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호의 오디오북 이야기
최근 오디오북이 출판의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며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곳곳에서 오디오북 관련 세미나와 주제 발표가 진행되면서 오디오북 시장의 추진 현황과 다양한 사례들이 소개되고 있다. 매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출판 시장에서 과연 오디오북이 어떠한 영향력을 행사해 나갈 것인지에 대해서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이제 오디오북이 출판과의 행복한 동행을 해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해 현실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책의 계절’ 가을이 찾아 왔다. 책 관련 행사들이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지만 관심도는 예전만 못하고 독자들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출판 시장은 이미 정체기에 접어든지 오래다. 독서 인구수와 도서 판매량의 감소로 출판 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도 큰 위기에 처해 있다. 한 때 스마트폰의 출현과 대중화로 인해 전자책에 대한 관심도가 증가하면서 종이책과의 자기잠식에 대한 치열한 공방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전자책의 성장도 주춤해지고 있다. 종이책과 별반 차이가 없는 가격, 도서정가제에 따른 가격 할인 제한, 디스플레이에 대한 피로도 증가, 다양한 디지털콘텐츠 간 경쟁력 부족 등의 이유 때문이다.
첨단 기술과 디지털미디어의 발전으로 독자들의 시간은 책이 아닌 다른 것들로 소비되고 있다. 특히 독자의 독서시간을 잠식하는 주된 변수 중 하나로 소셜미디어(SNS)를 꼽을 수 있는데, 미국 온라인 매체 쿼츠(Quartz)에 따르면 사람들의 SNS 사용 시간을 독서 시간으로 전환할 경우 연간 200여 권의 책을 읽을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최근에 스마트폰이나 인공지능 스피커를 통한 오디오북 시장이 급성장 하고 있다. 특히 미국과 영국 및 북유럽 지역에서 강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으며, 최근에는 남부 유럽과 아시아 지역으로도 확대되고 있는 추세이다. 조사 기관들마다 약간의 편차는 있지만 꾸준하게 매년 두 자릿수 이상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 오디오북출판협회(Audio Publishers Association) 자료에 따르면, 2017년 미국 오디오북 매출은 25억 달러로 전년 대비 19% 증가했다.
미국의 대표적인 출판사 및 오디오북 사업자들의 일부 매출액을 참고하면 2018년 오디오북 매출 성장률은 전년보다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8년 1분기 하퍼 콜린스(HarperCollins)의 전체 디지털 매출 중 25%가 다운로드 가능한 오디오북이었으며, 사이먼&슈스터(Simon & Schuster)는 디지털 오디오 매출이 전년 동 분기 대비 43% 증가했다. 오디오북닷컴(Audiobooks.com) 역시 직접적인 매출액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유사 업체들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발표했다. 그 외에도 2017년에 진행된 Nielsen UK Books & Consumer‘s Survey 조사에 따르면, 지난 5년 동안 영국에서 오디오북 매출이 2배로 증가했으며, 도서 지출의 5%를 차지하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오디오북의 성장세는 한동안 계속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월, 구글(Google)은 구글 플레이 스토어(Google Play Store) 내에 오디오북 메뉴를 선보이면서 오디오북 시장에 합류했다. 오디오북은 9개 언어로 45개국에서 제공되며, 현재까지는 단권 구매만 가능하다. 한국에서는 오디언소리와 제휴를 통해 콘텐츠가 제공되고 있다. 구글은 향후 구글 홈(Google Home) 스피커와 연계를 통해 시장을 확장시켜 나갈 계획이다.
월마트(Walmart)도 지난 1월 일본의 온라인 전자상거래 기업인 라쿠텐(Rakuten)*과 제휴를 맺고 전자책 사이트를 오픈해서 오디오북, 전자책, 전자책 전용단말기를 판매하고 있다. 지난 8월부터는 월간 오디오북 정액제 서비스도 제공하기 시작했다. 아마존의 오더블(Audible)에 비해 경쟁력을 가지는 부분은 월 구독료가 오더블($14.99)에 비해 저렴($9.99) 하다는 점과 브릭 앤 모타르(Brick-and-mortar) 매장을 활용한다는 점이다. 우선적으로 3,500여 개의 매장에서 40여 종의 전자책 카드 판매를 시작하고 있지만 이를 더욱 확대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최근 오디오북 시장에서 오더블 다음으로 예의 주시해야 할 기업은 코보(Kobo) 이다. 코보는 2017년 9월 미국, 캐나다, 영국,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오디오북 서비스를 시작했으며 올해는 프랑스까지 확장해 나가고 있다. 코보는 지난 4월 문화상품 대형 유통업체인 프낙(Fnac)과 파트너십을 맺고 프랑스에서 오디오북 서비스를 출시했다. 매달 9.99 유로를 지불하면 5천여 개의 프랑스어 타이틀이 포함된 10만개 이상의 오디오북 중에서 정가와 상관없이 한 달에 하나의 오디오북을 다운로드 할 수 있다. 물론 구독이 아닌 권당 구매도 가능하다. 또한 더 많은 독자 확보를 위해 대형 통신사인 오렌지(Orange)와 파트너십을 맺고 전자책과 오디오북 콘텐츠를 올해 5월부터 2019년 1월말까지 제공할 예정이다.
(* 라쿠텐(Rakuten): 일본 전자상거래 기업인 라쿠텐은 2011년에 캐나다 전자책 회사인 코보(Kobo)를 인수하고 2015년에는 미국의 전자도서관 서비스 업체인 오버드라이브(Over Drive)를 인수하며 아마존을 맹추격하고 있다.)
국내 오디오북 시장은 아직 무르익지 않았지만 그래도 서서히 오디오북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다. 시장 규모가 작다 보니 비싼 비용을 들여서 콘텐츠를 제작하지 않으려 하고 이는 다시 시장의 축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형 사업자들이 오디오북 시장에 가담하면서 활기를 띄고 있다.
국내 최대 팟캐스트 방송인 팟빵은 지난 7월부터 오디오북 오픈 플랫폼 서비스를 시작했다. 누구든지 오디오북 콘텐츠를 제작하여 등록하고 판매할 수 있는 구조이다. 현재는 원어민 유아용 콘텐츠가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다양한 주제의 분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올해 7월 기준으로 누적 앱 다운로드 수는 350만 개이며, 월 이용자수는 300만 명(모바일앱 이용자 80만 명, 웹 이용자 220만 명)을 돌파한 상태이다. AI스피커나 커넥티드카 관련 기업들과 콘텐츠 공급 제휴를 맺어놓은 상태이기 때문에 이를 통해 오디오북 유통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과연 일반인이 제작한 콘텐츠가 유의미한 매출로 이어질 것인지가 관전 포인트이다.
팟캐스트 중심의 '오디오클립' 서비스를 운영중인 네이버 역시 지난 8월 유료 오디오북 서비스를 오픈 했다. 유료 콘텐츠는 오디오클립 서비스 내 오디오북 카테고리에서 제공된다. <82년생 김지영>,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회복탄력성>, <신경끄기의 기술> 등의 베스트셀러를 다양한 창작자(성우, 배우, 소설가, 아이돌 등)의 목소리로 녹음한 오디오북 콘텐츠 30권을 구매나 대여 형태로 이용할 수 있다. 특히 네이버가 자체적으로 개발한 음성합성 기술인 엔보이스(nVoice)가 상당히 매력적이다. 성우가 약 2만 문장 정도만 녹음하면 그 이후는 텍스트 입력만으로 마치 그 성우가 읽어주는 것처럼 음성으로 자동 변환된다. 향후 네이버는 인공지능스피커의 연계를 통해 오디오북 서비스의 이용환경을 확대시켜 나갈 계획이다.
초연결, 초지능, 초융합 기반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 기술 발전과 사물인터넷 환경을 기반으로 한 스마트홈(Smart-Home) 확산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오디오 콘텐츠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콘텐츠 시장에서 매년 오디오 콘텐츠가 가장 높은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그 동안 출판 시장에서는 책(종이책, 전자책 포함)을 읽는 형태로만 접근해 왔다. 하지만 스마트 기반 산업이 급성장 하면서 멀티태스킹 시대가 본격화되고, 스크린 이용이 증가하면서 디지털 피로(Digital Fatigue)가 쌓이자 듣는 형태의 오디오북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오디오북은 읽는 책이 아니라 듣는 책이기 때문에 산책을 하거나 다른 일을 하면서도 이용할 수 있다. 즉 바쁜 시간을 더욱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 책에 접근할 수 있는 다른 채널을 찾은 것이다.
독자가 책을 읽기 전에 오디오북을 먼저 들었다면 나중에 책을 읽을 때 이해도가 훨씬 높아진다. 그래서 복잡한 주제나 어휘가 있는 도서의 경우 미리 오디오북을 이용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글자와는 달리 음성에는 감정이 실려 있기 때문에 더 기억에 남고 이해가 빠르다. 이처럼 오디오북은 독서력 강화 뿐만 아니라 신규 고객을 확보하는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또한 오디오북은 책의 보완재이지 대체재가 아니기 때문에 출판 시장의 새로운 활력소 역할을 해 나갈 것으로 기대한다. 따라서 스마트폰, 인공지능 스피커, 인공지능 이어폰 등 음성 콘텐츠를 이용할 디바이스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다른 콘텐츠 대비 오디오북 콘텐츠에 대한 경쟁력 확보 전략이 필요하다.
오디오북 시장이 더욱 성장하기 위해서는 유통 채널뿐만 아니라 양질의 콘텐츠 생성 기반에도 더욱 집중해야 한다. 콘텐츠 제작을 위해 소비되는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오디오북 제작비용 절감과 제작 활성화를 위해서 전자출판지원센터에서는 지난 8월부터 오디오북 제작 전용 스튜디오를 무료로 대여해 주고 있다. 네이버도 올해 4분기에는 누구든지 오디오북을 등록하고 판매할 수 있는 오픈 플랫폼을 오픈할 예정이라고 한다. 매우 고무적인 현상으로 이와 같은 환경이 더욱 확대되어 나가야 할 것이다.
오디오북은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편리하게 휴대가 가능하며 듣는 동안에도 다른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그 활용도는 앞으로 더욱 높아질 것이다. 특히, 정보취약층(장애인, 노약자 등)에게 매우 유용하게 쓰일 수 있기 때문에 정보 격차를 줄이는데 큰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
책에 대한 다양한 접근(체험)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책은 우리의 지식을 살찌게 하고 창의성과 사고력을 향상시켜 주는데 큰 역할을 한다. 사실 책을 읽거나 듣거나 하는 방법들은 중요하지 않다. 다만 의지와 습관만 있으면 된다.
(※ 오디오북에 대한 배경과 관련한 글은 <소리로 읽는 오디오북의 부상>편을 읽어보시기 바란다.)
본 글은 <출판저널> 2018년 10+11월호에 게재했던 글임을 밝혀드립니다. 게재시 분량에 대한 제약이 있는 관계로 최대한 요약되었으며 일부 내용이 가감되었습니다.
글 이은호 교보문고, 이학박사
[페이스북]: http://www.facebook.com/eholee
[트 위 터]: http://www.twitter.com/viper_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