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광석의 노래들로 만든 뮤지컬
챗 GPT에게 물었다. ‘음악계에서 시대적 아이콘으로 불리려면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 챗 GPT의 답은 다음과 같다. 시대적 아이콘인 사람들은 단순히 음악적 재능이나 히트곡 개수로 평가되지 않습니다. 이들은 시대의 문화를 정의하거나 사회적 변화를 이끄는 데 이바지하며, 대중의 감정을 대변하거나 시대의 상징이 되는 특징을 지닙니다. ‘김광석’이라는 이름 세 글자에 자연스레 시대적 아이콘이라는 키워드가 떠오른 내가 자연스레 이해됐다. 이등병의 편지, 서른 즈음에 등. 가사와 멜로디로 공감을 끌어올리는 짙은 감성의 명곡들을 직접 만들고 부른 김광석이 시대적 아이콘이 아니라면, 누가 시대적 아이콘이라는 말인가. 그가 불렀던 주옥같은 노래들을 스토리텔링으로 재구성한 뮤지컬이 11월부터 1월까지 진행된다고 해 대학로를 찾았다.
뮤지컬 <바람으로의 영화>는 대학 밴드 동아리 사람들의 이야기다. 밴드 오디션으로 시작되는 뮤지컬. 신입생다운 패기로 밴드 바람 메인 보컬에 도전장을 낸 주인공 이풍세. 소극장을 쩌렁쩌렁 울리는 성량과 힘이 넘치는 고음에 ‘이 정도면 무명가수전 오디션 프로그램 <싱어게인>에 출연해도 씹어 먹겠는데?’라고 생각했다. 일반적으로 뮤지컬은 가창 실력이 좋은 배우들의 연기로 이뤄진다는 걸 고려해도 이풍세의 노래는 정말 가수 이상으로 놀라웠다. 모든 배우가 퍼커션, 일렉 기타, 키보드, 하모니카 등 악기를 직접 연주하는 모습도 극의 집중도를 높이는 감사한 요소였다.
시대를 노래한 김광석 곡들로 이뤄진 뮤지컬이기 때문일까. 등장인물들은 저마다 삶의 우여곡절을 경험한다. 음악 하며 살고 싶다는 순수한 열망과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장벽. 가족의 아픔과 상실. 시대의 억압에 저항하는 청춘. 당장의 안전을 위해 내려 놓아야 하는 사랑과 낭만. 삶은 다크 초클릿과 같아서 달콤한 일만 있지 않다. 쌉싸름한 일들로 사람은 현실과 타협하며 철이 든다.
‘인생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왔는데’. 아직 경험하지 못하고 상상도 잘 안 해본 60대를 담은 노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배우자를 떠나보내며 헛헛한 마음을 담아 부르는 모습은 극이 끝나고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나이를 불문하고 공감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배우의 연기력과 김광석 노래의 힘 아닐까.
삐삐, 아령 같은 느낌의 투박한 휴대폰, 한총련과 학생운동도 소극장을 타임머신으로 탈바꿈하는 요소들이다. 마치 내가 90년대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 학생 운동의 실패와 취업 등 눈앞의 현실을 책임지기 위해 흩어진다. 시간이 흘러 동아리 20주년 콘서트를 위해 다시 모인 밴드 바람. 저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여전히 노래를 사랑하는 그들의 마음은 여전하다. 밴드 20주년 콘서트에서 초반에 나왔던 <바람으로의 여행>을 다시 부르는 모습을 보며 나도 같이 20년을 떠나보낸 듯한 기분을 느꼈다.
20주년 콘서의 클라이맥스가 다가오고 뮤지컬과 밴드 공연의 경계는 점점 흐려진다. 우리는 뮤지컬 관객을 넘어 밴드 바람의 우여곡절을 함께한 동료로서 20주년 콘서트를 함께 완성하는 존재가 된다. 다 같이 일어나서 머리 위로 높게 손뼉 치고 노래를 크게 따라 부른다. 앙코르도 여러 번 요청했다. 다 함께 김광석 노래를 부르며 후련하게 작품의 마지막을 마주했다.
엄마가 젊었을 때 유명했다는데 저 사람 알아?라고 물어봐도 번번이 노래에 관심이 없다며 고개를 가로지르던 엄마. 음악에 무관심한 편인 엄마가 김광석 노래는 여러 곡 알고 있다며 뮤지컬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극장을 나온 뒤 엄마는 ‘김광석 노래는 원래도 조금 안다고 생각했는데, 모르던 좋은 노래도 정말 많더라’고 말했다. 그래서 엄마와 나는 집에 돌아가는 내내 함께 김광석 노래 모음을 들었다. 사람을 노래하고 시대를 노래한 김광석 노래는 이렇게 세대를 넘어 모녀의 관심을 한곳에 모았다. 지난 과거가 아쉬워 추억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더없이 좋을 뮤지컬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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