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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리우스 Mar 11. 2024

인생의 슬로프에서

 올해는 마음에 여유가 없었는지 스키장 생각이 안 들었다. 나이가 들수록 여유가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고 나이를 먹을수록 사는 게 강퍅해지는 사람들이 있는데 내가 그럴까 봐 걱정이다.    


인생은 쏜 살처럼 날아간다고 한다. 스키를 타고 슬로프를 내려오면 넘어지기도 하고 멋들어지게 폼을 잡기도 하고 물찬제비처럼 활주를 하기도 한다. 어떻게든 결국 마지막 지점을 지나 평지에 도달하면 코스가 끝난다. 누군가는 눈밭에 뒹굴어서 엉망인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긴 머리를 휘날리며 스키복을 입었어도 늘씬하고 아름다운 실루엣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있고 패트롤에게 실려 가는 사람도 있다. 지인은 스키를 타다가 어떤 남자와 부딪히셔 팔이 부러졌는데 그 남자와 결혼했다. 눈밭에서는 별별 이야기들이 만들어진다.  



샘물호스피스병원이 있다. 더 이상 의학적 치료가 안 되는 환자들이 죽음을 기다리며 마지막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임종을 지켜본 샘물호스피스대표의 말이 생각난다. 죽음 앞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을 자기 마음대로 살았던 것을 후회한다고 한다. 원치 않는 질병으로 생을 마감해야 하는 사람들이라면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살지 못했던 걸 후회할 것 같은데도 그렇지가 않다고 한다. 왜 그럴까? 인간을 자기 멋대로 하게 두면 이타적이지 않고 이기적이며 순결하기보다 음란하며 절제하지 않고 방탕하며 성실하지 않고 게으르다. 내 마음대로 살다가 죽음 앞에서 지나온 삶을 후회한다. 가족, 친구, 건강, 시간, 꿈처럼 소중히 여겨야 하는 것들을  함부로 대했던 걸 후회한다. 


무엇보다 사람은 사랑하지 않은 인생을 산 것을 후회하는 것 같다.  


눈을 감고 스키장 정상에 서본다. 엉거주춤 일어나서 균형을 잡고 출발선에 선다. 몸을 기울여 중력의 힘으로 미끄러진다. 시선은 코 앞에 두지 말고 멀리 봐야 한다. 속도와 방향을 조절하기 위해 부드러운 엣지를 만들어야 한다. 서로 다치지 않도록 타인의 위치와 상황을 봐야 한다. 차가운 바람에 코끝이 빨개져도 좋다. 내 몸의 리듬에 맞춰 스키를 조종한다. 하얀 눈 위를 서핑하다 보면 슬로프의 끝이 보이고 멈출 준비를 해야 한다. 우리 인생도 어찌 되었든 끝이 있다. 슬로프에 끝이 있는 것처럼. 


인생이란 슬로프는 이용권이 단 한 번밖에 없다. 나는 어디쯤 내려오고 있는 걸까? 

어떻게 슬로프를 내려오고 있는 걸까? 인생의 슬로프 끝에서 어떤 후회를 할까?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시편 90:10 Our days may come to seventy years, or eighty, if our strength endures; yet the best of them are but trouble and sorrow, for they quickly pass, and we fly away. 

Psalms 90:10, N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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