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관계는 정답이 아니라 온도의 문제

by Eunhye Grace Lee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면 가장 먼저 배우는 건 ‘문제 해결’의 기술이다. 욕구를 파악하고, 자원을 연결하고, 제도를 안내하며, 삶의 기능을 회복시키는 것. 이 모든 것의 중심에는 ‘정확한 판단’과 ‘신속한 개입’이 있다.

그러나 현장에 나가면 곧 알게 된다. 삶은 그렇게 간단하게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정답이 있는 수학문제가 아니라, 매 순간 온도를 조절해야 하는 정서의 풍경이라는 것을.


사회복지사가 된 이후, 나는 수많은 ‘정답’을 준비해갔다. 법률과 제도, 상담 기법, 매뉴얼과 지침서... 하지만 정작 클라이언트를 만나면 그들은 내가 준비한 답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들이 바란 건 누군가의 ‘해결’이 아니라, 자신의 말을 들어줄 한 사람의 ‘온기’였다.


특히 일본이라는 타국에서 외국인으로 일하는 내게 ‘정답’은 항상 조심스러운 것이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한 방식이 상대에게는 부담일 수도 있고, 내가 제안한 해결책이 상대의 삶 전체를 고려하지 않은 단편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점점 ‘정답’보다는 ‘관계의 온도’를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다. 온도란 무엇일까. 그건 단지 말투의 부드러움이나 친절함을 뜻하는 게 아니다. 상대의 속도에 맞춰 걷는 태도, 설명보다 기다림을 택하는 인내, 그리고 자신의 정답을 강요하지 않는 유연함.


한 번은 생활보호 신청을 주저하는 고령의 이용자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연금만으로는 생활이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국가에 폐 끼치고 싶지 않다”며 손사래를 쳤다. 나는 제도적으로 가능한 지원내용을 상세히 설명했고, 적용 기준도 정확히 안내했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때 나는 내 설명이 정답이지만, 그의 마음에는 너무 차가운 정답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다음번 만남에서 관련 정보에 관한 이야기를 일절 꺼내지 않았다. 그저 날씨 이야기를 하고, 최근 건강은 어떤지 물었다. 그의 손이 요즘 더 떨리는 듯해 보였고, 나는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 그는 말없이 내 손을 잡으며 웃었다. 그리고 며칠 뒤, 조용히 내게 말했다.

“당신이 말한 지원, 생각해보겠소.”

그때 나는 알았다. 관계란 이해시키는 게 아니라, 마음을 데우는 일이라는 걸. 어떤 말보다도 더 깊은 위로는 ‘서두르지 않는 관심’에서 비롯된다는 걸.


현장에는 수많은 상황이 있다. 폭력을 휘두르는 보호자, 학대를 견디는 아동, 생활고에 시달리는 고령자,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방황하는 청소년. 그들에게 필요한 건 제도도, 서비스도, 상담기법도 맞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그들을 한 인간으로 마주하는 태도, 그들의 시간을 존중하는 온도가 가장 먼저이다. 특히 사회복지 현장에서의 관계는 항상 ‘비대칭성’을 전제로 한다. 도움을 주는 자와 받는 자, 설명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하지만 이 비대칭성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관계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진다. 일방적이거나 교조적인 관계는 필연적으로 거리감을 만든다. 반면, 복지사가 자신의 위치를 낮추고, 상대의 세계에 귀 기울이려는 노력을 보여줄 때, 그 비대칭성은 신뢰로 전환된다.


나는 자주 실수한다. 정답을 너무 빨리 말해버리기도 하고, 상대의 맥락을 충분히 듣지 못한 채 판단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실수 이후, 나는 꼭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가 지금 이 사람과의 거리를 좁히고 있었는가?아니면 내 방식으로만 다가가고 있었는가?”

그 질문은 나를 다시 겸손하게 만든다. 그리고 나를 ‘전문가’가 아니라 ‘사람’으로 서게 한다.


사회복지사라는 이름은 어쩌면 ‘관계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사람’이라는 뜻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전문성은, 지식이 아니라 온도에서 드러난다. 따뜻한 말보다 따뜻한 기다림, 정확한 정보보다 정확한 감각. 이것이 사람과 제도 사이에서 사회복지사가 할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일이다.


이 책을 읽는 당신에게도 어떤 관계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 가족이든, 친구든, 동료든, 클라이언트든, 관계를 맺는 일이란 언제나 정답을 찾는 일이 아니다.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서로의 온도를 지켜주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지켜진 관계는,
어떤 정답보다 오래 남는다.


화, 목,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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