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공식품 이별하기
그러니까 6월의 어느 날, 유튜브를 보다가 결심했다. 초가공식품을 먹지 않겠다고! 여기서 초가공식품이란 햄버거, 치킨, 떡볶이, 피자, 빵, 라면, 짜장면, 탕수육 같은 정제탄수화물인 밀가루와 눈처럼 새하얀 설탕이 듬뿍 들어간 식품들을 말한다.
솔직히 나는 초가공식품 매니아였다. 좋아하는 음식들이 모두 초가공식품이었다. 그런데 초가공식품이 우리 몸에 얼마나 안 좋은지 알려주는 영상을 본 후로 먹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졌다. 그런데 그런 영상은 과거에도 많았고 예전에도 자주 봤었다. 그럴때마다 굳게 결심을 해보지만 며칠 못 가서 다시 도루묵 되는 게 우리 인생 아닌가? 올해에도 20년 넘게 나온 뱃살을 보면 생각했었다.
'과연 내가 죽는 날까지 이 뱃살을 뺄 수 있을까?'
나잇살이라고 나이가 들면 살은 계속 찌고 도무지 빠지질 않는다. 한번 올라간 체중은 내려오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나도 나이를 먹으면서 몸무게가 계속 늘었다. 키 167.7cm에 몸무게가 80kg을 넘어간 적도 있었으니까. 저녁에 임신한 여자처럼 배가 나오도록 신나게 먹고나서 체중계에 올라가면 78kg 정도였다. 그런데 신기하게 자고 일어나서 몸무게를 재면 76~77kg 정도로 줄어들었었다.
그랬던 나였지만 초가공식품을 안 먹은 지 100일이 넘게 지난 요즘 몸무게는 67~68kg 정도 왔다 갔다 한다. 거의 10kg이 빠진 것이다. 특별히 운동을 한 것도 아니다. 단지 밀가루, 설탕, 햄처럼 초가공식품을 일절 입에 대지 않았다. 아! 그리고 밤에 자기 전에 야식을 웬만하면 먹지 않았다. 너무 배가 고프면 바나나, 견과류를 먹긴 했다. 그마저도 견과류를 먹고 자면 밤새도록 단단한 견과류를 소화하는데 위가 힘이 들었는지 아침에 무척 피곤해서 먹지 않으려고 한다.
결과적으로 초가공식품만 안 먹고 10kg을 뺐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초심은 희미해지고, 점점 초가공식품이 먹고 싶을 때가 있다.
'저 달콤한 빵을 한 입 배어물면 얼마나 황홀할까?'
'저 바삭한 치킨, 너무나도 담백하겠다!.'
급상승한 침샘의 압력으로 입안에 침이 고여 꿀꺽 삼킨다. 하지만 먹고 싶은 마음보다 먹기 싫은 마음이 더 크다. 초가공식품을 안 먹어서 살이 빠진 내 모습을 보는 즐거움이 초가공식품을 먹으면서 느끼는 즐거움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지금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좋고, 그 모습을 잃고 싶지 않아서 초가공식품을 먹지 않는다.
우선 뱃살이 빠지면 제일 좋은 게 다리가 길어 보인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뱃살이 올챙이처럼 나오면 배꼽을 기준으로 바지가 뱃살의 곡선을 따라 흘러내리기 때문에 바지 허리단이 굉장히 내려간다. 그럼 다리가 짧아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뱃살이 빠지고 바지 허리단이 배꼽 위로 올라가면 그만큼 다리가 길어 보인다. 그 차이가 제법 크다. 아니 엄청나게 크다. 내 생각에는 10cm 정도 다리가 길어 보이는 효과가 있다고 본다. 사람의 바디라인에서 다리길이가 차지하는 비중은 굉장하다. 우린 어떻게든 다리가 길어 보이도록 노력해야 한다. 특히 나처럼 키작남들은 말이다.
여기서 잠깐 예전 여자친구와 포옹을 할 때가 생각난다. 추운 겨울 여자친구 집 앞이었다. 우린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은 호빵처럼 따끈따끈한 커플이었다. 여자 친구가 현관비밀번호를 누르기 전, 나는 그녀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내 품 안에 여자친구가 들어오자 가슴이 숯덩이에 꽂아두었던 꼬챙이처럼 벌겋게 달아오르고 심장은 쿵쾅쿵쾅 요동쳤다. 세상에는 우리 둘 만 있는 것 같았다. 그때 여자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키 170 안 되지?"
여자친구 말을 듣자마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얘는 얼마나 많이 안겨봤길래 안기자 마자 사람 키를 계산하냐?'
짜증, 창피, 민망함이 밀려왔지만 그 순간의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아서 잠자코 그녀를 안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겨울에 추워서 이불을 덮었는데, 이불이 짧아서 몸을 다 감싸주지 못하면 짜증이 나듯이 여자친구도 짜증이 났으려나? 여자친구가 뭐라 하든, 내가 키가 작든 말든 그 순간만큼 너는 내 여자라고 생각했기에 별 신경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키가 작은 남자에게 키에 대해 말하는 건 실례다. 뚱뚱한 여자에게 몸무게를 물어보는 것과 같은 이치 아닌가? 키는 자기 뜻대로 되는 게 아니다. 물론 내가 편식도 많이 하고 한참 키 클 때 무거운 거 엄청 들어서 나의 성장판에 만행을 저지른 건 인정한다. 하지만 키가 작은 남자의 키는 모른 척 이해해 주는 게 미덕중에 미덕이요, 복 받을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다이어트 성공 스토리로 돌아와 본다. 결론적으로 다이어트를 성공하기 위해서 가지 말아야 할 곳은 편의점과 패스트푸드점이다. 편의점의 95%는 가공식품이다. 편의점을 둘러보라 설탕과 밀가루로 만들어진 식품들로 가득 차있다. 우리나라에 편의점이 셀 수 없이 많기에, 편의점에 가지 말라고 하는 건 편의점 사장님들께 아주 죄송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정 배가 고프면 편의점에 들어가서 우유, 구운 계란, 고구마 같은 걸 사 먹어야 한다.
그리고 패스트푸드와 영원히 이별해야 한다. 햄버거, 피자, 치킨, 떡볶이, 라면, 짜장면 같은 밀가루 베이스에 설탕범벅인 음식은 끊어야 한다. 물론 쉽지 않다. 아니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할 수 있다. 도전해 보자! 인생에서 한 번의 전설적인 몸을 만들어보자!
초가공식품을 안 먹고 나서부터 단점은 우선 기운이 없다는 것이다. 맛있는 것들을 먹고 느끼는 쾌감이 없어지니 사람이 풀이 죽은 듯 다니게 된다. 과잉섭취된 에너지들이 살로도 갔지만 분명 삶에 넘치는 에너지를 제공해주기도 했기에 그만큼 파이팅이 느껴지지 않는 게 사실이다. 몸에 세포들이 평소에 받았던 영양분의 반도 안 받으니 얼마나 힘이 빠지고 기운이 없겠는가. 기운이 없고 배가 고프고 짜증이 나고 신경질이 나는 일들이 부작용이라면 부작용인데, 그것 또한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한다.
내 몸에 제공되는 에너지양이 작아져야 몸에 쌓여있던 지방들을 태우면서 살이 빠지는데, 그 과정이 보통 힘든 과정이 아닌다. 지방세포를 죽이는 일인데, 생명활동을 하는 세포가 죽는 일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어마어마한 양의 지방세포가 날마다 굶어 죽어나가는 게 살이 빠지는 거다.
살이 빠지면 신기하게도 먼저 근육이 빠지고 그 다음에 지방이 빠진다고 한다. 가뜩이나 기운이 없는데 근력까지 빠지니 더 기운이 없게 된다. 그래서 현명한 사람들은 이 타이밍에 운동을 한다. 운동을 하면 근육을 보존하고 지방을 더 효과적으로 없애버릴 수 있는 긍정적인 순환효과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운동도 습관이요. 운동도 체질인 것 같다. 나는 원체 땀을 흘리고 파이팅을 외치면서 에너제틱하고 격렬하게 움직이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운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래서 살이 빠지면서 근육도 빠져서 그런가 예전보다 기운이 없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운동은 하기 싫지만 살은 빼고 싶다면 먹는 걸 줄일 수 밖에. 운동도 안 하고 먹는 것도 안 줄이면서 살이 빠지길 바라는 건 말 그대로 도둑놈 심뽀다.
살이 빠지는 건 좋지만 힘이 없으면 안 된다. 근육이 빠지는 건 관절에도 안 좋을뿐더러, 삶의 활력마저 줄어들고, 자신감도 줄게 만든다.
그래서 운동을 틈틈이 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힘든 운동을 하면 기운이 생긴다. 우리 몸은 참으로 신기하다. 아무쪼록 사람은 운동을 해야 한다. 땀을 흘리며 1시간은 꼭 운동하라고 나의 정신과 주치의 교수님이 말해줬었다.
결론은 이미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건강한 식습관과 운동이다. 올해가 100일도 안 남았다. 연말이 다가오고 있고, 연말에는 여러 약속들이 잡히면서 살은 점점 더 불어날 예정이다. 그렇게 연말에 최고 몸무게를 찍고 새해를 맞이하고 다이어트를 계획하고 실패하고 설날에 다시 그리고 실패, 3월에 다시 그리고 실패, 여름이 다가오는 5월에 다시 도전 그리고 실패,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속되는 다이어트의 실패 속에서 한 번은 실패를 넘어 빛나는 승리를
경험하는 우리가 되길 바라고 응원한다.
We can make our legendary body!
ps. 사실 내가 절제력이 강하고 의지가 강해서 초가공식품을 먹지 않게 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유를 정확히 알 순 없지만 하나님께서 나의 입맛과 마음, 생각을 바꿔주셨다고 믿는다. 살을 빼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올려드린다. 할렐루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