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의 새로운 도전
인구 감소는 소비자 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에 경제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다. 특히 신생아 수가 감소하고 노인의 수가 증가하고 있는 현상에 대해서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8년 1명당 합계 출산율*은 0.98명으로 통계 조사 이후 가장 낮은 수치이며 OECD 회원국 중에서도 가장 낮다. 또한 한국도 2017년에 고령인구 비율**이 14%를 넘어서며 이미 고령 사회에 진입했으며, 2019년 고령인구 비율은 14.9%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 합계 출판율이란 가임 여성이 가임기간(15~49세)에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자녀 수를 말한다.
** 고령인구란 총 인구에 대한 고령(65세 이상) 인구의 구성비를 말한다.
의학의 발달로 인간 수명이 길어지면서 ‘100세 시대’가 도래 했다. 기존에는 30년 공부해서 30년 직장 다닌 뒤 노후를 맞이하면 됐지만, 이제는 직장 은퇴 후에도 30년 동안 제2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 일각에서는 2026년 노인인구가 20%를 넘어서며 초고령 사회에 진입하고, 2045년에는 세계에서 노인 비중이 최고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또한 한국은 향후 50년 간 인구가 가장 빠르게 줄어들고, 노인 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가 될 것이라는 점은 매우 큰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도 노인에 대한 정의, 실태 조사, 세부 복지 기준 등이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아 심각한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국가에서 노인의 기준은 만 65세 이상으로 되어 있다. 이 기준은 독일에서 시작됐다. 프로이센(독일의 전신)과 프랑스 간 보불전쟁(1870~1871)에서 독일 통일을 이끈 비스마르크(Bismarck)가 전쟁의 공을 세운 군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노인들을 노동시장에서 퇴출시키면서 1889년 최초로 연금보험 제도를 마련하였는데 이때 연금 지급 대상 연령을 65세 이상으로 잡은 것이다. 이를 표준으로 삼아 1950년대에 유엔(UN)이 노인의 기준을 65세로 구분하였고, 많은 국가에서 이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100세 시대가 되면서 유엔이 2015년에 새로운 연령기준을 제안했는데 0~17세는 미성년, 18~65세는 청년, 66~79세는 중년, 80~99세는 노년, 100세 이상을 장수노인이라 정의했다.
최근 노인인구는 활발한 문화생활을 즐기고 있다. 특히 독서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지만 독서의 장애물이 되는 여러 요인들을 개선할 방안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이에 노인들의 원활한 독서를 위한 독서 미디어 활용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큰활자책을 활용하라. 정보는 시각을 통해 가장 많이 받아들이게 된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노안(老眼)으로 인해 작은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아 책 읽기가 불편하다. 그래서 돋보기나 확대경 등의 보조 기구를 활용하지만 더 좋은 방법은 큰활자책을 활용하는 것이다. 보통 책보다 훨씬 큰 글자로 만들어 낸 책을 큰활자책 혹은 큰글자책 이라 부르는데 국제도서관협회연구소연맹(IFLA) 에서는 16포인트 이상의 활자를 권장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출판사들이 장애인과 독서 취약층을 고려해 큰활자책 생산을 자발적으로 추진하면서 도서관 뿐만 아니라 일반 고객들도 쉽게 글활자책을 구매할 수 있다. 하지만, 국내 출판사들은 일반 도서에 비해 제작비가 많이 들고 수요도 많지 않기 때문에 큰활자책을 거의 생산하지 않고 있다. 다만 문화체육관광부가 2009년부터 <대활자본을 활용한 노인 독서활성화 사업>을 추진해 오고 있는데 한국도서관협회(KLA)가 주관기관으로 저작권이 해결된 도서 중에서 선호도, 적합성, 활자크기, 규격 등의 심사를 거쳐 대활자본 도서를 선정하고 이를 전국의 공공도서관에 배포하고 있다. 그러나 매년 약 20여 종으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도서관에서 큰활자책 독서프로그램을 활용하기에는 부족하다. 이에 정부기관에서 큰활자책을 위한 예산을 증액시키고, 출판사나 서점에서도 큰활자책을 위한 자발적인 제작과 유통 채널을 고려해 나가야 할 것이다.
둘째, 전자책(ebook)을 활용하라.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인터넷과 디지털 환경이 활성화되고 이와 맞물려 노년층의 인터넷 이용률이나 스마트 디바이스 활용도가 높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자책은 노인들의 중요한 독서 수단 중 하나가 되고 있다. 전자책은 종이가 아닌 디지털로 변환하여 전자기기 등을 통해 읽거나 들을 수 있도록 만든 책이다. 이 전자책을 이용하면 글자크기, 여백, 줄 간격, 폰트 등을 자유롭게 조절하여 읽을 수 있다. 휴대성도 좋고, 도서 선택의 폭도 넓고, 종이책에 비해 가격도 저렴하다.
셋째, 오디오북(audiobook)을 활용하라. 시각 다음으로 가장 많은 정보를 습득하는 것은 바로 청각이다. 나이가 들면서 눈 질환과 노안으로 채 읽기가 불편해지는 노인들을 위해 눈이 아닌 귀로 듣는 오디오북이 노인 독서의 새로운 대안책으로 떠오르고 있다. 스마트 디바이스의 보편화, 디지털 피로도, ASMR, 팟캐스트 등으로 청각 콘텐츠가 높은 관심을 갖게 되면서 요즘 오디오북이 전 세계적인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미국은 지난 6년 동안 전년 대비 두 자릿수의 오디오북 성장률이 계속 이어지고 있으며, 일본에서는 종이책이 없이 오디오북만 출간하는 곳들도 늘어나고 있다. 국내에서도 2018년부터 오디오북에 대한 열풍이 시작되면서 네이버, 팟빵, 윌라, 밀리의서재 등의 사업자들이 오디오북 콘텐츠와 서비스를 확장해 나가고 있다. 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도 지난 9월 오디오북센터를 개소해서 오디오북 제작 공간을 무료로 운영하고 있다. TTS와는 달리 오디오북은 전문 성우나 배우가 상황에 맞는 연기해 현장감을 살렸기 때문에 듣기가 매우 편안하다. 다만 전자책보다 제작비용이 높다는 문제점이 있고 B2C 채널의 시장 형성이 무르익지 않은 상태이다. 추가적으로 노인들도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이용 환경의 접근성에 대한 부분과 고려해 나가야 할 것이다.
넷째, 지능형 사물인터넷(AIoT)을 활용하라. 미래는 연결과 지능화가 가속화되며 사물인터넷(IoT) 시장이 더욱 커질 것이다. AIoT란 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을 조합한 용어로 단순히 가전제품이나 모바일 기기 등의 사물을 인터넷에 연결해 데이터를 주고 받을 뿐만 아니라 AI를 통해 그 기능을 최적화시킨다는 개념이다. AIoT의 대표적인 장치중의 하나가 바로 AI스피커이다. 아마존과 구글은 글로벌 시장에서 AI스피커 시장을 대표적으로 이끌고 있으며, 최근에는 음성 정보의 한계를 보완하고 영상 콘텐츠 제공을 위해 화면(display) 기능을 넣고 있는 추세이다. 이러한 AI스피커를 이용해서 지난 4월 SK텔레콤이 행복한에코폰***과 함께 서울/경기도 소재 8개 지자체와 독거노인 1,150명을 대상으로 AI스피커를 통해 노인 돌봄서비스를 진행했다. 감성대화 사용 비중이 높았고 치매에 대한 예방 효과 뿐만 아니라 정보 습득에 대한 욕구도 해소하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경영 컨실팅 회사로 유명한 엑센츄어 인터랙티브(Accenture Interactive)는 스웨덴의 에너지 회사인 스톡홀름 엑서지(Stockholm Exergi)와 함께 구글 홈 AI스피커에서 동작하는 메모리 레인(Memory Lane) 이라는 음성 앱을 통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AI가 먼저 능동적으로 노인에게 말을 걸며 서로 소통하는 과정에서 노인의 기억에 있던 많은 정보들을 기록화한 뒤 오디오북이나 책으로도 출간하는 프로젝트였는데 매우 유용한 정보들이 꽤 많았다고 한다. 이처럼 AI스피커 뿐만 아니라 주변의 다양한 사물들과 자유롭게 소통하며 정보를 얻어 나갈 수 있는 기반은 더욱 확장되고 활용도도 늘어날 것이다.
*** (재)행복한에코폰은 SK그룹이 2013년에 설립한 사회적 기업으로 행복나눔재단이 출연한 비영리 법인이다.
다섯째, TV를 활용하라. 노인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매체가 TV라고 한다. 해외에서는 비중이 커지는 노년층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핀란드에서는 2018년 8~9월에 전국 10개 도시에서 윌레(Yle) 방송 캠페인을 개최했는데 좋은 반응을 얻었다. ‘모두를 위한 인터넷’이라는 디지털 리터러시 캠페인으로 노년층 대상으로 디지털 기술을 알려주는 행사였다. 국내에서도 tvN에서 <요즘책방: 책 읽어 드립니다>라는 프로그램이 지난 9월 첫 방송을 시작했다. 주로 스테디셀러를 알기 쉽게 정리해서 이야기 해주는 형식으로 다양한 인사이트와 재미까지 얻게 되면서 독서에 대한 관심도를 높여나가고 있다. 이러한 프로그램을 통해 노인들도 직접 읽지 못하더라도 간접적인 독서를 할 수 있는 채널이 생긴 것이다.
책의 형태와 읽는 방식은 시대가 변하면서 확장되며 진화되고 있다. 독서는 환경의 변화 속에서도 삶을 살아가는데 큰 도움을 준다. 논리력을 향상시키고, 지식을 넓혀주며, 창의력을 발달시키는 등 인생의 방향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우리는 평생 책을 손에서 놓지 말아야 한다. 다독가로도 잘 알려진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는 독서의 길에 대해 ‘읽는 글에 대한 경의, 이해하고자 하는 인내, 수용하고 경청하려는 겸손함’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독서는 강요가 아닌 필요성에 의해 접근해야 하며, 연령대에 맞는 가이드 마련도 필요하다. 독서의 기술은 시대적 환경과 함께 공존하는 것이다.
본 글은 <출판저널> 2019년 10+11월호 (통권 513호)에 게재했던 글임을 밝혀드립니다.
글 이은호 교보문고, 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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