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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핫 Apr 19. 2023

4. 신랑행진곡

과거가 음악을 듣는 순간

과거에 남긴 감정들이 있는 커튼을 들추면,


괴로워하고 힘들어하던 어린 내가

웅크리고 앉아 흐느껴 울고 있다.


코코아 한 잔 타다 건네줄 만큼의 어른이 되었지만,

당장 오늘을 살아야 하는

손 한번 잡아주지 못한 채

다시금 커튼을 치고 돌아선다.


시간이 흐르는 한, 계절이 돌아오듯

언젠가 또 힘든 시간을 마주하겠지.

빛조차 못 들어올 커튼을 준비하며.


결혼은 그 커튼을 걷고 들어와,

어린 나를 품에 안아주는 사람과 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 사람이다'라고.

나 역시 '이 사람에게 그런 존재이고 싶다'라고 생각한다.




전화 통화를 하고 있으면, 어김없이 그녀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그 노래를 듣고 있는 행위가 내게 큰 안정감을 준다.

하루를 마치고 우리 함께하는 그 시간에

배경음악이 나오는 기분이 들어 괜히 웃음이 나온다.


그녀는 꽤나 다양한 장르를 접하는 편이고,

나의 경우엔 팝송이나 연주곡이 주된 선곡이다.

그런 내가 통화만 하면 '뉴진스의 디토'를 부르니..

영향을 이리저리 받고 있나 보다.


이 만화에선 'newjeans - hype boy' 를 부르고 있다.


같은 노래도 다르게 해석하고

다른 것들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리태씨와 나는 좋아하는 노래가 있으면 서로 추천해 준다.

들어보고 느낀 점을 말해주는데, 참 재밌다.

그녀가 음악을 추천할 때는 '~한 상황에서 그 곡을 들으면 좋다.'라고 말해주는데,

그녀는 특정 순간을 음악으로 기억하는 것을 즐기는 것 같다.


출근할 때는 '부석순 - 파이팅 해야지'라는 노래.

화가 날 때는 '베토벤의 월광소나타'를 추천해 줬다.

그녀가 말하는 순간들에 추천해 준 음악을 들어봤다.

왠지 모르게 피식하고 입가에 웃음이 새어 나온다.

'이런 기분으로 이 음악을 들었겠구나.'


나는 추천받은 음악을 그녀로 기억하는 것을 즐긴다.




나중에 우리 힘으로 같이 살 공간이 생기면,

좋아하는 음악을 고즈넉하게 틀어놓고

엉터리 왈츠라도 한 번 추고 싶다.

웃겨서 웃음이라도 나온다면 그것만으로 성공 아닐까?


음악으로 커튼을 걷고 빛을 비추고 싶다.

같이 함께하는 순간에 흘러나오는 노래가

무릎을 안고 있는 우리 어린 날들에

위로가 되고, 찰나의 웃음이 되었으면 한다.


얼마 전, 그녀가 물었다.

'결혼식장 신랑입장곡은 어떤 걸로 할 거야?'


머리를 이리저리 굴려봐도 망설여졌다.

좋아하는 노래가 너무 많아서.

지금도 여전히 정하지 못했는데, 그 순간의 감정을 위해서라도 충분히 고르고 또 골라봐야겠다.

내가 그녀에게 걸어가는 순간을 그녀는 노래로 기억할 테니.


아, 이건 참 행복한 고민이지 않을까 싶다.


더할 나위 없이 신중하고, 빈틈없이 즐겁고, 남김없이 조심스럽게.

그녀를 보느라 우주가 보이지 않는 그런 밤에.

여름의 풀벌레 소리와 닮은 노래로.


어린 모습을 한 우리도 꺄르르 웃을만한 노래로.


함께 갔던 아쿠아리움을 회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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