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종종 '만약(If)'이라는 가정을 먹고 산다. 특히 삶의 항로가 불분명하거나, 현재의 내가 서 있는 지표면이 진흙탕처럼 질척인다고 느껴질 때 이 가정은 더욱 강력해진다.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의 스핀오프인 <베터콜 사울> 시즌 6의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월터 화이트와 사울 굿맨은 신분 세탁을 기다리는 외딴 지하방에서 '타임머신'에 대해 대화한다.
사울이 묻는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어?" 월터는 특유의 냉소적인 과학자적 태도로 답한다. "당신이 말하는 건 열역학 제2법칙을 무시하는 헛소리일 뿐이야. 당신이 묻고 싶은 건 **'후회'**에 관한 거겠지."
우리는 이 대목에서 근원적인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후회란 과연 무엇인가? 심리학적으로 후회는 단순히 '잘못된 선택'에 대한 아쉬움이 아니다. 심리학자 토마스 길로비치(Thomas Gilovich)에 따르면 후회는 크게 두 가지 층위로 나뉜다. 내가 저지른 일에 대한 '행동의 후회(Action)'와 하지 못한 일에 대한 '부작위의 후회(Inaction)'다.
대부분의 단기적 고통은 전자가 유발하지만, 인생의 긴 궤적에서 우리를 잠 못 들게 하는 것은 대개 후자다. "그때 그렇게 했더라면 얻었을 이익" — 그것이 명예든, 부든, 혹은 사랑하는 사람이든 — 에 대한 미련은 현재의 결핍과 만나 날카로운 통증을 만들어낸다.
당시의 나 역시 그랬다. 불안한 바다 위에서 배를 겨우 유지하고 있었지만, 상황이 변하지 않기만을 바랐다. 문제가 해결되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터지지 않기만을 바라며 하루하루를 버티는 상태. 마치 감당하기 어려운 비싼 물건을 할부로 사고 "매달 월급이 들어오니 문제없을 것 같다"고 스스로를 속이던 위태로운 평온의 시기였다. 인간관계는 정리되었고, 나는 특정 관계나 일에 광적으로 집착하며 도피처를 찾았다. 그때 내게 찾아온 것이 바로 '타임머신'이라는 상상이었다.
타임머신이라는 상상은 매우 효과적인 심리적 방어기제다. '후회'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것은 자존감에 직접적인 상처를 준다. 나의 부족함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타임머신'이라는 가정이 개입하는 순간, 고통은 완화된다. "내가 고칠 수 있다"는 상상은 나의 과오를 '수정 가능한 오류'로 치환하며, 나를 직접적인 자책으로부터 분리시킨다. 회피는 나쁜 것이 아니라, 견딜 수 없는 후회의 감정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 마련한 일종의 심리적 안전장치였던 셈이다.
그렇다면 이 후회에는 유효기간이 있을까? 후회의 영향력은 과거의 사건이 발생한 시점이 아니라, '현재의 결핍'과 만날 때 결정된다. 현재 만족스러운 삶을 사는 이에게 과거의 실수는 '성장의 밑거름'이라는 훈장이 되지만, 현재가 고통스러운 이에게 같은 실수는 '인생을 망친 낙인'이 된다.
즉, 후회의 영향력은 과거에 고정된 것이 아니라 현재의 내가 과거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매일 리뉴얼된다. 그런 의미에서 후회는 장기적인 동시에 단기적이다. 우리가 타임머신을 꿈꾸는 한, 후회의 유효기간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글의 마지막에서 월터 화이트가 지적했듯, 우리가 정말 묻고 싶었던 것은 "어제로 돌아가는 법"이 아니라 "오늘의 후회를 어쩌지 못하는 마음"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타임머신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정말로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내는 사람들일까?
물론 그들 중 일부는 현재에 온전히 몰입한 이들일 것이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단순히 과거를 돌아보지 않을 정도로 무신경하거나, 자신의 선택이 항상 옳았다고 믿는 오만에 빠져 있을지도 모른다. 진정으로 충실한 삶이란 후회가 없는 삶이 아니라, '그때의 어리석었던 나'와 '지금의 나'를 분리하지 않고 하나의 역사로 받아들이는 통합의 과정에 가깝다.
후회는 우리에게 "다음에 비슷한 상황이 오면 반드시 이렇게 행동하리라"는 기준을 제공하기도 한다. 하지만 잔인하게도 삶에서 100% 똑같은 상황은 결코 다시 오지 않는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항상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다 해도, 지금의 의식을 가진 채 돌아가지 않는 한 우리는 필연적으로 같은 선택을 반복할 것이다.
타임머신이라는 환상을 걷어낼 때, 비로소 우리는 월터 화이트가 질문했던 '진짜 후회'를 직시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야 비로소 우리는 "그때 그랬어야 했다"는 미련을 "지금은 이렇게 하겠다"는 결단으로 바꿀 수 있는 열쇠를 쥐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