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부터 괜찮은 척을 배웠을까?
0. 프롤로그 : 우리는 언제부터 괜찮은 척을 배웠을까?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척’을 배운다.
울고 싶을 때 울지 않는 법, 상황에 맞는 얼굴을 고르는 법.
그것은 누군가에게 배워 익힌 기술이라기보다, 살아가기 위해 자연스럽게 몸에 밴 연습에 가깝다.
아이는 집에서는 한없이 어린아이였다가도, 어린이집에 가면 금세 사회적인 얼굴을 갖는다. 칭찬받기 위해 얌전한 척을 하고, 혼나지 않기 위해 이해한 척을 한다.
아직 말도 서툰 나이지만, 그 작은 사회 안에서 우리는 이미 첫 연기를 시작한다.
이때부터 ‘있는 그대로의 나’보다 ‘상황에 맞는 나’가 조금씩 앞서기 시작한다.
청소년이 되면 ‘아직 어린데, 어른처럼 보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어제까지 좋아하던 것들을 유치하다며 밀어내고, 더 성숙해 보이는 선택으로 자신을 다듬는다.
아이 같은 모습은 숨기고, 어른에 가까운 얼굴을 연습한다.
그 시절의 우리는 사실 가장 불안했지만, 동시에 가장 당당한 척을 하던 때이기도 했다.
성인이 되면 자유가 늘어날 것 같지만, 그보다 먼저 책임이 찾아온다.
선택의 범위가 넓어지는 만큼, 그 결과도 온전히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
불안하지만 괜찮은 척을 하고, 아직 서툰데도 어른인 척 하루를 버텨낸다.
사회생활은 ‘척’의 집대성이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은 얼굴로 출근하고,
화장실에서 울고 나와 아무 일도 없었다는 표정으로 다시 자리에 앉는다.
그렇게 우리는 하루하루 ‘어른인 척’을 연습하며 살아간다.
시간이 흘러 30대와 40대가 되면, ‘척’은 더 조용하고 단단해진다.
설명은 줄어들고, 비교는 늘어난다.
잘 살고 있는 척, 무너지지 않는 척, 버티고 있는 척이 일상이 된다.
책임은 역할을 넘어 정체성이 되고,
괜찮은 척하는 삶은 어느새 익숙한 생활 방식이 된다.
중년 이후에도 ‘척’은 끝나지 않는다.
다 아는 척하지만 사실은 처음 겪는 상실 앞에서 서성이고,
내려놓은 척하지만 아직 손에서 놓지 못한 것들이 많다.
몸은 느려지는데, 마음은 오히려 더 또렷해진다.
괜찮은 척을 오래 해온 사람일수록, 그 또렷함은 더 깊은 질문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인생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비로소 잠시 멈춰 선다.
괜찮은 척을 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
잘 살았는지를 따지기보다,
어떤 ‘척’들과 함께 여기까지 걸어왔는지를 돌아보는 시간이다.
어쩌면 인생은 ‘척’을 없애는 여정이 아니라,
각 나이에 필요한 ‘척’을 배우고, 내려놓고, 다시 바꾸며 살아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나는 정말 괜찮은 걸까?”
그 질문을 멈추지 않는 한, 우리는 아직 성장 중이다.
『’척’의 일생』은 바로 그 질문에서 출발한다.
우리가 언제부터 괜찮은 척을 배우기 시작했는지,
그리고 지금, 어떤 ‘척’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차분히 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