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타고 가는 한 남자를 봤다. 오른손에는 파리바게트 케이크가 들려있었고, 왼손으로 자전거 핸들을 잡고 있었다. 자전거를 탄 채로 말이다. 남자는 좁은 보도를 달리고 있었다. 무슨 배짱인가 싶었다. 서커스 단원도 아니고 케이크를 어떻게 저렇게 들고 가나 싶었다.
핸들을 잡은 왼손으로 브레이크도 조작해야 한다. 오른손은 케이크가 기울어지지 않기 위해 절묘하게 균형을 잡아야 한다. 언제 사람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울퉁불퉁한 보도블록 위를 달리는 남자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그 남자는 헬멧도 쓰지 않았다. 무슨 급한 일이 있었나? 낮시간이었다. 케이크는 대부분 오후에 사서 저녁에 먹는다. 가족이나 친구들이 모여서 파티를 할 때 케이크가 등장한다. 낮에 뭐가 급하다고 케이크를 그리 들고 갔을까?
급브레이크를 잡는 순간 케이크가 쏠려서 모든 게 망쳐 버릴 텐데 말이다.
사실 한 손으로 브레이크를 잡기도 어렵다. 두 손으로 핸들을 잡아야 몸이 기울거나 쏠리지 않아 안전한 정지가 가능하다. 도착지에 순탄하게 도착했는지 무척 궁금했다.
케이크만큼 신중하게 다루는 물건이 또 있을까? 그런 케이크를 그리 위험천만하게 다루는 특별한 사람이었다. 새 케이크는 플라스틱 용기에 담지도 않고 비닐로 포장할 수 도 없다. 케이크 보드 위에 파티시에가 디자인한 모양 그대로 살포시 올려 담아서 지표면과 수평이 되도록 신중하게 이동시켜야 한다. 케이스를 열고 케이스 위에 케이크를 올리고 커팅을 하고 인원수대로 배분할 때까지 케이크는 언제나 수평이다.
예전에는 생일 파티를 할 때 케이크에 생일자 얼굴을 처박는 문화가 있었다. 내가 20대까지만 해도 그랬다. 나의 스무 살 생일 때도 친구들이 생일 케이크에 내 얼굴을 처박았다.
"너 오늘 재킷 멋지다. 잠깐 벗어봐. 입어 보게."
"그래? 그래! 한 번 입어봐라!"
생일이라고 멋을 부린 다고 입고 온 재킷을 벗어 친구에게 준다. 재킷을 벗었기에 친구들은 마음 놓고 계획을 실행한다.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나를 둘러싼 친구들이 내 머리를 농구공 삼아 케이크 위로 덩크슛을 한다. 얼굴이 눈사람처럼 돼버린 나를 보고 깔깔거리고 떠들면서 사진을 찍는다. 초토화된 케이크를 내려다보고 어이없는 웃음이 터져 나온다.
지금 생각해보 케이크가 아깝다. 그토록 조심스럽게 만들고 고이고이 아껴서 들고 온 케이크를 왜 박살 냈던 걸까? 그래도 그때의 생일 축하가 몹시 그립다.
군대에는 케이크가 없다. 초코파이나 오예스를 벽돌 삼아 직육면체를 만들어서 케이크를 만든다. 군대에서도 생일자 얼굴을 케이크에 쳐밖았었다. DMZ에 있었는데, 전방에는 매점이 없다. 그래서 황금마차라는 노란색 매점차가 38선 철책 DMZ를 돌아다닌다. 노란색이라 황금마차라고 불린다. 버스보다는 작고 승합차보다는 큰 차다. 온통 풀색으로 가득한 군대에서 유치원들의 스쿨버스 같은 황금마차가 등장하면 군인들도 유치원생처럼 들뜬다. 모아두었던 월급을 털어서 먹고 싶은 과자, 음료수들을 잔뜩 산다. 참고로 내 군 시절 월급은 3만 5천 원 정도 했었다. 2024년 병장 월급이 200만 원이라고 해서 놀랍고 부럽기까지 하다. 그래도 다시 군대 가라면 잘 모르겠다. 젊었을 때는 절대 안 간다고 했겠지만 나이 들어 보니 밥 주고, 옷 주고, 월급 주고, 운동하고, 괜찮은 직업 같다. 다시 케이크 이야기로 돌아와서. 그렇게 산 간식들로 우리들만의 생일파티를 하곤 했다. 얼굴을 쳐 밖은 초코파이 케이크를 어떻게 했는지 기억은 안 난다. 먹었나? 버렸나? 버리진 않았을 것 같다.
그렇게 케이크 위로 얼굴을 밖은 문화가 어느 순간 없어졌다. 파리바게트가 동네빵집과 제빵업계를 평정하면서 그랬던 것 같다. 파리바게트에서 케이크의 중심을 잡아주는 플라스틱을 케이크 받침대 중앙에 심기 시작했다. 십자가 모양의 플라스틱으로 흔들리는 케이크를 고정해 주는 역할을 했다. 그런 중심추가 있는지 모르고 케이크에 얼굴을 처박았던 몇몇 사람들이 크게 다쳤다는 소식이 들리자 케이크 얼굴 범벅 세리머니는 완전히 사라졌다.
케이크에 얼굴을 처박는 문화가 사라진 게 아쉬웠던지 케이크를 손가락으로 찍어서 생일자 얼굴을 데코레이션 하는 문화가 한동안 있었는데 요즘에는 그런 문화도 없어진 것 같다.
케이크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다. 제빵기능사를 따고 제과 공부를 했었는데 케이크를 만들 때 얼마나 재밌었는지 모른다. 케이크 빵시트를 층층이 쌓고 그 위에 생크림을 덮어 아이싱 하는데 빙빙 돌리면서 도자기를 만들듯 모양을 만들 때면 마술사가 된 듯한 묘한 행복감을 느꼈었다. 인스타에 나오는 예쁘고 심플한 케이크를 보면서 나만의 케이크 디자인을 스케치하곤 했었다.
케이크는 기쁨의 순간에 우리와 함께 한다. 슬픈 날 케이크를 먹지는 않는다. 웬만하면. 생일, 승진, 졸업처럼 인생의 하이라이트에 밤하늘의 폭죽처럼 함께 한 이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등대가 된다. 케이크를 들고 가는 사람들의 표정은 언제나 숨길 수 없는 설렘이 느껴진다. 주인공도 아니면서 왜 설렐까? 누군가를 기쁘게 해주는 일은 나도 기뻐지는 일이라는 비밀이 있는 것 같다. 주인공은 자기 케이크를 준비하지 않는다. 주인공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케이크를 챙겨준다. 참 따뜻한 케이크다. 케이크처럼 살을 찌게 만드는 음식도 없지만 케이크처럼 마음을 포동포동하게 만드는 음식도 없다.
성대한 결혼식에 등장하는 3층 케이크도 대단하고, 컵케이크도 좋다. 아주 작은 미니 케이크도 인기다.
빵에 생크림을 올리고 그 위에 토핑과 데코를 하는 케이크가 우리 인생에서 하는 역할은 꽤 큰 것 같다.
친구들과 케이크를 먹은 지도 오래됐다. 가족들과 함께 케이크 먹는 시간을 더 늘려야겠다. 내게 소중한 사람들과 더 많이 케이크를 먹어야겠다. 그만큼 운동도 해야겠지만-
함께 케이크를 먹는 시간들이 더 많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