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사원이였을때

by Ehecatl

신입의 착각

어느 조직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 내가 생각한 '에이스'의 정의는 명쾌했다. 주어진 상황에서 마음을 다잡고, 기대치와 내 실력을 정확히 맞물리게 하는 것.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그들이 원하는 결과물을 내놓는 것만이 정답이라 믿었다.

신입사원 시절의 나는 간절했다. 선배들의 언어 규칙을 아무런 의심 없이 수용했고, 내부 절차에 100% 맞추지 못하면 불안함에 밤을 지새웠다. 업무란 이미 정해진 트랙이 있고, 그 위를 매번 똑같이 반복해서 달리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매일 새로운 이슈가 쏟아짐에도 불구하고, 나는 스스로를 '매번 똑같은 제품을 찍어내야 하는 생산 라인'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맥락 없는 성실함의 대가

이유와 배경지식을 모른 채 '형식'에만 집착하니 업무는 곧 공포가 되었다. 작은 수정 사항이라도 생기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몰라 눈앞이 캄캄해졌다. '몰라서 시도조차 안 한 것'은 아니었다. 야근을 자처하고 회사 교육을 찾아 듣고, 주변에 끊임없이 도움을 구했다. 심지어는 "내 월급을 줄 테니 대신 가르쳐달라"고 애원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몸은 정직했다. 마음의 고통은 원형탈모라는 신호로 나타났다. 결국 나는 그 맞지 않는 옷을 견디지 못하고 퇴사라는 선택을 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것은 주니어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였다. 실패를 용인하고 성장을 기다려주는 문화가 부재한 상황에서, 맹목적인 추종은 독이 될 뿐이었다.


OJT와 온보딩 사이: 침묵의 기술

인사(HR)의 관점에서 보면, 당시 내게 필요했던 것은 단순한 OJT(On-the-Job Training)가 아니라 온보딩(On-boarding)이었다. OJT가 툴 사용법이나 복리후생 같은 기능적 수행 능력을 단기간에 가르치는 것이라면, 온보딩은 수개월에 걸쳐 조직의 문화와 암묵적 룰을 섭렵해 나가는 과정이다.

설명해 주는 이 없는 냉혹한 조직에서 실수를 피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침묵'하고 그들을 수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왜 그토록 실수에 민감할까? 대한민국은 자원이 부족하고 인력에 의지해야 하는 좁은 사회다. 실패가 곧 낙오로 여겨지는 문화 속에서, 우리는 부모나 선배가 내놓은 정답을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그대로 받아들인다. 이해되지 않아도 일단 따르는 것이 미덕이라 교육받았기 때문이다.


다시 시작해야 할 지점

하지만 맥락을 모른 채 따르기만 하는 방식에는 필연적으로 한계가 있다. 아무리 완벽하게 따라 해도 기존의 성과를 넘을 수 없으며, 제아무리 잘해도 50% 이상의 독창적인 성과를 내기 힘들다. 타인의 정답 위에 세워진 성은 결국 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 나는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걸까?"

이 슬픈 깨달음은 결코 끝이 아니다. 정해진 트랙이 없음을 인정하는 순간, 비로소 나만의 트랙을 설계할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제는 누군가의 언어를 맹목적으로 복사하는 생산 라인이 아니라, '왜'라는 질문을 던지며 맥락을 짚어가는 진짜 전문가의 길로 들어설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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