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이라는 정체성과 함께 일한다는 것
일본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한다는 것은 단순한 직업 선택을 넘어서, 나의 정체성과 매일 마주하며 살아가는 일이다. 나는 지금도 일본어로 회의를 하고, 일본 제도 안에서 일하며, 일본인 동료들과 협업한다. 그러나 어떤 날은 나의 말투 하나, 억양 하나, 서류 작성 방식 하나가 ‘외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새삼스럽게 상기시키기도 한다.
외국인이라는 이름은 언제나 나를 따라다녔다.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고, 한국어로 생각하며, 한국 문화 속에서 감정을 배웠다. 그러나 지금 나는 일본이라는 타국에서, 일본어로 일하고 있다. 그리고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은 특히 언어와 정체성, 문화에 민감한 영역이다. 타인의 고통을 돌보고, 제도를 설명하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이 일은 언제나 말 너머의 섬세함을 요구하기에, 외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은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일터에서 내가 외국인이라는 사실은 대화의 흐름에서, 농담 하나의 뉘앙스에서, 회의 중 동의의 침묵을 놓쳤을 때마다 조용히 떠오른다. 대놓고 차별을 받는 일은 거의 없지만, 무언의 거리감, 조심스러운 배려, 어쩌면 더 불편한 ‘과잉 친절’이 오히려 나를 더 외롭게 만드는 순간이 있다.
초기에 가장 힘들었던 것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이미 설명된다고 여겨지는 사회적 맥락에 끼어들 수 없다는 점이었다. 일본 직장문화는 암묵적 합의와 공감, 상하관계에 대한 민감한 감각을 요구하는데, 외국인에게는 그 ‘암묵’이 언제나 낯설고 해석 불가능한 영역이었다. 말을 잘못해서 문제가 되는 것보다, 말을 하지 않아야 할 때 말하게 되는 일이 훨씬 더 위험했다. 그래서 나는 점점 말을 줄이게 되었고, 상대의 눈치를 보게 되었고, 어느 순간, 일터에서 ‘나’라는 사람을 축소시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 순간,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가 나를 지키지 않으면, 누가 나를 지켜줄 수 있을까?”
사회복지사로서 타인의 권리를 말하면서, 정작 내 자리는 점점 흐려지고 있다는 사실이 씁쓸했다. 그리고 나는 결심했다. 외국인이라는 정체성을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그것을 감추거나 포장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의 ‘자원’으로 받아들이기로. 이 정체성은 나의 약점이 아니라, 경계에 선 사람들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능력이었다.
나는 제도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의 시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고, 언어장벽을 경험해본 사람으로서 말이 아닌 방식으로 다가가는 법을 배웠으며, 사회적 시선 속에서 불안을 감추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당신만 그런 것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되었다.
특히 일본 사회에서 외국인 대상 복지서비스를 제공할 때, 내 정체성은 중요한 ‘신뢰의 다리’가 되어주었다. 일본어가 서툰 외국인에게는 “이 사람은 나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와 안심을,
그리고 일본인 동료에게는 “이방인의 입장에서 본 사회의 맹점을 보완할 수 있다”는 신뢰를 주었다.
그렇게 나는 나의 경계성을 일의 중심으로 끌어오기 시작했다. 외국인이기에 할 수 있는 일, 외국인이기에 다가갈 수 있는 영역을 찾아갔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는 ‘소속되지 않음’의 고통을, ‘다르게 존재함’의 강점으로 바꾸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이 길은 언제나 쉽지 않다. 외국인이라는 정체성은 흔히, ‘이질적인 존재’로 읽히기 쉽고, 조금만 실수를 해도 “역시 외국인은…”이라는 시선에 노출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끊임없이 나를 다독인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언어가 서툴러도 진심은 전달된다고, 조금 늦더라도, 나의 방식으로 이 일을 해내겠다고. 그리고 나는, 그렇게 하루하루 내 이름을 지켜가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당신이 만약, 외국에서 일하고 있거나, 혹은 외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살아내고 있다면, 꼭 전하고 싶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그리고 당신의 위치는 결코 약점이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관점이고, 더 넓은 연대의 가능성이다.
사회는 여전히 단일한 틀로 사람을 재단하려 하지만, 그 틀 밖에 서 있는 당신은, 누구보다도 더 유연하고, 더 다정한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 그러니 당신의 경계를 두려워하지 말고, 그 경계에서만 볼 수 있는 진실을, 묵묵히 지켜나가길 바란다.
우리는 모두, 조금씩 다르고, 그래서 더욱 필요한 존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