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일과 감정 사이에서

공감과 거리두기의 균형

by Eunhye Grace Lee

사회복지사는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이다. ‘사람을 돕는 일’이라고 단순화하기에는 그 속에 내포된 감정의 복잡성과 관계의 밀도는 결코 가볍지 않다. 누군가의 슬픔에 공감하고, 고통을 곁에서 지켜보며, 필요한 자원을 연결하고 때로는 위기 상황을 함께 버텨내는 일.

사회복지사의 하루는 감정의 연속이자 조절의 연속이기도 하다. 특히 복지 현장에서 마주하는 많은 상황은 단순한 행정 처리로는 수습되지 않는다. 고립된 노인, 학대 의심 사례,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자존감을 잃어가는 사람들. 이들의 삶을 단순히 '사례'로 다루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 이유로, 사회복지사에게는 ‘공감 능력’이 필수적인 자질로 여겨진다.

그러나 나는 어느 순간부터 이 공감이라는 말이 실천 현장에서 오히려 감정적 소진을 불러일으키는 양날의 검이 될 수 있음을 자주 실감하게 되었다. 공감은 상대의 입장에서 이해하고자 하는 태도다.


하지만 그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 사회복지사는 상대의 고통에 너무 깊이 개입하거나 자신의 감정을 지나치게 투사하게 된다. 예를 들어, 고령 이용자가 반복적으로 전화를 걸어오며 불안을 호소할 때, 단순히 ‘도와드려야겠다’는 감정으로만 대응하면 감정적으로 소모되고, 어느 순간 지쳐서 냉소에 빠질 수 있다. 반대로, ‘이건 업무다’라는 선을 너무 분명히 긋고 사람을 감정적으로 차단하려 하면, 정작 사회복지사의 핵심 역량인 신뢰 형성이 어려워진다.


그렇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공감과 거리두기의 균형이다. 이 균형을 잡기 위해 나는 늘 자문한다. 지금 이 반응이 상대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나의 감정을 지키기 위한 회피인가?


가까워지는 것도, 멀어지는 것도 모두 어렵다. 하지만 ‘지나치지 않은 거리’를 유지할 때 비로소 서로를 위한 실천이 가능해진다.


나는 이전에 우울증으로 장기간 집에만 머무르던 한 70대 독거노인을 지원한 적이 있다. 그분은 어느 날 내가 퇴근하기 직전에 전화를 걸어와 “죽고 싶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 순간 나는 직업인의 윤리와 인간적인 감정 사이에서 극도로 흔들렸다. 이용자의 안전을 위해 긴급지원 체계를 가동하고, 경찰과 함께 자택을 방문했다. 그 후 수일간 나는 그분의 상태가 걱정되어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그분은 이후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위기감을 호소하며 나를 ‘정서적 안전망’으로 삼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담당자에서 교체되었고, 그 과정에서 ‘적절한 거리 조절 실패’에 대한 반성과 조정의 시간을 거쳤다.


그때 배운 것은, 감정의 깊이가 실천의 질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감정을 담는 태도이지, 감정 그 자체의 크기가 아니었다.


사회복지사는 매일 수많은 사람과 마주한다. 그들은 모두 각자의 삶을 살아왔고, 그 삶은 어느 하나도 단순하지 않다. 그 모든 이야기에 진심으로 반응하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이상적일지 모르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

또한 그렇게 하다 보면 사회복지사는 금세 번아웃을 겪게 된다. 그러므로 필요한 것은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조절하는 능력, 그리고 공감하되 휩쓸리지 않는 내적 기준이다. 공감은 기술이다. 감정이 아니라, 상대를 이해하기 위한 전문적인 감각이다. 거리두기는 회피가 아니다. 오히려 상대를 더욱 정확히 바라보기 위한 성숙한 태도다.


나는 이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때 내가 무엇을 느끼는지를 관찰하고, 그 감정을 내 삶에 그대로 가져오지 않도록 스스로의 정서를 점검하려 한다. 그리고 일이 끝난 후에는 일에서 들은 이야기와 내 개인의 삶을 분리해낸다. 그러한 분리는 ‘냉정함’이 아니라, 다시 내일의 실천을 이어가기 위한 준비이기도 하다.


사회복지사는 기계가 아니다. 그러나 모두를 이해하려다 자신을 잃는다면 그 실천은 지속되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한 사람의 이야기 앞에서 한 발 가까이 다가서고, 또 한 발 물러서는 그 ‘두 걸음의 균형’을 연습한다.

화, 목,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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