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인사이드 아웃 2
도서관 사물함을 열어 가방을 꺼냈다. 가방에는 맥북프로 노트북, 아이패드 프로, 블루투스 키보드, 노이즈캔슬링 헤드셋, 충전기, 책, 인쇄물들이 들어있었다. 군인이 완전군장을 하고 훈련을 받고 작전에 나가듯 나의 완전군장이 사물함에 들어있었다. 가방을 꺼냈는데 구린 냄새가 솔솔 흘러나왔다.
'뭐지?'
불안한 마음이 스프링처럼 튀어나왔다. 가방 안에는 못 보던 종이쇼핑백이 들어있었다. 종이백은 온통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도대체 뭐지? 먹다 남은 고구마를 넣어놨었나?'
젖은 쇼핑백을 꺼내서 조심스럽게 열어보았다. 안에는 터져버린 두부가 들어있었다. 이틀 전에 편의점에서 2+1 두부를 사서 2개는 먹고 1개는 넣어놓았었다. 그 두부가 하루 동안 더운 날씨 속에 사물함에 있으면서 팽창해서 뻥하고 터져버린 것이다. 안돼!
콩국물, 콩국수, 두부처럼 콩으로 만든 요리를 좋아해서 즐겨 먹는다. 편의점에서 파는 두부도 뜯어서 물을 버리고 그냥 먹는다. 김치 같은 게 없어도 2개 정도는 먹을 수 있는데, 3개까지는 밋밋한 맛 때문에 먹기가 힘들어 남겨놓은 두부였다.
두부를 플라스틱 용기에 포장할 때 함께 들어있던 보존 용액이 터져서 가방에 흘러내렸던 것이다. 가방은 나의 초미니 사무실이나 마찬가지다. 핵심장비들이 들어있던 가방에서 썩은 냄새가 풀풀 났다. 큰일이었다. 모두 전기장비인데 두부 터진 물이 흘러들어 가기라도 했다면 낭패 중에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두부 바로 밑에 있던 헤드셋은 전쟁터의 최전방처럼 처참했다. 헤드셋을 담아두었던 파우치가 모두 흠뻑 젖었고 헤드셋도 전체가 젖어있었다. 어쩔 수 없이 수돗물을 틀어서 모두 씻어냈다. 귀를 덮는 폭신폭신한 부분과 안쪽 스피커를 보호하는 부드러운 재질 모두 젖어서 어쩔 수 없었다. 아직 마르지 않아서 작동되는지 확인을 못했지만 작동이 안 될 것 같다.
그 밑에는 즐겨 쓰는 무소음 로지텍 블루투스 키보드가 있었다. 역시 두부 썩은 물에 공격을 당했다. 망가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충전부분과 파워 부분을 막아가며 물로 깨끗이 씻었다. 방수기능이 있어서 잘 처리된 줄 알았다. 그런데 모서리 전체가 패브릭재질이라 냄새가 심각하게 배서 사용을 못하고 있다.
'하.....'
나는 공공장소에서 키보드소리를 내는 사람을 굉장히 싫어한다.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지금 그런 행동을 하고 있다.
'안돼....!'
그 밑에는 아이패드 프로가 들어있었다. 다행히 커버가 방파재 역할을 하며 애틋하게 보호해주고 있었다. 패드를 지켜냈지만 커버 자신은 오염된 두부물에 침식되어 굉장한 악취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열심히 씻었는데도 냄새가 사라지지 않아서 하룻밤동안 세면대에 담가두고 경과를 보고 있다. GOOD JOB! 패드 커버!
맨 밑에 있던 고가의 핵심장비 맥북프로의 피해가 가장 적었다. 플라스틱 보호케이스를 하고 있었고, 최하단에 위치하고 있었기에 두부 썩은 물의 침투가 가장 미약했다. 케이스를 빼서 씻고 노트북을 깨끗이 닦는데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떨어뜨리기라도 하면, 엄청난 돈이 날아간다. 두부 썩은 물이 노트북에 들어가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짜증이 일론 머스크가 쏘아 올린 달탐사 로켓처럼 치솟아 올랐다. 된소리로 된 쌍스러운 말이 절로 나왔다. 도서관 화장실의 작은 세면대에서 씻겨낼 수가 없었다. 도서관 옥상에는 도시텃밭이 있었고 야외 싱크대가 설치되어있었다. 거기서 모든 제품들을 깔끔히 씻고 가방도 빨았다. 할 일이 많은 날이었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난 왜 이럴까? 난 왜 이 모양일까? 남들은 안 하는 고생을 왜 하고 있을까?'
인사이드 아웃 2에서 불안이에게 사로잡힌 라일리는 '난 왜 이 모양일까?'라고 자책하고 불안에 휩싸인다. 극도의 불안으로 공황장애 증세 직전까지 내몰린 라일리의 복잡한 핵심 신념을 모든 감정들이 따뜻하게 안아준다. 기쁨이, 슬픔이, 버럭이, 소심이, 당황이, 부럽이, 따분이, 불안이 까지. 그제야 라일리는 다양한 감정과 핵심기억들로 만들어진 균형 있는 신념으로 라일리가 라일리다워진다.
두부 폭탄으로 엉망이 됐지만, 다행히 핵심 장비들이 안전하게 보관돼서 감사하고 기쁘다. 시간도 날리고 짜증도 나고 에너지도 쓰고 화도 나고 기운도 빠졌지만, 더울 때는 음식을 함부로 보관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배울 수 있게 되었다.
매운 걸 먹어야 땀을 찔찔 흘리면서 노폐물을 배출하는 것처럼 화도 나야 한다.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소리를 질러야 할 때면 코인 노래방에 가서 샤우팅을 하면 된다.
슬플 때는 눈물도 흘려야 가슴에 응어리도 풀어지고슬픈 사람 마음도 공감할 수 있고,
소심할 때가 있어야 기고만장하게 교만 떨지 않고 겸손해지고,
당황을 해봐야 분위기 파악을 하는 기술도 배우고,
부럽기도 해 봐야 나 잘난 맛에 사는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않고,
때론 따분해야 미친 듯이 일만 하는 인생의 리듬도 맞춰갈 수 있고,
불안해야 미래를 생각하고 정신 차리게 살 수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언제나 기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기쁨이가 감정의 리더가 되는 게 그래도 베스트라고생각한다.
"기쁨아, 두부 폭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그야! 최고로 기쁜 일이지! 이번일로 앞으로 더 조심할 수 있게 됐잖아! 무엇보다도 중요한 장비들은 하나도 안 망가졌잖아! 그리고 오랜만에 장비들을 깨끗이 씻었잖아! "
"기쁨이 너는 좋겠다..... 앞으로도 내 감정컨트롤을 네가 리더가 돼줘."
"물론이지! 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는 네가 언제나 최고로 행복하길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