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단기선교
새 똥을 두 번이나 맞았다. 한 달 사이에 말이다. 무언가 경고의 메시지, 회개의 시그널이라고 생각했다.
'하..... 가기 싫은데....'
화도 나고 답답하고 원망도 들었다.
교회 청년회에서 연초부터 단기 선교 계획이 있었다. 6월부터 본격적으로 필리핀으로 단기선교를 준비해야 했다. 청년회 총무로써 가고 싶은 마음, 가기 싫은 마음, 의무감, 고민되는 생각으로 복잡했다.
그러던 6월의 어느 날, 청년부 여자 동기가 약 올리듯이 말했다.
"목사님과 임원 두 명해서 3명만 가는 거 아니야?"
"나?? 나 안가!"
당시에 청년회에 대한 애정이 식어지고 있던 터라 대수롭지 않게 뱉어버렸다.
그 말을 한 날부터 한 달 동안 새 똥을 두 번이나 맞았다.
새 똥! 얼마나 더러운가? 그리고 얼마나 맞기 어려운가? 한 번은 좋아하는 핑크색 스트라이프 폴로 남방을 입고 저녁식사를 하러 가는 길이었다. 공중을 날아다니는 비둘기가 걸쭉한 가래침 같은 똥을 나의 오른쪽 어깨를 과녁 삼아 10점 만점으로 정확히 맞췄다. 오묘하고 러블리한 무드를 연출하는 핑크색 남방에 네이비, 브라운, 화이트 컬러가 혼합된 더러운 물감이 떨어졌다. 순식간에 남루한 걸인 같은 행색이 되어버렸다. 얼른 화장실 세면대에 가서 남방을 벗었다. 새 똥이 묻은 부분을 씻어냈다. 축축하게 늘어진 남방이 어깨 전체에 찰싹 달라붙어 냉기가 흘렀다. 새 똥에 있을 불결한 세균들을 생각하니 짜증과 불만이 밀려왔다. 하지만 배가 고팠기에 불쾌하지만 밥을 먹었다. 아! 엄청난 나의 식욕이여!
그리고 며칠 뒤, 새벽에 교회를 가는 길이었다. 군자역 1번 출구 뒤쪽 건널목이었다. 검은색 재킷을 입고 자전거 안장에 앉아 사이클 선수처럼 신호등의 색깔이 변하는 출발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순간 콧물 같은 커다란 액체방울이 왼쪽 손목에 흡수되듯이 떨어졌다. 새똥이었다. 짜증도 짜증인데, 솔직히 가슴이 덜컹했다.
'내가 뭘 잘못했나 보다.'
뭐 살면서 새똥을 자주 맞는 나라에 살거나, "새 똥 종종 맞아요!"라고 자기소개를 하는 사람 같으면 대수롭지 않게 여기겠지만, 나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새 똥을 두 번이나 맞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타이밍이 어마어마해야 한다. 우선 새들이 공중에 날아가는 속도, 새똥이 떨어지는 중력에 따라 하강하며 바람의 영향을 받아 표적물에 도달하는 위치의 변화량, 그리고 목표물의 움직임의 상태를 생각하면 확률은 현저하게 떨어진다.
교회에 앉아있는데, 새 똥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자유의지에 대해서도. 새 똥이 단기선교를 안 간다는 나의 의지에 대한 어떤 신호일까? 그렇다면 자유의지는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다. 인생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의지 말이다. 그런데 왜 내가 너무나도 싫어하는 새 똥을 두 번이나 맞았을까? 마음과 생각이 복잡했다. 물론 새 똥이 JUST 새 똥일 수 도 있고 나의 생각이 허무맹랑한 상상일 수 도 있다. 하지만 세상에 우연이 있다는 사람들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는데 나는 후자에 속한다. 그런데 이 부분은 인간이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니 이 정도로 하고.
그 이후로 계속 고민했지만 단기선교를 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계속 신청을 미루고 있었다. 새 똥도 더 이상 맞지 않았다. 다만 더 이상 맞지 않은 새 똥은 물리적 새 똥일 뿐이었다. 거대한 정신적 새 똥들이 나에게 후드득, 철퍼덕, 철썩하고 계속해서 떨어졌다. 7-8월 동안 정신적으로 받은 스트레스로 편두통에 시달리고 개인적인 스트레스들로 만신창이가 될 지경이었다.
드디어 단기선교 신청 마지막 날이 다가왔다. 신청자가 4명 이하면 단기 선교는 취소될 예정이었다. 현재 신청자는 2명, 내가 신청을 안 한다면 단기선교는 안 가게 될 듯했다. 여기저기 사람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같이 필리핀 단기 선교 가자!"
몇 명의 마음이 움직이는 듯했지만 선뜻 가겠다는 멤버가 없었다. 평소 청년회에 나오지 않던 여후배가 생각났다. 연락처를 수소문해서 밤 9시가 넘어 연락했다.
"추석 때 뭐해요?"
"왜요? 추석 때 뭐해요?"
"필리핀으로 단기선교 가죠!"
"그래요!"
선교에 대한 비전과 신앙생활에 대한 열심히 있는 친구라고 알고 있던 터였는데, 흔쾌히 간다는 대답에 놀라기도 하고 감사했다. 그렇게 마감 1시간 전 밤 11시경에 신청자 4명이 모아져서 필리핀 단기선교를 갈 수 있게 되었다.
단기선교를 준비하면서 강박으로 편두통 같은 두통으로 응급실을 가야 할 것 같은 상황도 있었다. 짧은 단기선교 기간 중에도 아침, 점심, 저녁 단기선교 활동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적으로 힘든 시간들도 있었다. 단기선교팀을 인솔하신 목사님과 회장님, 후배에게 죄송한 마음이 컸다.
그럼에도 나에게는 밤하늘에 빛나는 별빛이 생겼다. 필리핀에 가서 아이들을 만난 시간들이 마음의 별빛으로 새겨졌다. 필리핀 톤도라는 빈민촌 지역의 교회에서 유치원 아이들과 풍선놀이와 탑 쌓기 놀이를 했다. 3-6살 정도 되는 아이들이었다. 비좁은 교회에 앙증맞도록 깜찍한 친구들이 우주보다 더 빛나는 눈망울을 동그랗게 떠서 나를 올려다보고 이었다. 한 명 한 명 번쩍 들어서 모두 안아주고 볼을 비비고 싶은 사랑스러운 아이들이었다.
두 팀으로 나눈 뒤 풍선을 앞에서 뒤로 전달하고 맨 뒤에 있는 친구가 풍선을 받으면 앞으로 달려와 탑을 쌓는 단순한 게임이었다. 이긴 친구에게 먼저 소시지를 주고 진 친구에도 소시지를 줬다. 말도 안 통하고 통제도 잘 안되었는데, 몇 번 하다 보니 우리 모두 감을 잡고 게임에 속도가 붙었다.
"3,2,1 GO!"
아이들, 현지 교회 청년 선생님들과 함께 웃으면서 즐겁게 놀았다. 풍선이 뒤로 전달되면서 아이들을 응원했다. 한 줄로 서있는 아이들을 따라 나의 두툼한 손바닥을 내밀면 조약돌처럼 쪼그만 하고 자그마한 손바닥들이 나에 손바닥에 날아와 하이파이브를 해줬다. 그 쪼그마한 손바닥의 촉감이 아직도 나의 손바닥과 마음에 남아있다. 아이들의 은하수 같은 눈빛과 별빛 같은 손바닥을 잊지 않고 마음에 품기를 기도한다.
필리핀의 고등학생, 대학생들을 만나 복음을 나누고 함께 찬양하고 예배했던 시간들이 감사하다. 필리핀 현지에서 청년회 소속 선교사님이 두 분이 계셨다. 선교사 자녀들을 위한 미션스쿨에서 사역하는 청년회 누나와 신학교에서 사역하는 또 다른 누나도 있었다. 오랫동안 봐왔던 당당하고 밝은 미션스쿨 선교사 누나의 울먹이는 나눔에 마음이 먹먹해져 나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함께 한 시간이 길지 않았던 신학교 누나는 재밌고 편안하게 대해 주셔서 감사한 시간이었다. 2025년 달력을 선물로 주셨는데, 더 멀리 높게 보시는 선배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져 내 마음도 포근해졌다.
칼데라호에 연기가 모락모락 피는 활화산도 가보고, 전 세계에서 전망이 제일 아름다운 스타벅스히라야도 가보고 현지 최고 맛집도 가고, 말을 타고 필리핀 문화를 탐방하고, 박물관도 갔다. 누가 보면 한 달은 있었던 같은 일정이지만 4박 5일의 짧은 일정이었다.
돌아보면 단기선교를 안 간다고 했기 때문에 물리적, 정신적 새 똥 테러를 당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나에겐 그런 시간이 필요했고 인생의 어떤 기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삶에는 어려운 문제들이 산적해 있고 첩첩산중으로 펼쳐 저 있다. 필리핀을 떠나오는 날 현지 선교사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인생을 살면서 장애물들을 만나잖아요. 걸림돌이라고 생각하면 삶이 너무 힘들고 어려워요. 그런데 그걸 디딤돌이라고 생각하면 내가 더 성장하고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되는 같아요."
공항까지 데려다주신 선교사님은 내가 강박으로 힘들어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시고 위로와 응원의 말씀도 해주셨다.
"생각 너무 많이 하지 마세요."
"네, 감사합니다."
생각을 많이 하지 않기로 선교사님과 약속했으니 생각을 많이 안 해야 한다. 필리핀 단기선교 일정을 마치고 추석 아침 한국에 도착했다. 추석이라 서울은 시골처럼 한산했다. 추석을 맞아 여름도 고향에 간 줄 알았는데, 여전히 서울에 남아서 서울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여름처럼 나의 강박도 여전히 남아서 오늘도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그럼에도 필리핀 단기선교를 안전하게 다녀오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과 찬양을 올려드린다.
나는 참으로 은혜받은 사람이요. 행복한 사람이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