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의 새로운 도전
새로운 세대의 출현, 소비 패턴의 변화, 비즈니스 모델의 진화 등은 기술 기반의 산업을 급격하게 변화시키고 있다. 더 이상 출판 산업이 쇠퇴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러한 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해 나가야 한다. 올드미디어에서 뉴미디어까지, 출판사에서 유통사까지, 저자에서 독자까지 모든 출판 생태계는 새로운 변화와 도전이 필요하다. 신기술이 출판 시장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어떻게 변화되어 나갈 것인지에 대해 <출판의 새로운 도전> 시리즈를 통해 들여다보고자 한다.
해마다 도서 판매량이 줄어들고 독서 인구수가 감소하면서 출판 시장의 어려움이 계속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간 발행 종수는 계속 늘어나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한 해에 약 8만여 종 이상의 신간 도서가 발행되고 있는데, 초판 발행부수는 줄어들고, 신간 도서의 평균 생명주기는 약 2개월 정도로 계속 짧아지고 있다. 다품종 소량 출판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렇다보니 독자가 원하는 도서를 발견할 기회가 줄어들고 있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책(冊)은 한 때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기 위한 수단으로 매우 강력한 힘을 가진 매체였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네트워크의 연결과 속도 그리고 신기술의 발전으로 매일 무수한 디지털콘텐츠(읽을거리)가 넘쳐나고 있으며 내용의 수준도 높아지고 있다. 그러면서 책은 수많은 읽을거리 중의 하나로 전락하며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출판 시장에 새로운 변화와 도전이 필요한 이유이다.
뉴미디어 시대에 사는 독자들이 점점 숏폼(short form) 콘텐츠에 익숙해지면서 출판사들은 얇은 도서의 출간을 늘려나가고 있다. 유통사들도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대여나 구독 형태의 판매 방식을 선보이고 있다. 이는 독자에게 비교적 높게 책정된 도서 가격에 대한 부담을 줄여주기 위함이다. 예를 들어 종이책 가격이 10,000원 이라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출판사는 전자책 가격을 약 7,000~8,000원 정도로 책정하는데 이는 영미권(약 50% 수준)과 비교해서 매우 비싼 편이다. 여기에 도서정가제까지 적용되어 있어서 가격 할인의 폭은 제한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는 약 3,500~4,000원 정도에 이용할 수 있는 대여(90일 동안 이용)나 도서를 많이 읽을수록 제로에 수렴하는 구독의 형태를 선호하고 있다.
최근 구독 경제가 산업 전반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구독’이란 일정한 금액을 지불하고 정기적으로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용하는 방식인데, 최근에 나타난 것은 아니고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개념이다. 하지만 초기 구독의 형태가 주로 실물 중심으로 구축되어 있었다면, 오늘날의 구독은 주로 디지털콘텐츠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차이점이 있다.
구독 서비스의 개척자는 넷플릭스(Netflix)다. 1999년부터 비디오 테이프(VHS)와 DVD로 구독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제품의 수량이나 반납 처리 등 여러 제약 사항들이 많았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로 바뀌면서 인터넷을 통해 여러 사람들이 동시에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자 전세가 역전되었고, 현재는 글로벌 동영상 스트리밍 시장을 이끌어 나가는 대표적인 기업이 되었다. 넷플릭스의 2017년 매출액은 약 117억 달러로 지난 5년간 연평균 성장률이 무려 35%나 된다. 국내에는 2016년부터 서비스가 시작되었는데, 국내 첫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의 효과로 올해 2월 말 기준 넷플릭스 국내 이용자수가 240만 명을 돌파하며 빠르게 시장을 선점해 나가고 있다.
지난 3월에는 월트 디즈니(Walt Disney)가 21세기 폭스(21st Century Fox)를 약 713억 달러에 인수하면서 큰 관심을 받았다. 특히 디즈니는 이제 넷플릭스에 제공하고 있는 콘텐츠를 회수하고 올 하반기에 오픈 예정인 '디즈니 플러스(Disney+)'를 통해 독자적인 영화 구독 서비스를 추진할 예정이여서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또한, 애플도 지난 3월 스티브잡스 극장에서 진행된 스페셜 이벤트에서 뉴스 구독 서비스 '애플 뉴스 플러스(Apple News+)'와 게임 구독 서비스 '애플 아케이드(Apple Arcade)'를 공개하며 구독 시장에 참여했다. 그 외에도 스포티파이(Spotify), 아마존 킨들 언리미티드(Amazon Kindle Unlimited), 유튜브 레드(YouTube Red), 스크리브드(Scribd), 애플 뮤직(Apple Music), 스태디아(Stadia) 등 다양한 구독 서비스의 종류와 형태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 스태디아(Stadia)는 구글이 올해 3월 19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글로벌 게임 개발자 컨퍼런스 ‘GDC 2019’에서 선보인 클라우드 게임 서비스이다. 별도로 게임을 설치하지 않고도 하드웨어 기반 콘솔 기기를 통해 구글 클라우드 서버에서 바로 게임을 즐길 수 있다.)
출판 시장에서도 구독 서비스 열풍이 아주 거세다. 국내 정기 구독 서비스의 원조는 교보문고가 2013년 2월 선보인 ‘샘(sam)’ 서비스이다. 월에 이용할 수 있는 도서 권수에 따라 다양한 요금모델을 제공한 연간 정액제 서비스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후 밀리가 ‘밀리의 서재’라는 월정액 구독서비스를 선보이고 유명 배우를 모델로 TV CF를 진행하면서 출판 시장에서 구독 서비스가 성공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 이후 리디나 예스24도 구독 서비스에 가세하면서 구독 서비스가 활기를 띄고 있다.
이처럼 구독 서비스가 크게 주목받는 이유는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고객 데이터를 바탕으로 새로운 서비스 확장 기반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출판 시장에서 구독 서비스는 효율적인 가격 때문에 독자의 진입 장벽을 낮춰줄 것이다. 그로 인해 독서량이 증가하겠지만, 특정 분야나 베스트셀러 중심으로 편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고객의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개인화 큐레이션이 강화된다면 이러한 현상도 서서히 사라질 것이다. 구독 비즈니스가 늘어날수록 각 서비스 사업자마다 중복된 도서수는 많아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차별화된 서비스, 독점 콘텐츠, 오리지널 콘텐츠의 확보 방안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구독 서비스가 기존 출판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대응책 마련이 필요하다.
국내 출판 시장의 구독 서비스는 이제 시작 단계이다. 단기간에 구독 서비스가 안착하기 위해서는 여러 관련 사업자들의 협조와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적으로는 콘텐츠에 집중해야 한다. 독자가 흥미를 느낄만한 디지털콘텐츠에 대한 확보가 지속적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물론 구독 서비스의 다양한 모델과 가격정책, 그리고 투명한 정산 구조가 뒷받침 되어야 한다. 이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출판 생태계를 무너뜨리지 않고 균형 잡힌 성장을 이끌어 나가기 위한 중요한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뒤에 독자에게 편리한 이용 환경을 제공해서 사용자 경험(UX)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독자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이해하고 어떤 독서 취향과 패턴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명확하게 분석해서 접근해 나가야 한다. 기술은 이제 개발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고객의 시간과 가치를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다.
본 글은 <출판저널> 2019년 4+5월호에 게재했던 글임을 밝혀드립니다. 게재시 분량에 대한 제약이 있는 관계로 최대한 요약되었으며 일부 내용이 가감되었습니다.
글 이은호 교보문고, 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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