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도쿄타워

by 태리우스

일본에 간 적 있다. 호주 워홀을 마치고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가 일본 나리타공항을 경유했는데, 한국행 비행기를 포기하고 공항을 나왔다. 내 손에는 일본에서 유학 중인 여자후배의 주소가 적힌 쪽지가 들려있었다.


표지판들에 영어가 병기되어 있지 않았다. 한자를 잘 몰라서 굉장히 혼동스러웠다. 지하철역인지 기차역인지도 모를 공항역 역무원에게 쪽지를 내밀고 표를 샀다.


일본 특유의 차분하면서도 깔끔한 분위기의 열차였다. 갈색과 자주색을 섞은 컬러의 시트에 앉아 한 참을 달려서 낯선 역에 도착했다. 역을 나오자 음산한 기분이 엄습했다. 벽보에는 지명수배자들의 사진이 걸려있었고, 공동묘지 같은 공간이 동네 중간에 있었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라 후배에게 간다는 전화도 안 했고 편지도 안 했었다. 호주에 있을 때 언젠가 일본에 가면 놀러 가겠다고 주소만 받아놓은 상태였다.


길에서 지나가는 일본남자에게 주소 쪽지를 보여주며 영어로 위치를 물어봤다. 일본사람들은 영어를 못한다고 알고 있었는데, 유창한 솜씨로 위치를 알려주었다.


도착해 보니 집이 아니었다. 기숙사 같은 건물이었다. 건물에 들어가 보니 어떤 할머니가 식당 같은 장소에서 등을 보이고 일을 하고 있었다. TV를 켜놨는지 일본방송이 나오는 TV 소리가 들렸다.


후배가 알려준 주소에는 101호가 적혀있었다. 101호 앞에 서서 심호흡을 하고 ‘똑똑’ 노크를 했다. 대답이 없다. 다시 ‘똑똑’ 노크를 했다. 역시 대답이 없다.


’하…. 이대로 한국에 그냥 가야 하나….?‘


실망스러운 마음에 고개를 들어 방번호를 올려봤다. 그런데 웬걸 101호가 아니라 102호였다. 제자리를 빙그르르 180도 돌아보니 101호가 보였다.

다시 희망의 불씨를 붙잡고

’똑똑‘

대답이 없었다. 희망의 불씨는 성냥개비에 붙은 불꽃처럼 금세 꺼져버릴 것 같았다. 다시 한번

’똑똑‘

그때였다.


’ 누…. 구…. 야….?‘


잠에서 덜 깬 허스키한 한국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할렐루야!


이윽고 문이 열렸다. 대학 후배 yoon이었다. 두 눈이 동그레 져서 깜짝 놀란 후배 앞에 내가 어색하면서도 승리에 찬 웃음을 하며 서있었다.


“태우 오빠….? 오빠가 여긴 무슨 일이에요….?”

“…. 일본 놀러 왔어….^ ^;”

“아……그래요….? 하하….우선 들어오세요…..”


호주 워홀에 갔다가 일정보다 한국에 빨리 오게 된 상황이 아쉬워 일본여행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후배는 갑자기 들이닥친 선배를 따뜻하게 대해주었다.


“오빠, 신기한 거 알아요? 내가 일본에 유학 와서 한 번도 수업을 빼먹은 적이 없거든요? 그런데 오늘 처음으로 늦잠을 자서 수업에 못 갔어요! 오늘 원래대로 수업에 갔으면 오빠 못 만났을 거예요!”


신기했다. 사실 호주에서 일본으로 오는 비행기에서 4시간 동안 하나님께 정말 열심히 기도했다. 아무 계획도 없이 떠나는 일본 여행동안 지켜주시고 보살펴주시길 간절히 기도했었다. 살면서 그렇게 오랫동안 열심히 기도한 적도 드물었다. 계획성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나였다. 후배가 늦잠을 자고 날 만날 수 있게 해 주신 하나님께 지금도 감사드린다.


후배는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남자친구는 여동생과 살고 있었다. 날 위해 후배는 남자 친구 집에서 잠을 잤고 난 후배 기숙사에서 밤을 보냈다. 그다음 날 만나서 맛있는 카레도 먹고 유니클로 옷도 샀다. 그리고 일본에서의 짧은 시간을 보냈다.


도쿄에는 도쿄타워가 있다고 한다. 서울에 남산타워가 있듯이 말이다. 지금 서울 N타워라고 이름이 바뀌었다. 서울 N타워에는 돌아가는 식당이 있다. 예전 여자친구의 생일 이벤트로 돌아가는 식당에 간 적이 있었다.


중화요릿집처럼 동그란 식탁이 돌아가는 컨셉의 식당이라고 생각했었다. 도착해서도 몰랐다.

한 사람당 20만 원 가까운 돈이었는데, 경치가 좋으니까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밥을 먹고 있는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세상에! 식당 자체가 돌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남산 타워가 원통형인데, 그중의 일부분 층을 차지한 식당 전체가 360도 돌아가는 식당이었던 것이다. 자리에서 식사를 하면 서울 시내를 360도 유람할 수 있는 초 스페셜한 식당이었던 것이다.

그날은 날씨도 아주 좋았는데, 지배인 같은 분이 오셔서 이런 날은 아주 드문 날이라고 축하해 줬다. 마술 같은 식당에서 여자친구와 환상적인 시간을 보냈었다. 그 이후로 그 식당에 가본 적은 없고 그 여자친구와도 헤어졌다.


파리에 간 적이 있다. 파리 에펠탑을 본 적이 있다. 파리는 아름다운 도시였다. 도시 자체가 예술작품이었는데 어디서나 에펠탑이 보였다. 에펠탑에 올라가 보지는 못한 게 아직도 아쉽다.


도시가 팽이라면 타워는 팽이의 중심에 박혀있는 심 같다는 표현을 들은 적이 있다. 도쿄 사람들도 도쿄 타워에 올라가서 도쿄를 내려다보았을 것이다. 우리가 남산타워에서 서울을 내려다보면서 느끼는 기분과 비슷할 것이다. 물론 에펠타워도 그럴 것이다.


타워에는 연인들이 올라갔을 것이고, 가족이 함께 했을 것이고, 어린아이들부터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가족의 손을 붙잡고 올라가서 도시를 바라보고 감탄했을 것이다. 누군가는 청혼을 했을 것이고 누군가는 이별의 눈물을 흘렸을 것이고, 입대를 앞둔 남자친구와 마지막 데이트를 하며 시간이 멈추길 바랐을 것이다. 늙은 노모를 모시고 타워에 오른 자식들도 있을 테고, 조그마한 꼬마들의 손을 붙잡은 엄마와 아빠들도 있을 것이다.


세상 어디에 있는 타워든 모두 그런 풍경이 펼쳐질 것 같다. 가족과 연인의 사랑, 친구의 우정을 환하게 웃는 얼굴이 담긴 사진 한 장을 남기면서 말이다. 우린 피부색도 다르고 인종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지만우린 모두 서로 닮은 사람이다. 슬플 때 울고 기쁠 때 웃고 힘들게 일하고 졸리면 잠들고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전쟁도 그치고 미워하는 마음도 사라지고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고 보살펴주면 좋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사라진 교통 카드, 새로운 외국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