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의 유효기간(HR)

by Ehecatl

채용공고에는 없지만, 경영진이 가장 원하는 것


인사팀장으로 일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경영진의 말 뒤에 숨겨진 언어를 읽는 법을 배우게 된다.


"좋은 사람 뽑아주세요." 이 말 앞에서 나는 늘 잠시 멈췄다. 좋은 사람이란 무엇인가. 역량이 뛰어난 사람인가, 성장 가능성이 있는 사람인가, 팀워크가 좋은 사람인가. 어떤 채용공고에도 명시되지 않고, 어떤 면접 평가표에도 항목으로 등재되지 않지만 경영진이 가장 내심 원하는 것이 있었다. 완전히 자기 사람, 즉 충성하는 직원이었다.


그것은 눈치채기 어려운 욕망이었다. 직접적으로 말하는 경영진은 없다. 충성하는 직원을 모집한다고 채용공고에 쓰는 회사도 없다. 그러나 나는 알 수 있다. 면접이 끝나고 나서 오가는 대화, "그 친구 좀 회사에 충성할 것 같아요?"라는 질문 속에 그 바램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 바램은 이렇게 형성된다. 충성하는 직원은 오랜 시간 높은 성과를 내며 헌신하고, 경영진을 위해 항시 노력한다. 주어진 자원보다 더 많은 것을 뽑아낼 수 있는 사람이다. 기업 입장에서 이보다 효율적인 인재상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니 충성은 채용의 숨겨진 1순위였다.


그런데 나는 어느 날부터 이 바램이 점점 변화해야 한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어릴적 신입사원은 당연히 열정이 있어야 되고 모두다 충성을 가장 큰 가치로 두고 있는 조직의 문화가 AI 의 등장으로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되었다.


충성을 말하는 사람의 아이러니


전국의 채용담당자와 입사지원자는 암묵적인 합의 안에 있다. 회사는 충성을 원하고, 지원자는 충성을 보여준다. 면접장에서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 회사에 헌신하겠습니다"라는 말은 여전히 강력한 무기처럼 통용된다. 그러나 뽑는 쪽에 서서 수백 번의 면접을 거치고 나서 나는 시장에서 대체 불가능한 전문성을 가진 사람은 충성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자신이 어떤 문제를 어떻게 풀 수 있는지를 말한다. 반대로 충성 외에 내세울 것이 없는 사람일수록 헌신과 성실함을 앞세운다. 이 구도 속에서 충성을 가장 중요한 채용 기준으로 삼는 기업은, 사실상 이렇게 선언하는 것 아닐까? "우리는 전문성보다 순종을 원합니다. 정해진 범위 이상으로 헌신시킬 사람을 찾습니다."


AI 시대에 개인의 역량은 갈수록 극단적으로 갈라진다. AI를 얼마나 능숙하게 다루느냐에 따라 한 사람의 생산성이 열 사람, 스무 사람의 그것을 넘어선다. 이런 시대에 자신의 전문성을 갈고닦는 사람은 더 나은 조건을 찾아 움직인다. 그것은 배신이 아니라 합리적 선택이다. 충성심으로 그들을 묶어두려는 시도는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충성이라는 개념은 처음부터 무엇이었는가.


충성심은 도덕이 아니라 시대의 산물이었다


충성심을 미덕의 관점으로 보아 그 자체로 충분히 가치있는것임은 맞다. 그러나 자본주의사회에서 조직에게 충성이 그토록 강력하게 요구된 데는 철저하게 구조적인 이유가 있다고 학자들은 말한다.


제조업과 대규모 조직이 세상을 움직이던 시대, 인간은 생산과 관리와 보안의 유일한 수단이었다. 공장은 사람 없이 돌아갈 수 없었고, 기업의 노하우는 사람의 머릿속에 저장되었으며, 조직 문화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망으로 유지되었다. 수십, 수백 명을 복잡한 설득 없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려면 상명하복의 문화가 필요했고, 그것의 다른 이름이 바로 충성이었다.


개인의 입장에서도 충성은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거기에는 암묵적인 교환 계약이 있었다.


국가는 말했다. 나라를 위해 희생하면 국가가 너를 돌본다. 기업은 말했다. 우리에게 헌신하면 정년을 보장한다. 공동체는 말했다. 가문을 위해 살면 노후는 우리가 책임진다.


그 약속이 살아있을 때, 충성은 미래에 대한 가장 합리적인 보험이었다. 먼 훗날을 스스로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삶, 조직의 성장을 곧 나의 성장으로 여길 수 있는 삶. 그것이 충성의 대가였다.


그런데 이 교환 계약은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먼저 약속을 어긴 것은 기업이었다.


과거 구조조정, 희망퇴직, 성과 중심의 계약직 전환. 기업은 과거에 경영 환경이 바뀔 때마다 '조직이 개인을 책임진다'는 전제를 조용히 철회해왔다. 안타깝게도 대를 위한 소의 희생으로 기존 충성을 바친 개인에게 매출의 한계로 그간 암묵적으로 선배들이 받아왔던 메리트를 안타깝게 줄수 없게 되었다고 설득한다. 물론 당연하게도 회사의 사정으로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받아왔던 충성만은 여전히 요구했다. 계약의 한쪽은 사라졌는데, 반대쪽 의무만 남아있는 기묘한 상황. 오래 헌신했던 직원이 정작 시장에 나오면 커리어가 너무 좁게 굳어버렸음을 뒤늦게 깨닫는 장면을 나는 너무 많이 봐왔다.


그럼에도 기업이 맹목적 충성을 놓지 못하는 이유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한다. 정말 기업은 아직도 과거 방식의 충성을 원하는가. 사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넷플릭스는 이미 오래전에 선언했다. “우리는 가족이 아니라 프로팀이다.” 링크드인의 리드 호프만은 ‘투어 오브 듀티’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투어 오브 듀티’ 란? 유한한 미션 단위의 동맹으로 그 기간 동안 서로 최선을 다하고 이후는 각자의 길을 간다는 것을 말한다. 이를 반영하듯 국내에서도 이미 성과 중심 연봉제, 수시 채용, 역할 기반 계약직 전환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음을 알수 있다. 이것들은 기업이 기존의 충성을 원한다는 신호가 아니다. 기여를 원한다는 신호다.


그렇다면 모든 기업이 충성의 시대를 벗어났는가. 그렇지 않다. 문제는 바로 여기서 발생한다. 선진적인 기업은 이미 기여의 언어로 넘어갔지만, 대부분의 조직은 말로는 기여와 성과를 외치면서 실제로는 여전히 충성을 요구한다. 핵심가치에는 ‘자율과 책임’을 새겨두고, 회식 불참에는 눈치를 주는 조직. ‘수평적 문화’를 내세우면서 결재 라인은 여전히 다섯 단계인 조직. 이 말과 행동의 간극이 오늘날 직장인들을 가장 피곤하게 만드는 것이다.


충성심은 측정되지 않기 때문에 어디에든 쓸 수 있다. 그리고 측정되지 않기 때문에 공정한 보상이 불가능하다.


위 문구와 같이 충성심의 정성적 속성이 장점이자 단점이다. 기업은 이 딜레마를 해결하지 못한 채, 충성을 원하면서도 충성에 제대로 보답하지 못하는 구조적 모순 안에 갇혀있다. 그래서 충성을 계약으로 명확히 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시도가 등장한다. 근로계약서, 직무기술서, KPI 등을 통해 업무의 범위, 책임을 명문화 한다. 그런데 이 모든 장치들이 하는 일은 결국 충성의 범위를 제한하는 것이다.


충성의 본래 정의는 정반대다. 어떤 상황에서도 범위를 묻지 않고 조직을 나보다 앞에 두는 것. 범위를 정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충성이 아니라 계약이다. 지금 우리가 하는 모든 명확화 시도는 사실 충성심을 계약으로 흉내 내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AI는 이 모순 위에 마지막 쐐기를 박고 있다.


AI가 협력자 수준으로 발전할수록, 조직이 대규모 인원의 충성에 의존해야 했던 구조적 이유가 사라진다. 생산은 자동화되고, 지식은 시스템이 축적하며, 보안도 기술이 담당한다. 충성은 두 방향에서 동시에 유효기간이 끝나가고 있다. 기업은 대규모 충성을 받아낼 필요가 줄어들고, 개인은 그 충성의 근거를 잃어간다.


나는 그때 충성이 아닌 기여를 했다


IPO를 준비하던 시절이 있었다. 인사팀장으로서 조직을 처음부터 설계하고, 제도를 만들고, 상장이라는 거대한 목표를 향해 달려가던 그 시간. 나는 그 시절 미친 듯이 일했다. 야근은 당연했고, 주말도 없었으며, 회식 자리조차 아깝지 않았다. 대표와 임원들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기회였으니까.


그런데 돌아보면, 나는 한 번도 회사에 충성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나는 그 미션에 기여하고 싶었던 것이다.


IPO라는, 회사의 역사에 단 한 번뿐인 그 경험이 너무 매력적이었다. 내가 만든 인사 제도가 조직의 뼈대가 되는 것, 내 판단이 수십 명의 커리어에 영향을 미치는 것,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이 누구보다 빠르게 성장하는 것. 그것이 나를 움직인 이유였다. 충성이 아니었다. 기여였다.


그리고 나는 인사팀장으로서 기술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을 지켜보며 한 가지를 배웠다. 진짜로 잘하는 사람에게는 충성을 강조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이미 자발적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충성을 강요해야 하는 순간은, 역설적으로 그 사람이 이미 마음이 떠났거나 애초에 미션과 맞지 않는 사람이었을 때였다.


지금도 나는 한 번만 더 그런 미션을 만날 수만 있다면, 지금 내 상황이 여의치 않더라도 그렇게 일할 수 있다. 회식도, 야근도, 그 어떤 헌신도 두렵지 않다. 그것을 충성이라 불려도 상관없다. 다만 그 출발점은 회사의 요구가 아니라 내 안의 기꺼이 하고자 하는 마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기업은 충성하는 직원을 원하는가


원한다. 그러나 충성하는 직원을 뽑고 충성하는 직원을 만드는 보장된 방법은 그 누구도 모른다. 다만 우리가 경험했듯 충성을 강요할수록 진짜 충성은 사라진다. 맹목적 헌신을 요구할수록 스스로 생각하는 인재는 떠난다. 충성을 계약으로 명확히 하려 할수록 충성의 본질은 훼손된다.


그럼 충성이 아니라 어떤 가치를 통해 기업은 기존과 같은 효과를 누릴 수 있는가? 현재 많은 회사들이 여기에 ‘기여’라는 단어를 쓰고있다. ‘기여’란 서로 다른 주체가 공동의 목표를 위해 각자의 자원을 보태는 것이다. 여기에는 위계도 없고 맹목도 없다. 서로의 목적지가 겹치는 동안의 협력이 있을 뿐이다.


평가의 기준도 달라져야 한다. 충성의 기준은 태도였다. 얼마나 오래 남아있었는지, 얼마나 말을 잘 따랐는지. 기여의 기준은 결과다. 어떤 문제를 해결했는가, 어떤 가치를 만들었는가. 지금 이 순간의 임팩트가 중심이 된다.


그리고 기여가 끝나는 순간, 즉 서로의 미션이 달라지는 순간을 아름답게 다루는 법을 배워야 한다. 퇴사한 직원이 외부에서 성장하고 다시 돌아오는 것을 환영하는 문화, 떠난 사람과 동문 네트워크를 유지하는 것, 그리고 이별의 순간 '당신의 다음 도전을 응원한다'고 말할 수 있는 조직. 이것이 충성의 시대 이후에 우리가 만들어야 할 것이다.


충성을 강요하지 않아도 되는 조직은, 사람이 기꺼이 기여하고 싶은 미션을 가진 조직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러한 Off-boarding 을 통해 회사의 장기 재직율이 상승했다는 SHRM 의 분석이 있었다


기업이 찾아야 할 것은 더 충성스러운 직원이 아니다. 사람이 자발적으로 뛰어들고 싶어지는 미션이다. 개인이 해야 할 것은 더 잘 충성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가치와 공명하는 미션을 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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