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를 직시하는 조직 설계자의 역할
인류는 약 5천 년의 역사를 기록해왔다. 그 기록 덕분에 우리는 어떤 위기 앞에서도 유사한 사례를 찾아낼 수 있었다. 전쟁도, 경제 붕괴도, 기술 혁명도 — 완전히 같지는 않더라도 참고할 만한 선례가 항상 있었다.
왜 그랬을까. 인류 역사상 스스로 판단하는 존재는 오직 인간뿐이었기 때문이다. 거짓말도 인간만 할 수 있었고, 실수와 잘못된 선택도 인간의 몫이었다. 제국을 세우는 것도, 스스로 무너지는 것도 오직 인간이 해왔다.
그래서 역사는 곧 '인간이 만들어온 패턴의 기록'이었고, 우리는 그 패턴 위에서 미래를 예측하고 준비해왔다.
그런데 AI가 등장했다. 인류는 '판단하는 또 다른 존재'를 처음으로 마주하게 됐다. 판단하고, 학습하고, 심지어 인간보다 빠르게 결론을 내리는 존재. 역사라는 참고서가 처음으로 쓸모를 잃는 순간이었다.
이것이 AI 시대 공포의 본질이다. 단순히 일자리를 잃을까 봐 두려운 게 아니다. 우리가 수천 년 동안 의지해온 '참고할 수 있는 역사'가 처음으로 사라졌다는 사실이, 우리를 근원적으로 흔든다.
이런 공포는 특정 직군이나 세대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 전 세대에 걸쳐 비슷한 불안이 흐르고 있다. 언젠가 내가 쓸모없어지는 건 아닌지. AI가 우리 삶에 어떤 방식으로 파고들지. 심지어 왜 이렇게 무서운지조차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태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주변에 많고 유투브와 매체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AI 기술이 들어옴에 따라 우리를 대체할 것이라는 존재론적 공포도 여기저기 퍼져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처음겪는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나는 우선 우리가 느끼고 있는 '공포'라는 개념 자체부터 들여다보려 했다. 그 과정에서 만난 것이 철학자 지두 크리슈나무르티의 통찰이다. 많은 철학자가 공포를 추상적인 감정으로 다룰 때, 그는 이를 사고와 시간의 산물로 구조적으로 해부했다. 이에 이 통찰을 빌려 조직의 행동 패턴을 설명하는 데 가장 적합한 도구로 삼아보았다.
크리슈나무르티는 말한다. 인간의 모든 생각은 과거의 기억과 지식 — 즉 '이미 아는 것(The Known)'의 산물이다. 우리는 생각을 통해 미래를 대비하려 하지만, 그 생각 자체가 이미 과거에 갇혀 있다고 보았다. 생각에 기대는 한, 우리는 결코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마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공포의 구조도 같다. '과거의 나(아는 것)'가 '알 수 없는 미래(모르는 것)'를 통제하려 할 때 발생하는 심리적 저항 — 그것이 바로 공포다. 그리고 공포를 없애기 위해 통제를 강화하면, 그 통제 시스템 자체가 또 다른 공포를 낳는다. 악순환이다.
이에 크리슈나무르티가 공포를 극복하기위해 제시한 해법은 '직시(Observation)'다. 공포를 피하거나 억누르려 하지 말고, 어두운 방에 불을 켜듯 그 실체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관찰할 것. 그럴 때 비로소 공포는 힘을 잃는다.
크리슈나무르티가 제시한 공포의 해법인 '직시'는 개인의 내면을 넘어 조직이라는 거대한 집단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결국 조직이란 개별 인간들의 의식과 심리가 모여 형성된 '확장된 자아'이기 때문이다. 개인이 불안할 때 강박적으로 주변을 통제하려 들듯, 공포에 사로잡힌 조직은 더욱 촘촘한 감시와 통제 시스템 뒤로 숨어버린다. 하지만 어두운 방에 불을 켜듯 조직 내의 문제를 투명하게 드러내고 '직시'할 때, 비로소 그 조직을 옥죄던 통제의 사슬은 힘을 잃게 된다.
우리는 AI 시대에 공포를 직면하기 위해 스스로 무엇이 무서운지 천천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3. 조직이 공포를 다루는 방식: 통제의 악순환
다만 조직은 개인과 달리, 공포를 그냥 둘 수가 없다. 개인은 혼자 앉아 공포를 직시하는 선택을 할 수 있지만, 조직은 책임과 구조와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그런 선택이 쉽지 않다.
그래서 기존에 조직이 공포에 대항하기위해 선택하는 것은 대부분 통제다. 불안이 생기면 새로운 직책을 만들고, 서류 절차를 강화하고, 보고 체계를 촘촘하게 짠다. 처음에는 합리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배보다 배꼽이 커진다.
통제를 위해 인력을 늘리고, 그 인력을 관리하기 위해 또 다른 인력이 필요해진다. 성과를 증명하기 위한 보고서와 자격증이 쌓이는 동안, 정작 제품과 서비스라는 기업의 본질은 뒷전으로 밀린다.
실적이 나오지 않으면 조직은 또 같은 결론을 내린다. "통제가 부족했다." 더 강한 규제와 서류가 도입된다. 공포를 통제로 다스리려 한 조직의 끝은, 결국 그 통제의 무게에 스스로 짓눌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직 안에서 이러한 공포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각 부서의 전통적인 역할을 먼저 살펴보자.
회계: 돈의 흐름을 투명하게 만든다. 숫자로 현재 상태를 드러내는 것이 본업이다. 그러나 숫자는 이미 벌어진 일의 기록이다. 구성원에게 직접적으로 와닿지 않는 언어이며, 숫자만으로 불확실성의 공포를 다루기에는 한계가 있다.
생산/품질: 공정의 안정성과 결과물의 수준을 관리한다. 표준을 세우고 오차를 줄이는 것이 목표다. 그러나 사물과 공정의 투명성이지, 사람의 심리와는 거리가 있다.
영업: 시장의 반응을 가장 먼저 몸으로 감지하는 부서다. AI 시대의 변화를 현장에서 직접 느끼지만, 그 공포를 조직 내부로 가져와 다루는 역할은 하지 않는다.
기획/전략: 미래를 설계하려 하지만, 크리슈나무르티가 지적한 것처럼 그 설계 자체가 과거 데이터로 만든 예측에 기반한다. AI 시대에 그 예측의 유효기간은 점점 짧아지고 있다.
이 부서들이 각자의 역할을 제대로 해낼 때 조직의 불확실성은 줄어든다. 그러나 크리슈나무르티가 말하는 '공포의 실체를 드러내는 것' — 그 역할을 맡기에는 각 부서의 전통적인 언어와 방식이 맞지 않는다.
그 역할은 HR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HR은 조직의 의식과 마음을 다루는 유일한 부서다. 공포를 억누르거나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 안의 공포를 투명하게 드러내고 구성원 스스로 그것을 직시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드는 것. 그것이 AI 시대 HR의 새로운 역할이다. 과거의 '규정 파수꾼'에서, '조직의 거울'로...
그렇다면 그 거울은 무엇을 비춰야 하는가.
첫째는 현재의 실체다. 외부의 변화 앞에서 우리 조직이 지금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 두려워하고 있는가, 외면하고 있는가, 아니면 통제로 도망치고 있는가. 이것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것이 시작이다.
둘째는 미래와의 거리다. 우리가 되고 싶은 모습과 지금 사이의 간격. 이 갭을 정직하게 공유하는 조직만이 공포를 직시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러나 이 두 가지가 가능하려면 하나의 전제가 먼저 있어야 한다. 구성원이 솔직하게 말해도 안전하다는 믿음 — 심리적 안전성이다. 자신의 의견과 두려움을 꺼내놓아도 괜찮다는 확신이 조직 안에 먼저 깔려 있어야 한다. 그것이 공포를 통제가 아닌 관찰로 전환시키는 조직의 토대다.
심리적 안전성이 있을 때 구성원은 현재를 직시할 수 있고, 현재를 직시할 때 미래와의 갭을 함께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갭을 함께 볼 수 있을 때, 공포는 비로소 방향이 된다.
그렇다면 그 환경을 만드는 구체적인 조건은 무엇인가.
① 기준은 '심판'이 아니라 '거울'이어야 한다. "이 기준에 못 미치면 넌 퇴출이야." 이것은 과거의 잣대로 현재를 난도질하는 통제다. 반면 "우리가 지향하는 수준은 여기이고, 지금 당신의 위치는 여기다"라고 말하는 기준은 다르다. 판단 없이 상태를 비춰줌으로써, 구성원이 스스로를 관찰하게 만든다.
② 가치는 '정답'이 아니라 '북극성'이어야 한다. 조직의 가치를 "무조건 따라야 할 교리"로 강요하면 통제가 된다. 그러나 "불확실한 바다를 항해할 때 우리가 함께 바라보는 기준점"으로 공유한다면, 그것은 공포로부터의 도망이 아니라 현재에 집중할 수 있게 돕는 최소한의 지지대가 된다.
③ 불확실성을 정직하게 말하는 것. 전통적 HR은 거짓 확실성으로 공포를 덮어왔다. "걱정 마, 회사가 다 책임질게."와 같은 달콤한 말은 상호 신뢰를 훼손할 수 있고 없던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이제는 다르게 말해야 한다. "우리도 내일을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이 불확실성 속에서 투명하게 서로를 마주하는 태도만큼은 함께 지켜나갈 것이다." 라는 태도만이 조직과 구성원이 서로를 마주하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며, 나아가 외부의 불확실성을 극복할 첫 단추라고 생각한다.
다만 한국 조직은 오랫동안 무조건적인 충성과 확실성의 언어 위에서 성장해왔음을 우리 모두는 어느정도 알고 있다. 그래서 이런 솔직함이 낯설고 때로는 위험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AI 시대에 거짓 확실성은 더 이상 구성원을 안심시키지 못한다. 지금 당장 완전히 바꿀 수 없더라도, 그 방향을 잃지 않는 것 — 그것이 지금 내가 생각하는 HR의 자세다.
"예를 들어, AI 도입으로 직무가 사라질까 두려워하는 팀원에게 '안 잘리니까 걱정마'라고 안심시키는 대신(통제), AI가 우리 업무의 어떤 부분을 대체하고 있고 우리의 역량이 어디로 이동해야 하는지 데이터를 투명하게 펼쳐놓고 토론하는 것(직시/거울)이 그 시작이다."
우리가 세우는 기준과 가치는 공포를 가두는 감옥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것은 공포라는 안개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서로의 실체와 조직의 진실을 드러내는 조명이어야 한다.
HR은 사람을 뽑고 관리하는 곳으로만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다. 조직 안의 불확실성을 직시하게 하고, 그 공포를 함께 걸어갈 수 있는 방향으로 바꾸는 거버넌스 설계자여야 한다.
AI라는 지도 없는 땅 위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강한 통제가 아니다. 서로를 똑바로 볼 수 있는 용기, 그리고 그 용기를 가능하게 하는 조직의 설계. 그것이 이 시대 HR의 본업이다.
다음시간에는 그럼 HR 은 어떠한 기준을 가져가며 일을 해야하는지 같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