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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호 Jan 17. 2020

서점의 변신과 공간의 재창조

출판의 새로운 도전

11월 11일에는 많은 기념일들이 겹쳐 있다. 익히 잘 알려져 있는 '빼빼로데이'를 비롯해서 한국서점조합연회가 한자 책(冊) 자의 모습과 책장에 책이 꽂혀 있는 모습을 본 따 만든 ‘서점의 날’도 있다. 다소 생소한 '서점의 날'은 전국 서점인들의 자긍심을 고취하고 지역 서점의 활성화를 위해서 2017년에 제정되어 올해로 3회째를 맞았다.

지난 10월에는 '서적, 신문 및 잡지류 소매업'이 제1호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되었다. 그래서 대기업은 향후 5년 동안은 <생계형 적합업종 특별법>에 따라 사업의 인수나 개시 또는 확장이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하지만 1년에 1개의 신규서점 출점은 허용하고, 기존 서점을 폐점해서 인근 지역으로 이전 출점하는 경우에는 신규 출점으로 보지 않으며, 카페와 같이 있는 융.복합형 서점은 서적 매출 비중이 50% 미만이고 판매면적이 1,000㎡ 미만일 경우에는 서점업으로 보지 않는 등 일부 조항들을 예외적으로 허용한다. 다만 영세 소상공인 서점의 주요 취급서적이 학습참고서이기 때문에 신규 출점이 허용되는 경우에도 3년 동안에는 학습참고서를 판매하지 못한다.

지난 9월에는 2020년 11월 도서정가제(圖書定價制) 연장에 대한 <도서정가제 개선방안 토론회>가 진행되었다. 도서정가제는 과다 할인 경쟁으로부터 할인 가격을 규제하고 동네서점을 보호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제도이다. 하지만 책에 대한 고객의 접근성을 떨어트린다는 이유로 도서정가제를 폐지해 달라는 국민 청원이 20만 명을 넘어서면서 도서정가제 추진에 대한 찬반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이처럼 책과 사람이 어울려 숨 쉬는 공간인 서점은 늘 관심과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대형서점과 독립서점의 경쟁, 기업형 중고서점의 확장, 서점과 출판사 간의 도서 공급률 조정 등 민감한 이슈들로 가득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행사나 관련 제도들이 서로 복잡하게 엮여 있다. 최근 독서인구의 감소와 도서 판매량의 감소 추세가 지속되면서 서점은 독서 진흥과 새로운 고객 유치를 위한 새로운 변신을 모색하고 있다.


출판 강국인 일본도 출판 산업의 불황이 지속되고 있다. 20여전인 1990년대 말과 비교했을 때 매출액과 서점수가 거의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1996년 당시의 매출액은 약 2조 6,600억 엔 이였으나 2018년 종이 출판물 매출액은 약 1조 2,800억 엔으로 줄어들었으며, 서점 수도 1990년대 말 23,000곳에서 2018년 12,026곳으로 줄어들었다. 요미우리신문이 발표한 독서 실태 조사에 따르면 최근 1개월 동안 책을 1권도 읽지 않았다는 비율이 52%로 전년 대비 2%포인트 증가했다. 그밖에 흥미로운 결과로는 종이책을 살 때 오프라인 서점 이용을 선호한다는 응답률이 75%에 달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결과가 나온 배경에는 일본 유통사들이 자율적인 협약에 의해 완전 도서정가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런지 일본은 오프라인 매장에 다양한 의미를 부여하고 새로운 변화를 추구해 나가고 있는 편이다.


왼쪽부터 포르투칼의 ‘렐루 서점’, 일본의 ‘분키츠 서점’

최근 서점은 책 파는 공간에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공간으로 새롭게 바뀌고 있다. 입장료가 있는 서점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형태의 시초는 포르투칼의 '렐루 서점(Livraria Lello)'이다. 이 서점은 J.K. 롤링이 해리포터 시리즈의 영감을 받은 곳 중 하나로 알려지면서 많은 관광객들이 몰리기 시작했고, 2015년 7월부터 5유로(약 6,500원)의 입장료를 받기 시작했다. 서점에서 책을 구매하면 입장료만큼 차감해주는 방식이다. 일본에서도 이러한 시도가 진행되었다. 지난 2018년 12월 일본 롯폰기역 근처에 '책과 만나기 위한 서점' 이라는 컨셉을 가진 작은 서점 '분키츠(文喫)'가 오픈했다. 서점 입구에는 ‘책과 우연한 만남을 위한 서점’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으며, 서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1,500엔(약 15,000원)의 입장료를 내야 한다. 무료로 커피나 차를 마실 수 있고 특별한 도서들이 가득해서 입장객이 지속되고 있다. 서점 방문객 중 30%가 책을 산다고 한다.


공유개념이 서점에 적용되기도 했다. 중국 안후이성 허페이시의 <삼효구 신화서점(三孝口新华书店)>에는 세계 최초로 공유서점이 오픈했는데, 이곳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합하는 새로운 문화 공간으로 변모했다. 중국에서는 공동으로 향유한다는 의미에서 ‘공향(共享) 서점’이라고도 한다. 2017년 7월 첫 공유서점을 오픈했을 때는 일부 사람들이 책을 빌려줌으로써 출판사의 책 판매가 줄어들 것을 염려했으나, 책 대여 횟수와 평균 독서량이 크게 증가했으며 도서 판매에도 긍정적으로 나타났다. 공유서점에서 책을 빌리기 위해서는 우선 앱을 설치한 후 99위안의 보증금을 내야 한다. 한 번에 최대 2권까지 빌릴 수 있으며, 책의 반환 기간은 10일까지이다. 독서 장려를 위한 서점의 새로운 도전 사례이다.


국내 서점은 1990년대부터 대형화되기 시작했다. 2000년대부터는 인터넷의 발달과 라스트 마일(Last Mile)의 혁신으로 많은 고객들이 온라인 서점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자 고객들이 모여서 즐길 수 있도록 복합문화공간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도서관처럼 편안하게 독서할 수 있는 편의시설은 물론 카페나 갤러리 등도 서점 안에서 즐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제 서점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간의 경쟁 관점이 아닌 채널의 가치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온라인 서점은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 중심으로 고객에게 접근해야 하며, 오프라인 서점은 새로운 경험과 가치 중심으로 고객에게 접근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서점은 도서를 진열하는 공간이다. 따라서 수많은 도서를 어떻게 구성하고 기획할 것인지에 대한 쇼룸(showroom)의 방향과 컨셉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그 동안의 서점은 책을 팔기 위한 공간이었지만, 이제는 누구나 편안하게 쉬며 즐길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lifestyle)을 위한 복합문화공간으로서 변화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공간속에서 연결, 참여, 추억, 가치를 제공해야 한다. 특히 단순하게 책만 정렬하는 것이 아닌 고객이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도록 경험과 취향으로 무장된 북마스터의 큐레이션이 필요하다. 이것이 출판의 컨시어지(concierge)다. 그러면서도 인공지능(AI), 센서(sensor), 빅데이터(Bigdata),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등과 같은 기술을 기반으로 스마트한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 신구의 조합을 통한 변화의 추구가 필요하다.


서점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생각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독자와 책의 연결이다. 이제 서점은 기술과 문화가 결합된 공간의 융.복합을 통해 새로운 경험과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해 나가야 한다. 독자가 있는 공간을 서점으로 탈바꿈시켜야 한다. 책과의 자연스러운 만남 속에서 독서는 습관으로 이어진다. 공간에는 사라지지 않는 추억의 향기가 남아있다. 책을 담고 있는 서점은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 그 공간에 더 많은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는 변화가 지속돼 나가길 희망한다.



본 글은 <출판저널> 2019년 12월호 (통권 514호)에 게재했던 글임을 밝혀드립니다.

    

글 이은호 교보문고, 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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