사, ㅇㅇ역, 집.
"반대 방향입니다" 내가 지적했다
그리고 대상이 대답했다.
"산책을 했습니다"
왜.
왜 산책이라는 단어가 나왔을까.
나는 묻지 않았다.
"왜 갔냐"고만 물었다.
그런데 대상은
"산책"이라고 대답했다.
아니.
잠깐.
4페이지를 본다.
그 전에 내가 물었다.
"중간에 들른 곳 없습니까"
"편의점이나 식당 같은 곳도요"
편의점.
내가 먼저 말했다.
그리고 CCTV를 보여주고 나서
대상이 말했다.
"편의점에 들렀습니다"
내가 제시한 선택지를
대상이 선택했을 뿐이다.
심장이 빨라진다.
5페이지.
"그날 날씨 어땠습니까"
"비 왔죠?"
"그냥 생각 정리하고 싶었습니다"
"무슨 생각이요"
모든 질문이 답을 유도했다.
모든 대답이 내 각본이었다.
단방향 거울을 본다.
내 얼굴이 비친다.
확신에 찬 얼굴이 아니라
흔들리는 얼굴이.
거울 너머에서
누군가 나를 보고 있다.
이 순간을.
이 깨달음을.
나는 관찰당하고 있다.
조서를 덮는다.
다시 펼친다.
6페이지.
"핸드폰 위치기록 나왔습니다"
거짓말이었다.
아직 영장도 안 나왔다.
이건 참고인 조사일뿐이다.
하지만 나는 말했다.
압박의 기법.
매뉴얼에 나온 방법.
그리고 대상은 인정했다.
"네, 맞습니다"
ㅇㅇ역에 있었다고.
하지만 정말 있었을까.
아니면
내가 "있었다"고 말했으니까
있었다고 대답한 걸까.
녹음기를 멈춘다.
빨간 불이 꺼진다.
처음으로.
취조실이 조용하다.
대상이 나를 본다.
나는 조서를 본다.
6페이지의 기록.
이게 진술인가.
각본인가.
이게 증거인가.
유도인가.
"계속... 안 하십니까."
대상이 묻는다.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할 수 없다.
무엇을 물어야 할지
모르겠다.
중립적인 질문.
유도하지 않는 질문.
그런 질문이
존재하는가.
시계를 본다.
68분.
조서를 본다.
6페이지.
모든 페이지에
내 확신이 박제되어 있다.
"피의자는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음"
아니다.
"조사자는 다음과 같이 유도하였음"
단방향 거울에
내 모습이 비친다.
11년간
이 자리에 앉았다.
11년간
이렇게 질문했다.
11년간
이렇게 기록했다.
그리고 11년간
나는 확신했다.
내가 진실을 찾는다고.
하지만 지금
거울을 보니
확신에 찬 얼굴이 아니라
흔들리는 얼굴이 보인다.
질문하는 사람이 아니라
질문받는 사람이 보인다.
나는 누구를 취조하고 있는가.
대상인가.
나 자신인가.
70분.
"잠시…”
내 목소리가 떨린다.
나는 그대로 일어서서 취조실을 잠시 나왔다
밖을 보니 대상이 잠시 일어선다.
의아한 표정으로.
이내 잠시 화장실을 가기 위해 취조실 밖에 나왔다
그사이 나는 취조실에 돌아와 혼자 남는다.
단방향 거울 앞에.
조서 앞에.
녹음기 앞에.
그리고
흔들리는 확신 앞에.
나는 혼자 남아 있다.
조서를 펼친다.
다시.
6페이지의 기록.
"피의자는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음"
하지만 이건 진술이 아니다.
내가 쓴 각본이다.
녹음기를 본다.
꺼져 있다.
다시 켜야 한다.
대상을 다시 불러야 한다.
질문을 계속해야 한다.
하지만.
무엇을 물어야 하는가.
11년간
나는 이 방법을 사용했다.
교육받았다.
"효과적인 취조 기법"
"자백을 이끌어내는 방법"
숙련된 리드기법으로 항상 이렇게 교과서 대로 배웠고 행동했었다.
이는 9단계로 나눠진다.
직접적 대면 – “증거가 있다”는 확신 전달
도덕적 명분 제시 – “누구나 그럴 수 있다”
부인 차단 – 변명·부정 즉시 중단
이의 최소화 – 용의자 말 끊기
관심 유지 – 침묵·거리 좁히기
수동적 태도 유도 – 저항 약화
선택지 제시 – 둘 다 유죄(경미 vs 중대)
자백 유도 – 고개 끄덕임 등 동의 신호 확보
문서화 – 서면·녹취 자백
나는 6단계까지 왔다.
그리고 멈췄다.
단방향 거울을 본다.
거울 너머에서
그들이 나를 보고 있다.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왜 멈췄지?"
"거의 다 왔는데"
"조금만 더 압박하면 되는데"
아니면.
"저 사람, 깨달았네"
"11년 만에"
"자기가 뭘 하고 있었는지"
문이 열린다.
대상이 다시 들어온다.
앉는다.
나를 본다.
"계속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누가 그랬는가.
거울 너머의 그들인가.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녹음기를 켠다.
빨간 불.
"녹음을 재개하겠습니다.
오후 3시 48분."
78분.
조서를 펼친다.
새 페이지.
7페이지.
백지.
"김ㅇㅇ씨."
"네."
"11월 7일."
"네."
"무엇을 했습니까."
가장 중립적인 질문.
가장 열린 질문.
유도하지 않는 질문.
대상이 나를 본다.
"말씀드렸습니다."
"다시 말씀해주십시오."
"퇴근하고 집에 갔습니다."
"중간에는요."
"편의점 들렀습니다."
"왜요."
"담배 사려고요."
"어디서요."
"ㅇㅇ역이요."
같은 대답.
하지만 이번엔
내가 먼저 말하지 않았다.
편의점.
ㅇㅇ역.
대상이 먼저 말했다.
"왜 ㅇㅇ역입니까."
"산책하려고요."
"왜 산책을 했습니까."
침묵.
5초.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습니다."
조서에 적는다.
그런데
손이 멈춘다.
이 대답.
진짜인가.
아니면
2부에서 내가 심어놓은 답인가.
"무슨 생각이요."
대상이 나를 본다.
"개인적인 겁니다."
"말씀하십시오."
"꼭 해야 합니까."
"네."
침묵.
10초.
"회사 일입니다."
"무슨 일이요."
"그냥... 스트레스 받는 일이요."
조서에 적으려다
멈춘다.
이게 중요한가.
회사 스트레스.
입에 담기 힘든 종류의 사건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아니.
잠깐.
입에 담기 힘든 종류의 사건.
나는 그 사건을 확신했다.
11월 7일, ㅇㅇ역 근처에서.
그리고 이 사람이 관련되어 있다고 확신했다.
왜.
무슨 근거로.
나는 서류를 뒤진다.
사건 개요.
피해 상황.
현장 증거.
그리고.
용의자 선정 이유.
"11월 7일 오후 7시경, ㅇㅇ역 인근 CCTV에 포착"
그게 전부다.
다른 증거는 없다.
지문도, DNA도, 목격자도.
오직 CCTV.
그 시간, 그 장소에 있었다는 것.
하지만.
ㅇㅇ역은 대형 역사다.
하루 유동인구 10만 명.
그날 저녁 7시,
그곳에 몇 명이 있었을까.
수백 명.
수천 명.
왜 이 사람인가.
서류를 더 뒤진다.
"용의자 특이사항"
"과거 유사 사건 연루 의심"
의심.
확인된 게 아니라 의심.
"행동 패턴상 관련 가능성"
가능성.
증거가 아니라 가능성.
"조사 필요"
필요.
확정이 아니라 필요.
나는 서류를 내려놓는다.
대상을 본다.
"김ㅇㅇ씨."
"네."
"당신을 왜 여기 앉혔는지 아십니까."
대상이 나를 본다.
"모르겠습니다."
"정말로요."
"네."
목소리에 떨림이 없다.
거짓말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다.
진짜 모르는 사람의 목소리다.
"11월 7일, ㅇㅇ역에서
입에 담기 힘든 종류의 사건이 있었습니다."
"..."
"당신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네, 있었습니다."
"왜 있었습니까."
"산책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왜 산책을 했습니까."
"생각 정리요."
같은 대답.
무한 반복.
나는 다시 묻는다.
"그 사건에 대해 아십니까."
"무슨 사건입니까."
구체적으로 묻고 있다.
무슨 사건인지.
나는 대답할 수 없다.
입에 담기 힘든 종류라서가 아니라
대상에게 정보를 주면 안 되니까.
오염된다.
진술이.
하지만.
이미 오염되지 않았나.
"뉴스 봤습니까."
"못 봤습니다."
"왜요."
"안 보니까요."
"스마트폰은요."
"뉴스 알림 꺼놨습니다."
조서에 적는다.
하지만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뉴스를 안 봤다는 게
무죄의 증거인가.
유죄의 증거인가.
아무것도 아니다.
단방향 거울을 본다.
내 얼굴이 비친다.
질문을 잃어버린 얼굴.
그리고 거울 너머에서
그들이 나를 본다.
"계속하라"
"압박하라"
"자백받아라"
아니면.
"멈춰라"
"이미 끝났다"
"증거가 없다"
나는 조서를 본다.
7페이지.
몇 줄 적히지 않았다.
그리고 적힌 내용도
의미가 없다.
회사 스트레스.
생각 정리.
뉴스 안 봄.
이게 증거인가.
"김ㅇㅇ씨."
"네."
"..."
나는 아무말도 물어볼 수 없었다
그러자 대상은 내게 말했다.
"저는 아무것도 안 했습니다."
"확실합니까."
"네."
"11월 7일, ㅇㅇ역에서
아무것도 안 했습니까."
"산책했습니다."
"그게 전부입니까."
"네."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는다.
눈동자는 움직이지 않는다.
손은 떨리지 않는다.
이 사람은
거짓말하지 않고 있다.
아니면.
이 사람은
진짜 아무것도 안 했다.
아니면.
나는
더 이상 구분할 수 없다.
침묵.
30초.
대상이 묻는다.
"제가 무엇을 했다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대답할 수 없다.
입에 담기 힘들어서가 아니라
확신이 없어서.
"제가 뭘 했는지 말씀해주십시오."
대상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그래야 제가 해명을 하든 인정을 하든 하지 않겠습니까."
맞는 말이다.
나는 70분 넘게
이 사람을 앉혀놓고
질문했다.
하지만.
정작 무엇을 했는지
말하지 않았다.
말할 수 없었다.
증거가 없으니까.
확신만 있으니까.
"대답하십시오."
대상이 나를 압박한다.
역전되었다.
"제가 무엇을 했습니까."
나는 조서를 본다.
"모르겠습니다."
내 입에서 나온 말.
"뭐라고요?"
대상이 되묻는다.
"모르겠습니다."
다시 말한다.
명확하게.
"당신이 무엇을 했는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침묵.
대상이 나를 본다.
나는 대상을 본다.
단방향 거울에
우리의 모습이 비친다.
취조하는 사람과
취조받는 사람.
하지만.
누가 누구를 취조하고 있는가.
"그럼 왜 저를 여기 앉혔습니까."
대상이 묻는다.
"CCTV에 포착되어서입니다."
"그게 전부입니까."
"..."
"그게 전부입니까."
대상이 다시 묻는다.
"네."
내가 대답한다.
"그곳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저를 여기 앉혔습니까."
"네."
"그리고 70분 동안
제 퇴근 시간, 경로, 날씨 기억을
따졌습니까."
"네."
조서에 적는다.
하지만 무엇을 적는가.
"조사자는 확신 없이 조사하였음"
대상이 일어선다.
"앉으십시오."
"앉아야 합니까."
"조사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끝났습니다."
대상이 나를 본다.
처음으로
대상이 거부한다.
처음으로
나는 강제할 수 없다.
왜냐하면.
대상 말이 맞으니까.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대상이 문 앞에 선다.
"당신은 처음부터
제가 뭔가 했다고 생각하고
저를 여기 앉혔습니까."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제 대답을 듣고 판단한 게 아니라
이미 판단하고 제 대답을 들었습니까."
조서를 본다.
1페이지부터 6페이지.
모든 질문이
답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내가 대답한다.
대상이 문을 연다.
"저는 아무것도 안 했습니다."
"..."
"하지만 당신은 믿지 않겠죠."
"..."
"왜냐하면 이미 믿었으니까."
문이 닫힌다.
나는 혼자 남는다.
또.
단방향 거울 앞에.
조서 앞에.
녹음기 앞에.
시계를 본다.
95분.
녹음기를 본다.
여전히 켜져 있다.
빨간 불.
나는 정지 버튼을 누른다.
빨간 불이 꺼진다.
처음으로.
완전히.
취조가 끝났다.
아니.
중단되었다.
조서를 본다.
7페이지.
"조사자: 확신 없음"
"피의자 아닌 참고인 주장 수용"
"추가 증거 없이 조사 중단"
나는 서명한다.
떨리는 손으로.
단방향 거울을 본다.
내 얼굴이 비친다.
확신이 사라진 얼굴.
질문을 잃어버린 얼굴.
11년 차 취조관의 얼굴이 아니라
처음으로 의심하는 사람의 얼굴.
거울 너머에서
그들이 나를 보고 있다.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실패했네"
"증거 없이 불렀네"
"확신만 가지고 앉혔네"
아니면.
"깨달았네"
"11년 만에"
나는 일어선다.
조서를 정리한다.
녹음기를 정리한다.
서류를 정리한다.
모든 것을 정리한다.
하지만.
확신은 정리되지 않는다.
문을 향해 걷는다.
손잡이를 잡는다.
뒤를 돌아본다.
텅 빈 취조실.
중앙의 테이블.
두 개의 의자.
한쪽 벽면의 단방향 거울.
이 방에서
11년간
나는 진실을 찾았다고 믿었다.
하지만.
거울을 본다.
마지막으로.
거울은 무엇을 비추고 있었는가.
대상의 거짓말인가.
나의 확신인가.
진실인가.
각본인가.
아니면.
거울은 아무것도 비추지 않았는가.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
보여주었는가.
나는 문을 연다.
복도로 나간다.
문이 닫힌다.
뒤에서
취조실이
텅 비어 있다.
단방향 거울만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다.
아무도 비추지 않은 채.
120분이 지났다.
취조실은 비어 있다.
테이블 위에
조서 한 부.
7페이지.
6페이지의 확신.
1페이지의 백지.
녹음기.
꺼져 있다.
95분 15초에서 멈췄다.
재생하면
들릴 것이다.
질문하는 목소리.
대답하는 목소리.
침묵.
그리고.
"모르겠습니다"
단방향 거울.
아무도 비추지 않는다.
한쪽에서는 자신을 보고
다른 쪽에서는 타인을 본다.
하지만 둘 다 비어 있을 때
거울은 무엇을 비추는가.
복도 밖에서
발소리가 들린다.
누군가 온다.
다음 조사.
다음 대상.
다음 확신.
문이 열린다.
새로운 조사자가 들어온다.
조서를 본다.
녹음기를 본다.
거울을 본다.
앉는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번엔 확실하다"
"이번엔 증거가 있다"
"이번엔 자백받을 수 있다"
녹음기를 켠다.
빨간 불이 켜진다.
다시.
단방향 거울이
새로운 얼굴을 비춘다.
확신에 찬 얼굴을.
그리고 묻는다.
무음으로.
거울은
당신을 비추고 있는가.
아니면
당신을 유지시키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