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산업 현황
2018년은 정부가 25년만에 지정한 '책의 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는 지난 3월 '2018 책의 해 조직위원회' 출범식을 개최하고 출판.독서 생태계 강화를 위한 다채로운 사업들을 추진했다. 여기에 페미니즘 이슈의 확산, 52시간 근무제도 도입, 소소한 행복 추구,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 누적판매 100만부 돌파 등의 요소들은 그 어느 해보다도 출판 시장을 긍정적으로 이끌었다. 이에 따라 책에 대한 관심도와 도서 판매량도 증가했다. 이제 2018년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출판 시장의 주요 현황 5가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도서 구매 시 인터넷 서점을 이용하는 비중이 증가하면서 오프라인 서점은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의 자료를 참고하면 2009년부터 매년 –10% 정도씩 서점수가 감소하고 있으며 그 감소율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특히 20평 미만의 서점의 수가 크게 줄어들고 있어서 독립서점의 폐점 현상이 높게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형 서점들도 공간을 줄여나가고 있는 추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형서점과 독립서점은 고객 확보와 독자와의 접점 공간을 위해 매장을 꾸준히 늘려 나가고 있는데 이는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다.
대형서점은 매장을 복합문화공간으로 변화시키며 고객을 붙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도서 판매 공간은 줄이고, 카페나 미술관과 같은 편안하고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제공하여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이를 통해 온라인 서점과의 차별화뿐만 아니라 수익률 개선까지도 극복해 나가고 있다. 하지만 이제 출점도 제한될 예정이다.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에 관한 특별법’이 2018년 12월 13일부터 시행된다. 서점업(서적 및 잡지류 소매업)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서 2019년 2월 이후부터 대기업의 시장 진출이 제한된다. 이제 대형서점은 고객이 서점에 찾아오도록 만드는 방법에서, 고객이 있는 곳으로 직접 찾아가는 전략을 추구해야 한다. 극장이나 병원 혹은 호텔 등과 같은 다른 산업으로의 공간 확장을 시작해야 한다.
독립서점은 자체 큐레이션한 책을 판매하고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아날로그 감성과 개성을 공간에 적용시켜 나가고 있다. 이는 소확행의 트렌드와 맞물리며 고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책마다 꽂아놓은 책갈피로 인기를 얻고 있는 ‘부쿠(BUKU)’, 지인 추천책을 진열하는 ‘최인아 책방’,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큐레이팅 서점 ‘아크앤북(ARCN.BOOK)’, 고양이 책방인 ‘슈뢰딩거’, 어른을 위한 그림책방인 ‘베란다북스’, 재테크와 비즈니스 전문 서점인 ‘북앤빈(BOOK&BEAN)’, 그림책으로 마음을 읽고 위로하는 ‘카모메그림책방’ 등 다양하고 전문화된 독립 서점들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 이유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서점을 유지하는데에는 많은 고충이 따른다. 서점에 들러 책만 살펴본 뒤 인터넷으로 주문하는 고객들로 인해 판매량은 줄어들고, 도서 매입률(출판사 공급률)도 차별화 되어 있어 수익 구조도 좋지 못한 실정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커피나 주류 등을 판매하거나, 강연과 저자사인회 등을 통한 커뮤니티를 강화시켜 나가고 있지만 이 또한 쉽지만은 않다.
공간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추억과 시간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책과 고객이 만날 수 있는 접점의 공간을 확장시켜 나가다 보면 도서 판매나 자율적 독서가 늘어날 것이다.
<언어의 온도>, <모든 순간이 너였다>, <자존감 수업>,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 등의 현실적이며 가벼운 에세이가 큰 인기를 끌었다. 힘겨운 사회생활과 부진한 경제 성장 속에서 자존감을 회복하고 격려와 위로를 받으며 공감할 수 있는 도서들로 인해 마음이 열렸기 때문이다.
30~50대의 독자들은 주로 심리 에세이를 선호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스트레스, 불안감, 우울증을 시달리는 직장인들이 이런 도서들을 통해 위로를 받았다. 특히 기분부전장애와 불안장애로 정신과를 전전하며 정신과 전문의와의 대화를 엮은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는 출간된 지 3개월 만에 11쇄를 찍으며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다. 아주 사적인 이야기지만 이 속에서 공감하고 위로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에세이들은 주로 블로그,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와 같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 올린 글들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얻은 뒤에 출간하는 경우가 많다. <언어의 온도>도 이런 형태로 제작된 도서로 누적 판매 130만부를 돌파했다.
한편 20~30대 독자들은 주로 친근한 캐릭터를 기반으로 한 힐링 에세이를 선호했다. 유년 시절에 봤던 곰돌이 푸, 보노보노, 빨간머리 앤, 미키마우스 등과 같은 고전 캐릭터가 말하는 메시지를 매우 친근하게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는 행복에 대한 니체의 명언이나 만화에 나오는 명대사 등을 뽑아서 푸가 말하는 형태의 도서인데 출간된지 1달만에 11만권이 팔릴 정도로 독자들로부터 공감을 얻었다.
도서구매의 영향을 미치는 요소 중에 책의 저자나 제목만큼 중요한 부분이 바로 표지 디자인이다. 표지는 책의 많은 내용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독자를 유혹할 정도의 매력적인 정보를 강력한 디자인으로 포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표지를 변경하는 경우는 품절된 도서를 재출판 하거나 개정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요즘은 한정판 형태의 프로모션 수단으로 리커버북이 흥행을 이끌고 있다. 오래된 고서, 스테디셀러, 특별 출간 기념, 해외 수상작 등의 도서 표지를 고급스럽게 포장하여 소장을 유도하고 있다.
추리소설의 여왕인 애거서 크리스티의 대표적인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살인을 예고합니다> 등의 작품들도 소설 내용의 함축적인 내용을 표지에 담은 리커버북을 출간했다. 그 이외도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팀 페리스의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는가>, 리처드 탈러왜 캐스 선스타인의 <넛지> 등 다양한 장르의 도서들이 리커버 형태로 출시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유통사마다 각기 다른 형태로 출간하는 사례들도 늘어나고 있다. 올해로 출간 200주년을 맞이한 메리 W 셸리의 <프랑켄슈타인>나 고양이의 시각에서 인간의 문명을 바라보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고양이> 등은 유통사마다 각기 다른 표지로 리커버북을 발간해서 독자들로부터 큰 관심을 받기도 했다.
리커버북은 문학 도서 뿐만 아니라 자기계발서, 에세이, 시집, 논픽션 분야로까지 확장되고 있으며 젊은 독자층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또한 호프 자런의 <랩걸>처럼 출간시점부터 여러 표지 디자인을 선보이는 사례들도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리커버북의 출간은 2019년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여진다.
네트워크의 발달과 기술의 발달로 연결성에 대한 개념이 중요시되고 있다. 더욱 개인화의 성향은 강해지고 있으며 소비의 형태도 소유의 형태를 벗어나고 있다. 출판 시장에서도 이러한 현상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한 해였다. 매장의 감소와 도서 판매량은 계속 줄어들고 있지만 출판사에서 발행되는 신간의 수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이는 독자들이 새로운 도서를 발견하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는 말과 동일하다. 이러한 상황이 되자 출판사가 자체적으로 도서를 판매하는 D2C(Direct to Consumer) 형태가 늘어나면서 도서의 홍보와 발견을 위해 독자적인 멤버십 서비스가 증가하고 있다. 멤버십 서비스란 고객을 유지하고 구매율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는 활동으로 제품과 서비스로 고객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전략이다.
민음사는 단행본 출사 중에서 최초로 2011년에 ‘민음북클럽’을 선보이며 멤버십 서비스 시장을 이끌고 있다. 올해로 8기를 맞이하고 있는 민음북클럽의 누적 회원수는 3만 명이 넘는다. 연회비 33,000원을 내면 세계문학전집 3권과 회원 전용도서인 북클럽 에디션 2권 및 기타 굿즈를 제공한다. 저자와의 만남뿐만 아니라 신간 서평 이벤트나 온라인 독서 모임 등 다양한 행사 진행과 함께 북클럽 포인트 제도를 운영해서 다양한 혜택을 제공 받을 수 있다. 문학동네는 2018년에 처음으로 ‘북클럽문학동네’를 오픈했다. 연회비는 50,000원이며 책 5권과 굿즈를 시기별로 세분화 시켜서 제공한다는 점이 타사와의 차별점이다. 그 외 마음산책에서도 ‘마음산책북클럽’을 2018년에 시작했다. 다른 북클럽과의 차이점은 회원 모집 시 50명으로 제한하여 운영하고, 책을 선택하지 못하고 3개월에 1권씩 신간을 제공받는다는 점이다. 연회비는 50,000원이며 제한된 인원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자유롭고 편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그 외 디지털콘텐츠 시장에서는 정액제 형태의 서비스가 운영되고 있으며 그 추세가 확산되고 있다.
스마트 기반 산업의 급성장으로 멀티태스킹이 가능해지며, 인공지능 스피커를 시작으로 사물인터넷 기반과 디바이스가 확장되고, 스크린 이용 증가에 따른 디지털 피로(Digital Fatigue)가 쌓이자 듣는 형태의 오디오 시장이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해외에서는 콘텐츠 산업 중 오디오북 시장이 가장 높은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국내에서도 오디오북이 출판의 새로운 동력이 되길 희망하며 많은 관심과 투자가 진행되고 있다.
사실 국내의 오디오북 시장은 오디언이 약 10여년 동안 이끌어 오기는 했지만 고객들의 관심도가 매우 낮은 상황 속에서 B2B 시장을 통해 그 명맥을 겨우 유지해 왔다. 그러다가 팟캐스트의 활성화, 인공지능 스피커의 대중화, 해외 시장에서의 오디오북 열풍 등으로 국내에서도 대기업이나 팟캐스트 업체들이 서서히 오디오북 시장에 관심을 보이며 투자하기 시작하고 있다.
국내 최대 팟캐스트 방송인 팟빵은 인공지능 스피커(이통3사, 삼성전자, LG전자, 네이버, 카카오) 업체들과 제휴를 맺고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으며 2018년 7월부터는 누구든지 오디오북 콘텐츠를 등록하고 판매할 수 있는 오디오북 오픈 플랫폼도 오픈했다. 그 외에도 미디어창비는 근거리통신(NFC) 기술을활용해서 종이책과 오디오북을 연계시킨 ‘더책’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으며, 커뮤니케이션북스는 <100인의 배우, 우리 문학을 읽다>를 제작해서 USB로 출시해서 좋은 성과를 얻었다. 교보문고는 전자책 형태로 오디오북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밀리의 서재는 2018년 7월부터 리딩북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오디오북 시장에서 네이버의 행보는 단연 두드러지며 가장 예의주시해야 할 사업자이다. 2017년 1월에 팟캐스트 중심의 ‘오디오클립’을 운영해 오던 네이버가 2018년 8월 약 30종의 유료 오디오북 서비스를 오픈했는데, 11월 기준으로 오디오북 이용건수가 10만부를 돌파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네이버가 자체적으로 개발한 음성합성 기술인 엔보이스(nVoice)는 성우가 일부의 문장만 녹음하면 그 이후는 마치 성우가 녹음한 것처럼 자동으로 텍스트를 읽어주는 기술로 제작비용을 혁신적으로 절약시킬 수 있는 매우 유용한 솔루션이다. 또한 11월에는 국내 최대 오디오북 업체인 오디오북을 인수하며 국내 오디오북 시장을 본격적으로 견인해 나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오디오북 콘텐츠 제작사나 유통사 외에도 팟캐스트 사업자와 동영상 사업자들도 오디오북 시장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오디오북 콘텐츠를 제작하는데 너무 많은 비용이 들어서 이에 대한 환경 개선과 오디오북 콘텐츠에 대한 시장 형성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정부에서 콘텐츠 제작 비용 지원과 콘텐츠 녹음 및 편집 환경 제공을 위한 예산을 확보해나가고 있는 상황이기에 2019년에는 오디오북 시장이 더욱 성장해 나가는 원격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출판은 계속해서 새로운 변화에 순응해 나가야 한다. 불황을 타계하기 위한 단기적 관점에서 벗어나야 한다. 다양한 공간에서 책이 고객에게 밀접하게 다가서는 노력들이 필요하다.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전술도 중요하지만 책 자체의 가치와 의미를 더욱 이해할 수 있도록 중장기적 관점에서 출판의 개념과 영역을 확장시켜 나가야 한다. 유통 체계와 기반 산업구조의 개선도 중요하지만 독서를 통해 독자 스스로 사고력과 창의성을 향상시켜 나갈 수 있는 기반 환경도 필요하다. 2019년에는 출판이 더 성숙된 모습으로 지식 문화 산업을 이끌어나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본 글은 <출판저널> 2018년 12+2019년 1월호에 게재했던 글임을 밝혀드립니다. 게재시 분량에 대한 제약이 있는 관계로 최대한 요약되었으며 일부 내용이 가감되었습니다.
글 이은호 교보문고, 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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