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말이 아니라 마음으로 듣는 법 – 상담이라는 관계의 시작
사회복지사의 하루는 ‘말’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상담, 보고, 회의, 기록... 하루 종일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문장을 다듬고, 상황을 설명하고, 판단을 요청받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모든 ‘말의 노동’ 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말 자체가 아니라, ‘어떻게 듣는가’이다.
나는 일본 복지기관에서 처음 상담이라는 업무를 맡았을 때, 그저 매뉴얼대로 진행하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상황을 파악하고, 필요한 서비스를 연결하고, 적절한 제도를 설명하며 절차를 안내하면 될 것이라고.
그러나 첫 상담을 마친 후, 나는 큰 허무함을 느꼈다. 내가 전달한 정보는 정확했지만, 상대의 표정은 어딘가 불안했고, 나의 설명은 실무적으로는 타당했지만, 그의 마음은 전혀 위로되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나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듣는다는 건, 도대체 무엇일까?’
이용자는 상담실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말한다. 표정으로 말하고, 침묵으로 말하고, 때로는 말하지 않음으로 더 많은 것을 전한다. “힘들다”는 말 뒤에는 ‘도와달라’는 외침이 있고, “괜찮다”는 말 안에는 ‘말하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이 숨어 있다.
그 모든 것을 제대로 듣기 위해서는, 귀보다 마음을 먼저 열어야 한다. 실제로 나는 수많은 상담 장면에서 ‘듣지 못한 척’ 하는 사람들을 봤다. 상담자는 질문을 던지고, 이용자는 대답을 한다. 표면적으로는 대화가 오가지만, 정작 중요한 맥락은 놓치고 있었다. 왜냐하면 상담자는 답을 들으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 순간, 상담은 대화가 아니라 ‘업무 처리’가 된다.
물론 사회복지사는 문제 해결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역할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듣는 태도’가 먼저 준비되어야 한다. 그것은 단순한 경청이나 공감의 기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의 삶을 ‘판단하지 않고 듣는 마음’, 그리고 ‘말하지 않는 것을 감지하는 감각’을 말한다.
나는 외국인이라는 정체성 덕분에, 언어에만 의존하지 않는 상담을 더 빨리 배우게 되었다. 처음에는 표현이 서툴러서 어쩔 수 없이 눈빛과 표정에 의지해야 했고, 말보다 호흡의 리듬이나 침묵의 무게를 더 민감하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 경험이 내게 ‘비언어적 경청’이라는 세계를 열어주었다.
어느 날, 한 여성 이용자가 상담실에 앉자마자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류는 제출되어 있었고, 절차는 진행 가능했지만, 나는 서두르지 않았다. 조용히 차 한 잔을 권하고, 마주 앉아 그녀의 손을 바라보았다. 손가락이 계속 떨리고 있었다. 그 조그만 떨림이 말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주었다. 나는 그저 조용히 말했다.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지금 여기서 함께 천천히 생각해볼까요?”
그녀는 끝내 말없이 상담실을 나갔지만, 다음 주 다시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그날 아무 말도 안 했지만, 이상하게 편했어요. 그래서 다시 왔어요.”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상담은 정보 전달이 아니라, 신뢰 형성이라는 것을. 그리고 신뢰는 ‘잘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말을 들어주는 방식’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말을 듣는다는 것은 결국, 그 사람의 삶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그가 한 말을 논리적으로 판단하는 게 아니라, 그 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배경을 상상하고, 그 침묵이 품고 있는 감정을 존중하는 일이다. 그건 쉽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는 늘 빠르게 판단하고 싶어 하며,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하며,
실수를 줄이기 위해 정답을 먼저 찾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복지는 정답이 먼저인 세계가 아니다. 정답을 찾기 전에, 상대의 서사를 이해해야 하는 세계다. 그 이해는 ‘듣는 법’에서 출발한다. 정해진 시간 안에 상담을 끝내야 하는 압박 속에서도, 나는 늘 나 자신에게 다짐한다.
“이 사람은 숫자가 아니라, 서사를 가진 존재다.”
그 말 하나가, 내 태도를 다르게 만든다.
사회복지사로서 상담을 할 때, 나는 스스로에게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
첫째, 나는 이 사람의 말을 ‘정확히’ 들었는가?
둘째, 나는 이 사람의 말을 ‘존중하며’ 들었는가?
정확히 듣는 것과 존중하며 듣는 것은 다르다.
정확히 듣는 것은 정보를 빠짐없이 수집하는 능력이라면, 존중하며 듣는 것은 그 정보 뒤에 숨은 마음의 결을 함께 듣는 감수성이다. 그 감수성이 상담을 ‘기술’이 아니라 ‘관계’로 만들어준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사회복지사이거나, 상담이라는 관계에 종사하고 있다면, 꼭 기억해주었으면 한다. 말은 때로 거짓이지만, 마음은 늘 진실을 품고 있다. 그 마음을 듣기 위해 필요한 건, 지식보다 태도이고, 기술보다 신뢰이다.
상담은 말의 기술이 아니라, 마음을 만나는 용기이자, 존재를 듣는 예술이다. 그 예술의 시작은 언제나 ‘잘 말하는 법’이 아니라, ‘잘 듣는 태도’에서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