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릉이와 헬멧

따릉이 라이딩 = 헬멧 필수

by 태리우스

따릉이를 타고 청계천 자전거도로를 따라 집에 가고 있었다. 청계천 자전거도로는 자동차가 바로 옆에서 달리기 때문에 안전에 유의하며 타야 한다. 그런데 따릉이에서 틱틱 소리가 나며 헛바퀴가 돌았다. 페달과 체인의 연결 부분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앞으로 20여분은 더 페달링을 하며 퇴근을 해야 했다.

여름 같은 가을 저녁에 따릉이를 타고 퇴근하는 것은 레몬이 입안에서 톡 터져 새콤한 맛에 깜짝 놀라는 상큼한 기분은 아니다. 그날은 힘든 하루 일과를 마치고 축 처지고 지쳐 식어져 눅눅하게 풀이 죽은 밤식빵 같은 기분이었다.


그래도 안락한 집에서 내가 좋아하는 밤식빵의 달달하고 촉촉한 노란 밤 같은 편안함을 맛보겠다는 마음으로 힘을 내서 페달을 돌리며 달렸다.


그런데 따릉이가 계속 헛바퀴를 도는 것이었다. 개그맨이 개그를 하는데 잘 안 먹혀 등에 땀이 나고 얼굴 표정 관리도 안되고 막막한 마음에 두렵기까지 하지만 그래도 계속 개그를 해야만 하는 것처럼 따릉이의 체인은 헛바퀴를 내면서도 열심히 돌아갔다. 나는 체인의 성실함에 높은 점수를 주고 참아보려고 했다. 하지만 헛바퀴가 돌면 우선 무릎에 무리가 가기 때문에 참고 타기에는 나의 오른쪽 무릎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약간 아픈 내 왼쪽 다리를 위해 더욱 열심히 일하는 나의 오른쪽 다리가 아닌가!


다른 따릉이로 바꿔 타기 위해 청계천 박물관 앞에 있는 따릉이 대여소로 갔다. 체인은 이제 전문가의 손길로 치유받아야 할 때가 되었다. 나의 목적지에 끝까지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튼튼하게 회복될 자신을 생각하며 고마운 마음에 따릉이는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른다.


따릉이는 두대가 있었는데, 한대는 고장이었고 다른 한대를 빌려서 바꿔 타기로 했다. 그리고 내 따릉이는 고장신고를 했다. 1599-0120에 전화를 하면 고장신고를 할 수 있다. 사실 신고는 귀찮다. 전화를 해야 하고 상담사를 기다려야 하고 설명을 해야 한다.

하지만 신고를 안 하면 누군가가 나처럼 불편을 겪을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나는 체인에게 너를 훌륭한 의사에게 소개해주겠다고 사나이 대 사나이로 약속을 하지는 않았지만 문화시민으로서의 책임감이라고 생각하고 나는 문제가 있는 따릉이를 웬만하면 신고한다. 이 소문이 따릉이체인협회에 알려져서 나에게 감사패를 보내주면 좋겠다.


신고를 하고 새로운 따릉이를 타고 가려고 하는데 어떤 아줌마가 나타났다. 아줌마는 체격이 있고 얼굴이 약간 길고 크셨다. 최홍만 정도는 아니지만 리틀 여자 최홍만 아주머니 같은 이미지였다. 아주머니는 내 옆에 고장 신고된 따릉이를 빌리려고 했다. 나는 고장이 났다고 말했고 아줌마는 알았다고 했는데 순간 내 마음에 어떤 생각이 들었다.


내가 빌린 새로운 따릉이를 양보하고 싶어 졌다. 양보를 하면 뭔가 멋있는 남자 같고 양보를 하면 더 좋은 것이 내게 주어질 것 같은 확신이 들었다. 어두운 저녁이었다. 가로등도 어두웠다. 어둔 그곳에 제주도 무농약 귤을 착즙기에 갈아 예쁜 유리컵에 담은 감귤 주스 빛깔의 오렌지 보안등이 나의 마음에 켜졌다.

나는 아주머니에게 그냥 내 자전거를 타시라고 말했다. 아줌마는 그러냐고 하면서
쿨하게 알았다고 했다. 아주머니는 내가 빌렸던 따릉이에 블루투스를 연결해서 대여를 하고 있었다. 나의 마음은 사람들로 가득 찬 2호선에서 6호선을 갈아타고 한적한 자리에 앉아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는 것처럼 평온하고 시원했다.

잠시 후 나의 시원한 오렌지 주스의 보안등은 빨간색의 경고등으로 바뀌었다. 경고등은 성난 황소가 되어 얼굴을 붉히며 나 스스로에게 말했다. “내가 빌려준 따릉이를 타고 사고가 나면 어떡하지?” 아주머니는 헬멧이 없었다. 나는 안전제일 주의자이기 때문에 따릉이를 타면서도 헬멧을 꼭 챙겨서 탄다. 헬멧을 들고 몇 걸음을 걸어가면서 만약 아주머니가 사고가 나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후의 일은 당연히 모르겠지만 내가 양보한 자전거를 탄 아줌마의 안부를 난 몇 시간 정도 심각하게 걱정할 것 같았다.


왜냐하면 나는 강박증이 있는 사람이다. 내 양심은 다른 사람과 약간 다르다. 그래서 나는 두려웠다. 나의 선행으로 누군가의 안전과 생명에 피해를 준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한번 이런 생각이 들면 쉽게 생각을 지우기가 어려웠다.


이상한 냄새가 나면 빨리 그 장소를 떠나거나 냄새나는 것을 버리거나 치워야 하는데 나는 이상한 냄새를 계속 맡으며 계속 음미하며 괴로워했다. 나의 강박증 증세는 그런 식이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때 나의 마음의 빨간불이 강박증 때문이 아닐 수도 있는 것 같다. 누군가를 걱정하는 것이 모두 강박증은 아니지 않겠는가.

그래서 나는 발길을 돌려 아줌마에게 갔다.
아줌마에게 말했다. “아주머니 이 헬멧 가지실래요? 정말 비싸고 좋은 거예요. 대신 꼭 헬멧 쓰시고 자전거 타세요. 그리고 저는 서울시민교회를 다녀요. 아주머니도 예수님 믿으세요.”라고 말했다. 나눔도 하고 전도도 한 것이다. 나는 크리스천이기에 아주 뿌듯했다.


아주머니는 쿨하게 내 헬멧을 받았다. 그리고 나는 훨씬 더 쿨하게 내 갈길을 갔다. 아주머니의 최소한의 어쩌면 최대한의 안전이 확보되었으니 나는 마음이 편했다. 내 마음은 빨간불에서 부드러운 노란색 앙고라 니트처럼 평온해졌다. 내 헬멧은 지금 나에게 없지만 아주머니가 나와의 아주 짧은 만남 가운데 어떤 청년과 갑자기 하게 된 중요한 약속 [자전거 헬멧 착용하기]를 지키고 계실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기분이 좋다. 누군가를 위해 나눔을 했다는 것이 기분을 좋게 하는 것 같다.

소유의 기쁨보다 더 오래가는 나눔의 기쁨.
신기한 나눔의 속성인 것 같다. 나눔은 세상을 향기롭게 한다. 은은하게 퍼지는 바다향기처럼 숲 속의 풀내음처럼 꽃들의 향기처럼 우리에게 스며들며 퍼져 나간다.

하지만 여전히 내 옷장에는 너무나 많은 옷들이 있고 폭식을 하면 다음날 배가 더 고픈 것처럼 나에게는 많은 물건들이 있고 또 구매를 한다. 기부단체에 기부하기로 하고 잘 안 입는 옷들을 커다란 비닐봉지에 담아 보내기로 했다가 몇 달 뒤에 다시 꺼내서 옷장에 넣어 놓고 입기로 한 나였다.

북한이 중공군을 힘입어 남쪽으로 진격하여 부산을 포위하고 있는 것처럼 기세 등등하게 내 마음은 욕심군에게 지배당하고 있다. 그래도 나눔군은 나름대로 열심히 게릴라 전술을 펼치며 크고 작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고 있다.

인천 상륙작전처럼 기적 같은 마음에 터닝포인트로 나눔군의 완전한 전쟁 승리 소식은 아직 없다. 여전히 헬스장에서 가끔 운동을 하는 동네 아저씨가 타격과 그라운드 기술에 탁월한 UFC 격투기 선수와 싸우기 위해 링에 올라간 것 같이 나의 나눔 마음은 여전히 힘이 약하다.

그런데 각본 없는 드라마라는 말처럼, 야구는 9회 말부터라는 말처럼 때론 나눔 마음이 홈런을 칠 때가 있다. 나의 헬멧 나눔이 그랬다. 만약 아주 만약 그날 아줌마가 그날 사고가 날 뻔했는데 내가 나눈 헬멧을 써서 다행히 사고가 안 나고 생명을 구했다면 나는 9회 말 투아웃 투 쓰리 3:2로 지고 있는 만루 상황에서 홈런을 친 것이다. 누군가의 생명을 구한 것이다!

아니 어쩌면 내가 따릉이를 타고 가다가 사고가 날 뻔했는데 양보를 해서 내가 생명을 구했을지도 모른다. 나눔으로 인해 긍정적인 해석들이 가능하게 되었다. 반대로 나누지 못했다면 부정적인 생각들로 지배당했을지도 모른다. 사실 이 모든 게 가정과 추측이고 연관성이 확인할 수 없다.

그래도 난 나눔의 힘을 조금 알게 되었다.
나눔의 기쁨과 나눔이 주는 해피엔딩을
믿는다. 조금씩 내 마음을 나눔 마음으로 정복하기 위한 전술 매뉴얼을 생각해보았다.


우선 나눔을 하기 위해는 첫째, 누군가에 필요를 바라보는 마음이 필요하다. 둘째, 내가 갖고 있는 것 중에 나눌 것을 찾아야 한다. 셋째, 용기를 내서 나눌 다짐을 해야 한다. 넷째, 뒤돌아보지 말고 나눠야 한다. 네 가지 매뉴얼대로 움직인다면 나눌 수 있다.


내 것을 꽉 움켜잡고 있는 욕심의 손의 힘을 풀고 나의 것으로 누군가의 필요를 채우게 되면 나눔의 홈런은 언제든지 칠 수 있다. 나눔의 결과는 어떤 수학 법칙과 같이 언제나 해피앤딩이다. 나눔을 통해 다가올 겨울에 우리의 마음이 따뜻해지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따릉이를 탈 때는 우리 모두 꼭 헬멧을 쓰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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