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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리우스 Sep 21. 2024

2개의 시계

자랑이 아니라 고가의 시계가 2개 있긴 한 데 잘 차지 않는다. 첫 번째 모델은 무겁기도 무겁고 내가 물건을 함부로 다루는 스타일이라 기스가 나거나 어디 풀어두고 잃어버릴까 봐 걱정이 돼서 보관만 하고 있다. 두 번째 시계는 배터리가 없고 시계줄이 맞지 않아서 그 역시 차지 않는다. 


그래서 편하게 찰 시계를 찾다가 당근마켓을 통해 카시오 전자시계를 5 만원 이하로 사서 잘 차고 다녔다. 블랙컬러의 심플한 디자인과 가볍고 실용적이라 좋아하던 시계였다. 그런데 그 시계를 잃어버렸다. 새벽에 교회에 갔다가 풀어 두고 안 챙긴 것 같아 교회본당에 가봤지만 찾을 수 없었다. 마음에 들던 시계라서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에서 어떤 형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웬걸! 그 형이 내 시계와 똑같은 시계를 차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정확히 내 시계와 같은 모델이었다. 내 시계라고 표시를 했거나 이름을 써놨으면 좋았겠지만 그런 표시를 하지 않았다. 하긴 그렇게 꼼꼼하고 철두철미한 사람이라면 진작에 잃어버리지도 않았겠지만.....


"형, 그 시계 형 거예요?"


바로 물어볼 수가 없었다. 왜냐면 그 형은 정신적으로 약한 분이었기 때문이다. 사고가 나서 뇌치료를 받았다고 알고 있었다. 나는 돌려가며 여러 질문을 하면서 물어봤다. 


"형, 그 시계 언제 샀어요?", "형, 집에 시계 많아요?", "형, 그 시계 멋지네요!" 


형은 집에 시계가 여러 개 있고, 본인 시계가 맞다고 했다. 본인 시계가 맞다고 하는데, 형을 계속 의심할 수도 없을뿐더러 내가 잃어버린 거 같으니까 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형, 그 시계 저 주세요. 형 집에 시계 많다면서요." 
 
 형이 집에 시계가 많다고 하니까, 그 시계를 나에게 달라고 했다. 형은 사람 좋은 얼굴로 웃으면서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심증은 가지만 물증이 없으니 더 이상 형을 재촉할 수도 없었다. 형이 그 시계를 나에게 선물로 주기를 바라면서 대화를 끝냈다. 그 이후로 형을 볼 때마다 시계를 확인했다. 


'내 시계가 맞을까? 아니야, 내 거와 똑같은 모델일 수도 있잖아! 포기하자. 잊어버리자. 물건을 함부로 두고 잃어버린 내 잘못이지....'


그렇게 포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몇 주가 지났을까? 금요예배에 본당에 내려갔는데 형이 있었다. 형이 날 불렀다. 그리고 시계를 나에게 줬다.


"이 시계 너 차."

"형...."


형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뭔가 미안해하는 표정, 죄책감으로 힘들어했던 느낌 (나의 추정),

'사실 이 시계 교회에서 주운 거야. 미안해.'라고 말하고 싶은 듯한 얼굴이었다. 형의 눈은 나를 제대로 쳐다보지 못한 채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나도 더 이상 아무 말 않고 감사하다고 했다. 형이 시계를 주니 내 시계가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여기 색깔이 까진 게 내 시계 맞아!' 


여기 전기 먼지가 묻어 있었다. 몇 주 동안 형의 손목에 있었던 시계가 도로 나의 손목으로 돌아왔다.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잃어버렸다가 찾은 특별한 시계였다. 


그 시계를 풀어놓고 방에서 뒹굴거리고 있었다. 여름방학에 서울로 놀러 온 초등학교 3학년 조카가 내 방을 염탐하고 있었다. 방학 동안 제대로 놀아주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 있던 터였다. 내 시계를 만지작거리며 눈독 들이는 것 같았다. 


"그 시계 마음에 들어? 너 가져!"

"진짜요?"

"응, 차봐, 마음에 들면 가져."


초3 남자아이가 차기에는 약간 큰 사이즈였지만 조카는 자기 손목 위로 야무지게도 시계를 튼튼히 채웠다.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좋은 선물을 줬으니 미안한 마음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지만 정작 시계가 없어졌으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시계가 큰 것 같은데, 우선 그 시계 나한테 도로 주고 어린이용으로 다른 거 사주면 안 될까?"

"아니에요. 제가 계속 클 텐데, 어린이용 사면 금방 안 맞을 거예요. 지금은 약간 크지만 바로 맞을 거예요."


똑똑한 초3이었다. 시계를 도로 찾으려는 나의 계획은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시계는 경상남도 양산으로 돌아오기 힘든 여행을 떠났다.  GOOD BYE- MY WATCH!




시계가 없으니 영 불편한 게 아니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집에서 굴러다니는 또 다른 전자시계를 차고 다녔다. 이름하여 G-SHOCK, 한 시대를 풍미하며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시계 모델이다. 아주 커다랗고 터프한 힙합 스타일의 디자인에 자동차가 밟고 지나가도 끄떡없는 튼튼한 브랜드다. 하지만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G-SHOCK의 아성도 애플을 필두로 한 미니멀하고 심플한 디자인 트렌드에 맥을 못 추며 '아~옛날이여~' 노래를 부르고 있는 실정이었다. 한 마디로 제대로 한물 간 브랜드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나도 그 시계를 처박아두고 차지 않고 있었다.


시계가 너무 커서 옷을 입고 벗을 때도 불편했다. 예전 같으면 그게 멋이고 자랑이었을 텐데.... 사람 마음이..... 흠흠. 사실 그 시계에는 잊고 싶은 기억이 있다. 예전 여자친구도 G-SHOCK시계를 찼었는데, 서로 바꿔 찼었던 시계였다. 여러 이유로 버리기는 아깝고 차기는 그런 시계였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어쩔 수 없어 그 시계를 차고 다녔다. 차다 보니 또 나름 멋도 있고 도로 정도 들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필리핀으로 단기선교를 가기 전날, 팀원들과 모인 자리에서 후배가 내 옆에서 말했다.


"오빠, 그 시계 차 봐도 돼?"

"응? 그래? 마음에 들면 너 가져!"


 무릎을 망치로 치면 올라오는 무릎반사처럼 자동으로 시계를 풀어서 후배를 줘버렸다. 내심 시계가 마음에 안 들었던 것 같다. 그런 시계를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이 있으니 아낌없이 플로우 하게 되었다. 회색 베이스에 핑크 포인트가 있는 감각적인 시계였다. 과거 여자친구는 네이비 베이스에 레몬색 포인트가 있는 디자인이었다. 난 서로의 시계를 바꿔찬 사진을 카톡 프로필로 하곤 했다.
 

여자친구 생일로 애플워치를 사주고 나와 여자친구의 G-SHOCK 시계는 모두 내 차지가 되었다.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한동안 갖고 있던 여자친구 G-SHOCK은 기부업체에 보냈다. 내 G-SHOCK은 

기부업체 보내지는 못했다. 예전 여자친구가 찼었던 시계라서 차고 싶지 않은 이유도 있었다. 

철 지난 디자인, 이루 말하기 어려운 이야기가 담겨있던 시계를 후배에게 풀어주고, 섭섭 시원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이 차야 시계도 멋져지는 거야. 잘 됐다!'


후배는 시계가 마음에 드는지 필리핀 단기선교기간 동안 잘 차고 다녔다. 지금도 잘 차고 다니려나? 




요즘 시계를 안 차고 다닌다. 시계가 없으니 불편하다. 무슨 시계를 차야 하나 고민이다. 제일 비싼 시계는 아무래도 부담이고, 두 번째 시계에 배터리를 넣고 시계줄을 맞춰서 찰까 생각 중이다. 하긴 시계가 뭐가 중요한가? 시간이 더 중요하지. 시계로 고민할 시간에 시간을 더 밀도 있고 소중하게 다루는 데 신경 쓰고 고민해야지. TIME IS GOLD니까. 그런데 시간을 아끼려면 시계가 있어야 하는데. 나만의 시계를 어서 정해서 차야겠다. 결론적으로 시계도 시간도 인간에게 참으로 소중하다. 한 달 동안 시계를 2개나 선물했으니 누군가 나에게 시계를 선물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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