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밥을 배부르게 먹고 낮잠을 자고 있었다. 블랙홀에 빠진 것처럼 어둠 속에서 잠잠하고 고요한 꿀잠의 세계를 유영하고 있었다.
'부스럭! 부스럭!'
비닐 마찰소리가 경고 신호가 되어 저 멀리 있던 의식이 돌아왔다.
'뭐야....?'
오랜만에 꿀맛 같은 낮잠을 자고 있었는데...... 삼각김밥을 먹으려고 포장을 뜯었는데, 김에 싸여있던 삼각밥이 아래로 쏙 빠져버리고 김만 먹은 듯한 아쉬움이 몰려왔다. 점심 먹고 늘 낮잠을 자기에 다시 잠을 청하려 미간이 찡그려진 채 눈을 감았다.
'바스락, 바스락, 쉭, 쉭, 바스바스락락'
누군가 비닐포장 비비기 대회라도 나간 냥 계속해서 비닐마찰음을 내고 있었다.
'아..... 진짜 뭐야.....?'
활화산이 폭발하기 직전처럼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소리가 나는 쪽을 봤다. 어떤 남자가 택배포장들을 신나게 뜯고 있었다. 티셔츠가 들어있는 비닐 포장들이 눈에 들어왔다. 인터넷 쇼핑을 해서 받은 물품 같았다. 분노의 눈빛으로 남자를 째려봤다.
'아니, 조용한 도서관에서 왜 저런 행동을 할까?'
마음속 버럭이가 출동하여 폭발적인 언어폭력을 해주고 싶은 걸 기쁨이가 겨우 막아주고 있었다. 도서관에 많고 많은 자리를 내버려두고 내 옆에서 저럴까? 꿀맛 같은 낮잠이 담겨있던 꿀단지를 홀라당 엎어버린 남자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 방도 아니고 여긴 공공장소인걸. 결국 낮잠을 포기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쉽게 분이 풀리지 않아서 남자를 계속 힐끔힐끔 째려봤지만 어느 순간 남자가 앉아 있던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바람과 함께 내 잠도, 남자도 사라졌다.
정신의학과에 갔는데, 약을 처방받았다. 먹지 않았다. 내가 공들여 쌓아 올린 정신세계의 금자탑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를 오류투성이 인간이 만든 알약을 내 몸에 투여하고 싶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에게는 먹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막상 먹으려니 알약을 집어든 손이 내 입으로 올라가질 않아 맹물만 삼키길 여러 번이었다. 그렇게 몇 달을 의사 선생님과 숨바꼭질을 했다. 결국 의사 선생님은 약을 안 먹을 거면 병원에 오지 말라고 했다. 그렇게 2년을 병원만 다니고 약을 안 먹었다.
아주 가끔 최소투여량으로 먹어보긴 했는데 그렇게 해서는 효과를 알 수 없었다. 언젠가는 약을 바꿔보았다. 약 색깔이 vivid 한 새 파란색이었다. '나 인공적인 약이에요!'라고 뽐내기라고 하듯이 현대의료과학기술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약이었다. 무슨 용기가 있었는지 그 약을 먹었다. 부작용이 있었다. 속이 매스껍고 어지럽고 토하고 힘든 오후 시간을 보냈다. 그 약의 부작용 사건 이후로 더 약을 신뢰하지 못하게 되었다. 의사 선생님은 자기에게 맞는 약을 찾는 과정이라고 했고 정신과 약은 임상실험을 한 약 들이라서 부작용이 없다고 했다. 그렇지만 누군가는 정신과 약을 먹으면 나이 먹어서 치매에 걸린다고 했다. 또 누군가는 신앙의 힘으로 이겨내 보라고 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갈팡질팡하며 약을 못 먹기도 하고 안 먹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나라 정신과 최고 권위자인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1번 진료실의 주인공이신 권준수 교수님께 진료를 받았다. 1년 가까이 기다린 만남이었다. 권준수 교수님도 약을 처방해 주었다. 내 입장에서는 엄청난 용량이었다.
"용량을 줄여주시면 안 될까요?"
"안됩니다. 앞으로 계속 더 늘릴 거예요."
"앞으로 더요?"
대한민국 최고 권위자가 약을 먹으라니 어쩔 수 없었다. 그때부터 약을 열심히 먹었다. 빠지지 않고 몇 달을 계속해서 먹었다. 용량도 굉장히 많이.
처음 약을 먹고 나서 들었던 생각과 마음이 신기했다.
'수학 공부하고 싶다.'
약을 먹자 수학공부를 하고 싶어졌다. 머리가 쌩쌩~ 팽팽~ 돌아가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꺼져있던 엔진에 스위치가 켜진 것처럼, 시동이 걸린 뇌는 부릉~부릉~ 달리고 싶어 하는 야생마 같았다.
'뇌가 활성화되면 이런 느낌이구나.'
인터넷에 찾아보니 정신과 약이 그런 효능이 있다고 한다. 이 약 먹고 수능시험이나 국가고시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공부하고 싶은 마음은 며칠을 못 가고 금세 사라졌다.
약을 먹고 또 다른 변화가 있었다. 바로 꿈을 엄청나게 꾸는 것이었다. 어른이 되면서 꿈을 꾸는 횟수가 급속도로 줄었는데 정신과 약을 먹고 나서부터 밤마다 버라이어티 한 꿈들의 향연 속에서 꿈파티를 즐겼다. 꿈들도 굉장히 컬러풀하고 화려한 꿈들이었다. 공부하고 싶었던 마음과 달리 꿈파티는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됐다.
'내가 왜 이렇게 꿈을 많이 꾸지?'
잠을 자고 있는데도 생각은 깨어있는 듯한 느낌, 뇌가 상당히 각성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다고 피로감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중요한 건 증세가 호전되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렇게 약을 1년 정도 먹은 것 같다. 그리고 약을 안 먹은 지도 1년 정도 넘었다. 그런데 요즘 꿈을 많이 꾼다. 왜 그럴까?
삼식이 삼촌에서 송광호가 변요한에게 원대한 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말한다.
"원대한 꿈을 꾸러면 잠을 자야 꿈을 꾸지!"
요즘 꿈을 많이 꾸는 이유는 잠을 많이 자서 그런 것 같다. 지난 20여 년 동안 밤 12시에 자서 5시에 일어나 새벽예배를 출석했다. 자는 시간이 5-6시간이었다. 젊었을 때는 몸이 버텨줬는데, 최근에는 도저히 버티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잠자는 시간을 늘렸다. 7-8시간을 자려고 한다. 밤에 충분히 잠을 못 잤으면 낮잠으로 보충을 해야 했다. 그러지 않고는 몸이 견디기가 어렵다는 걸 느꼈다. 그런데 문제는 잠은 잘 수록 는다는 것이었다. 낮잠시간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낮잠을 자버리면 오후 스케줄에 큰 타격을 입는다. 무엇보다 자책감이 밀려온다.
'난 왜 이 모양일까? 난 게으르고 나태한 패배자야....!'
식욕, 수면욕 같은 기본적인 욕구를 컨트롤하지 못하니 하루를 제대로 매니지먼트하기가 어려워졌다. 삶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낮잠을 줄이기 위한 특단의 대책을 세웠다. 그 특단의 대책으로 오늘은 낮잠을 자지 않았다. 나만의 비책으로 어떤 성과를 이뤘는지는 한 달 뒤에 리뷰하도록 하겠다.
잠이 보약이란 말이 있다. 7-8시간은 자야 잠이 보약이 된다. 인생의 3분의 1은 잠을 잔다. 잠을 잘 자야 한다. 좋은 잠이 좋은 나를 만든다는 에이스침대 모델 박보검 배우의 말을 새겨들어야 한다. 꿀차보다도 더 보약인 꿀잠을 자서 몸과 마음이 튼튼해지는 우리가 되길 아-주- 바란다.
Have a good n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