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아, 나 이런 거 좋아했었지 - 그림책 전시회 후기

순수 재미 가득했던 '그림책이 참 좋아' 전시회

by 도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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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는 언제나 거부하고 싶은 나이 한 살을 선물한다. 덕분에 나는 낭랑 28세가 되었다. 낭랑과 나이 사이에 (하고 싶은)을 추가해야 양심적이겠지만, 새해에는 사는 대로 생각하기보다 생각하는 대로 살고 싶기에 괄호 사이 문구는 과감하게 뺐다.


말 그대로 떨어지는 낙엽에도 배 찢어져라 웃어대던 어린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는 무엇이 다른가. 좋아하는 연예인, 입는 옷, 일과 등 거의 모든 것이 변했다. 하지만 한 가지 유구한 취향이 있으니 바로 '이야기'다.


나는 이야기가 참 좋다. 초등학생 때는 그림책을 좋아했고, 중학생 때는 로맨스 인터넷 소설과 일상툰을 보느라 바빴다. 고등학교 때는 이야기가 좋다 못해 역사에 빠져 한국사, 세계사 과목으로 전교 1등을 하기도 했다. 성인이 된 이후로 한동안은 웹소설, 웹툰에 빠졌고 작년부터 다시 종이책 독서를 시작했다. 여기서 눈치챈 사람 있을까. 세월의 흐름에 따라 즐겨 읽는 콘텐츠에 그림책이 사라졌다.


어느 순간 그림책은 아이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해서 손 델 생각도 못 했다. 그런데 도서관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그림책의 매력을 다시금 느꼈다. 길이도 짧아 앉은 자리에서 순식간에 읽을 수 있고, 이야기는 직관적이라 이해하기 쉽고 교훈도 있다. 거기에 딱 맞는 그림까지! 이후 문헌정보 관련 강의에서 향후 '주제 전문 사서, 가령 그램책 전문 사서'가 뜰 것이라는 정보를 접한 뒤로는 지역 독립 서점에 방문하면 그림책을 사고 있다.


예술의 전당에 그림책을 좋아하는 아이와 어른을 위한 전시회가 열렸다. 그림책의, 그림책에 의한, 그림책을 위한 전시회라고 할 수 있겠다. 340여 평의 공간에서 K-인기 그림책 작가 20인의 원화 250여 점의 원화와 미디어아트를 전시 중이다. 내가 일하던 도서관의 그림책 서가 한 줄을 차지하는 책읽는곰 출판사의 그림책이참좋아 시리즈가 전시회로 재탄생했다.


그림책의 장점은 진입장벽이 낮다는 것이다. 그 전에 아직 읽지 않은 상태여도 그림만으로도 이야기의 흐름이 상당 부분 이해가 된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아트센터는 그림책을 '이야기의 유래나 결말이 중요하지 않은, 그 자체로 재미있고 목적이 되는 미디어'라고 평했다. 그의 말과 같이, 결말이 나와 있지 않아도 발상 자체만으로 톡톡 튀는 작품이 많았다.


고무장갑, 야구 장갑, 때밀이 장갑 등 일상에서 접하는 장갑이 등장인물이 되어 극을 이끌고 아파트 이웃과의 어색한 인사 눈치싸움이 주제가 되기도 한다. 익숙한 것을 낯선 매력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이 그림책의 또 다른 매력이지 않을까 싶다.


이번 전시회는 단순히 원화만 전시하지 않고 캐릭터 조형물, 미디어 아트, 직접 책을 소리내어 읽을 수 있는 도서관 공간 등 다양한 체험도 마련돼 있었다.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고 있자면 자연스럽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작품을 흐뭇하게 바라보게 된다. 특히 전시의 마지막 공간에는 전시와 연계된 놀이형 예술체험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시끌벅적했다. 그림책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어 기획자의 세심함이 느껴졌다.


20여 명의 그림책 작가가 만든 다양한 그림책들을 살펴보며 내 취향을 저격하는 작가는 누구인가 찾는 재미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내 마음을 뺏은 작품은 유지우 작가의 '구름 공장'이었다. 수증기가 구름이 된다는 과학적 진실이 아닌 구름을 만드는 공장이 있다는 유쾌한 상상력부터 동글동글 귀여운 그림체와 동물과의 교감 한 스푼이 들어간 감동 이야기까지. 아기자기하면서도 감정적인 킥이 있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나의 취향을 한 번 더 확인할 수 있었다.


전시회를 다 보고 나니 문득 언젠가 그림책 독자를 넘어 그림책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림책을 통해 느낀 따뜻한 감정을 다른 사람도 느끼면 좋겠다. 새로 생긴 희망사항 이루기는 갈 길이 구만리겠지만, 십 리라도 줄이기 위해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림책을 놓지 않고 읽어야겠다. 국내산 그림책. 순수 재미 당도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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