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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밴드를 이번 달까지만 하고 그만둔다면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잖아?

by 이민재

종종 지금하고 있는 밴드를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 보곤 합니다. 운이 좋다면 몇 년쯤 더 할 수 있겠고, 대운이 따른다면 5년이고 10년이고 음악을 연주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번 달로 밴드가 와해될 수도 있습니다.

사실 지금 밴드 멤버 간 불화가 있다거나, 이런저런 암초를 만났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인디밴드는 학교도 직장도 아닙니다. 다시 말해, 그 어떤 강제성도 없습니다. 누구도 우리에게 많은 시간을 쏟아서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라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스케줄을 짜고 그대로 성실히 하지 않으면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다"


일전에 한 프리랜서 지인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인디밴드가 꼭 그렇습니다. 앨범을 제작하는 일, 공연 기회를 만드는 일, 새로운 곡을 쓰는 일 등.. 우리가 하지 않으면 정체되기 마련입니다. 좋아하는 일이니 시작은 쉬웠지만 강제성이 없는 일을 꾸준히 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4th single '다른' M/V

사실 최근 우리 밴드는 좀 정체된 것 같습니다. 고맙게도 불러주는 클럽이 꽤 생겼고, 싱글앨범도 다섯 장이나 발매한 상황에서 어쩌면 조금 방황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그중에서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한다면 얼마나 많이 해야 할지에 대해 답을 내리긴 쉽지 않습니다. 고민은 길어지고 텐션은 떨어집니다. 혹시 이러다가 밴드가 자연사하는 건 아닐지 걱정도 좀 됩니다.


'만약 밴드를 이번 달까지만 하고 그만둔다면 어떨까'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오른 건 그즈음이었습니다. 정말 그렇게 된다면 어렵게 만난 멤버들(많이 아낀다!), 서투르지만 한 자 한 자 써 내려간 가사들, 많진 않았지만 우리 노래를 좋아해 준 사람들. 모두 기억 저편으로 조금씩 희미해질 것입니다.


'해보고 싶은 것들이 많았는데'

4th single '다른' M/V

덜컥 서글픈 마음이 들었습니다. 우린 아직 못 해본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넷이 같이 여행도 못 가봤고요. 큰 무대에서 우리 노래를 연주해 본 적도 없습니다. 들려주고 싶은 노래도 많이 만들어 뒀는데 아직 세상에 내놓지도 못했습니다.


1년 넘게 손 놓고 있던 브런치에 우리 밴드 이야기를 기록하는 것도 아직 제작비와 시간 등의 이유로 아직 발매하지 못한 곡들을 기회가 될 때마다 무대에 올리는 것도 사실 이런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끝날 때 끝나더라도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고 싶달까요.


생각해 보면 꼭 음악이 아니더라도 세상 많은 것들이 그런 것 같습니다. 제 본업에 대해서도 이번 달까지만 하고 그만둔다고 생각하니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습니다. 당장 내일 지구가 종말 한다고 생각하면 가족이나 친구들 그리고 살면서 알게 된 수많은 사람들에게 못다 한 말들이 많이 아쉽게 느껴질 것 같습니다.


만약 이 모든 게 오늘을 마지막으로 끝난다면요.


지금 우린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5th single '눈을 감아줘요'

코지앤노이지(KZNY)


2022년 10월에 결성된 4인조 밴드. 노이즈 섞인 기타와 팝적인 멜로디를 지향하는 중. 2023년 첫 번째 싱글 앨범 '여긴 따뜻할 거야'를 발매했으며 이후 ‘작은배’와 ‘자문自問’을 발매했다. 현재 홍대 및 이태원 클럽들을 중심으로 공연 등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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