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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청춘, 그리고 우리 4

12번 떨어진 운전면허

by 태리우스

믿기 어렵겠지만 나는 대학시절 운전면허를 12번 떨어졌다. 춘천에 있는 기능면허시험장에서 8번 떨어지고 도로주행시험을 강남면허시험장에 시험을 봤는데 4번을 떨어졌다. 강남면허시험장 주위에는 운전학원이 많았다. 학원에서는 합격할 때까지 계속 운전을 가르쳐주는 합격보장코스가 있었고, 20시간 정액제, 그리고 추가시간제가 있었다. 남자는 20시간 정도만 배우면 대부분 합격을 한다고 했다.

"아무리 운전 못하는 아줌마들도 3번이면 다 붙어요! 젊은 양반이니까 20시간만 끊어도 충분해요!"

나는 호기롭게 20시간짜리를 끊었다. 하지만 두고두고 후회하는 일은 합격보장 코스를 끊지 않은 결정이었다. 운전면허를 따는 데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난 운전에 기본이 없었다. 운전감각, 공간 계산능력이 부족했다. 기능시험에서 기억나는 건, 자꾸 기어를 잘 못 넣어서 비탈길에서 멈추거나, 주차를 못하거나, 각도를 못 맞추거나, 속도가 너무 높거나 그런 이유로 계속 떨어졌다. 기적적으로 기능시험을 합격하긴 했지만 어떻게 붙었는지도 모르겠다.


자존심은 있어서 1종 보통으로 시험을 봤다.

"남자는 스틱이지! 오토는 여자들이나 따는 거 아니야?"

"여자들이 집에서 밥이나 하지 도로에 차를 끌고 와서 말이야! 아우!"

남녀차별적인 발언이지만 그 당시엔 그런 생각들이 팽배했다. 여자들이 공간감각이 떨어져서 운전을 못한다는 인식이 있었지만 다른 사람은 몰라는 나는 그런 말을 할 수 없었다. 아줌마들도 3번이면 붙는 시험을 무려 13번 만에 합격했기 때문이다.

강남면허시험장에서 도로주행 시험에서 떨어질 때는 잊지 못할 기억들도 있다. 기어, 클러치, 가속페달의 개념을 잘 몰랐던 나는 운전면허 시험장에서 도로로 나가는 출구조차도 나가지 못한 채 굉음소리를 내며 멈춰있자 불합격을 당했다.

어떤 날은 너무 겁이 나서 시속 10km 거북이 운전을 하다가 떨어진 적도 있다.

또 어떤 날은 내가 왜 떨어졌는지도 몰랐다. 시험 볼 때마다 내 옆에 앉아있던 여자경찰관은 체크보드에 무언가를 계속 체크하고 차에서 내릴 때면 불합격 통보를 알려주었다.

내가 12번 떨어졌을 때는 엄마와 같이 면허시험장을 방문했었다. 엄마는 진지하게 담당경찰관을 만나서 물어보았다.

”아니, 우리 애가 집 차를 운전할 때는 잘하는데 왜 계속 떨어지는 거예요? “

”아드님은 운전의 기본이 안되어있습니다. 클러치의 개념도 모르고 있어요. “

엄마는 말을 잊지 못했다. 나는 기능을 합격하고 도로주행 연습을 위한 연습면허를 갖고 우리 집 차를 운전했다. 자동변속 오토차량 소나타였다. 오락실 게임처럼 하면 되는 거니까 곧잘 했지만 클러치를 밟고 기어를 변속해야 하는 수동운전은 못해도 너무 못했던 것이다. 그렇게 경찰관과 엄마의 대화가 끝나고, 또 일주일 뒤 시험을 보러 갔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지난주에 날 떨어뜨린 경찰관이 동일하게 나의 시험감독관으로 나타났다.

“제가 시키는 대로만 하세요. “

나는 경찰관이 시키는 대로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러면 안 되는데, 20년도 더 전 일니까. 기억나는 건 경찰관이 내리막길에서 클러치에 발을 떼라고 했나? 몇 번 정도 내가 이상한 행동을 하지 않도록 막아줬다. 그리고 나는 78점을 받아서 합격의 영예를 누리게 되었다. 1년 넘게 걸렸고, 운전면허 시험을 위해 우표처럼 생긴 접수증을 붙여야 했는데, 그 우표를 너무 많이 붙여서 너덜너덜거릴 정도였다. 합격하는데 든 비용만 200만 원 넘게 썼다. 운전면허학원비, 이동경비, 시간까지 따지면 평범한 남자가 30번은 딸 만한 시간과 돈을 들여서 겨우 따게 된 것이다. 아마 마지막 시험 봤을 때 여자 경찰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아직까지 운전면허를 못 땄을 수도 있다.

그때만 해도 제일 부럽고 존경스러웠던 분들이 택시 드라이버였다. 진심이었다. 그분들이 존경스러웠다. 얼마나 운전을 잘하시고 자신감이 있으면 운전을 직업으로 삼았단 말인가? 나는 2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여전히 그분들을 존경하며 종종 택시를 탈 때 나의 합격 스토리로 담소를 나누며 존경심을 표현한다.

그렇게 구사일생으로 운전면허를 따고, 군대를 가게 되었다. 논산훈련소에서 운전병을 뽑는 시험이 있는데, 면허시험장의 기능시험과 유사했다. 운전에 자신이 없었지만 하루 종일 걸어 다니는 보병보다야 낫겠지 하는 생각에 걱정반 기대반으로 지원을 했고 시험을 봤다. 하지만 역시 모두가 바라고 원하고 기대한 대로 나는 또 경사지에서 기어변속을 하지 못해 차가 멈췄고 떨어졌다.

사실 운전병 시험에 떨어진 것보다 더 나에게 평생 잊지 못할 후회를 남겨 준 운전 이야기가 있다. 논산훈련소 입소 첫날이었다. 우린 짧은 머리를 하고 학교 조회시간처럼 줄을 서있었다.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며 눈물을 훔치고 있는 엄마, 아빠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조교들이 우리들을 훈련소 안쪽으로 이동시키면 이젠 가족과 정말 작별의 시간이다. 그렇게 우린 외부와 차단된 훈련소 내부로 들어왔다. 그때 우리 앞에 어떤 여자 장교 한 명이 나타났다. 그리고 우리를 향해 말했다.

”여기, 서울 광진구 살고, 4년제 다니고, 운전면허 있는 사람 있나? 장군 운전병을 뽑으려고 한다!. “

그 장교는 내 옆 분단에서 말하고 있었다. 옆 분단에 말한 후 곧장 내 분단 앞으로 와서 말해주길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소심하게 그녀가 와주길 간절히 기다렸는데 그녀는 잠시 기다리더니 휙 돌아서서 떠나버렸다.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손흥민의 오른발 슈팅처럼 저 우주 멀리 저 멀리 날려버렸다. 그 일생일대의 기회를 놓치고 나는 논산훈련소에서도 힘들다는 후반기교육까지 추가로 받고 강원도 을지부대에 자대배치를 받고 DMZ가 있는 철책까지 가서 군생활을 했다. 한번 휴가를 가려면 밤새도록 강원도의 험준한 산맥을 따라있는 DMZ 철책을 따라 산을 타서 사회로 나와야 했다. 내가 만약에 그때 손을 들고 외쳤다면 어땠을까?

”여기 있습니다. 저는 광진구에 거주하며 4년제 대학생이며 운전면허가 있습니다. 충~성~! “

”오~! 내가 찾던 인재가 여기 있군! 그래 자네는 날 따라오게, 자네는 이제 VIP 별 4개 장성을 모실 VIP 드라이버가 될 거야. 하하하! 자네는 로또보다 되기 힘든 60만 분의 1의 확률로 최고 보직을 받게 된 거야! “

만약 그랬다면 그때 논산훈련소에서 함께 입대했던 모든 입대동기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논산훈련소를 빠져나왔을 테다. 하지만 나는 장군운전병이란 다이아몬드 같은 기회를 산산조각 박살 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돌아보면 장군운전병을 안 한 것도 다행이었다. 왜냐하면 운전을 못하는 나 때문에 장군 속이 얼마나 답답해졌을까 생각하면 오히려 잘 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그렇게 군생활을 하고 제대를 하고 복학을 했다. 돌아보니 내 대학시절 그 어떤 일보다 끈기 있게 했던 일을 꼽으라면 운전면허 시험이다. 남자는 반드시 운전면허가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끝까지 물고 늘어졌던 시험이었다. 그렇게 중요한 시험이면 평소에 준비를 제대로 했었어야 했는데, 나도 참 답답한 사람이다. 최근에 그 얘기를 아는 사람에게 해줬는데 의외로 칭찬을 들었다.

"끈기와 집념이 정말 대단하네요!"

그렇게 얘기를 해주니 괜스레 어깨가 으쓱했다.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한계를 알게 되고 포기도 빨라진다. 그래! 7전 8기란 말도 있는데 나는 12전 13기를 했으니, 그 정신으로 새로운 목표에 도전해 봐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시험이든 자격증이든 붙을 때까지! 나도 잘 몰랐던 나의 장점을 알게 되었다. 서툴고 오래 걸려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있구나. 실패만을 바라보고 나를 부정적으로만 생각했었다. 지인의 말을 통해 누군가의 말로 인해 나의 강점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나도 다른 사람에게 그런 말을 해주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실패를 통해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 게 진짜 실패다. 실패를 통한 배움이 있다면 더 이상 실패가 아닌 성공의 자양분이 된다. 실패를 통해 배우고 실패를 극복하여 성공을 맛보며 그런 성공의 경험을 차곡차곡 쌓는 삶이 멋진 인생이다.

실패하더라도 성공할 때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성공을 맛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실패들은 내 인생의 특별한 스토리가 되어주고 세상에 즐거운 이야기가 된다. 운전면허 스토리처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마침내 성공하는 이야기를 다시 만들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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