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담자의 언어
*공지*
본 시리즈는 초심상담자가 상담을 통해 배우고 느끼는 것들을 일기로 기록한 것입니다.
매우 주관적이고 사적이며 자기 맘대로인 글이기때문에
'상담사로서의 전문성'보다 고군분투하는 개인의 기록으로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미리 고백하건데 나는 단단한 사람이 아니다.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은 적은 있었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바뀌었다. 물론 내담자가 말한 '단단함'은 내가 생각하는 '단단함'과 다르기 때문에 그의 눈에 나는 '단단한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아니에요~ 제가 무슨~" 이라고 말하기보다 "단단함은 어떤 것일까요?" 라고 묻는다. 상담 장면이 아닌 일상 생활에서 단단하다는 말을 들으면 두 손을 휘저으며 아니라고 겸손을 떨었겠지만 '상담자'로서의 나는 나보다 내담자가 더 궁금하고 중요하다.
내담자에게 나는 단단해보일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보이기를 자처하기도 하고 '나'라는 도구를 통해 내담자가 단단함을 생각하고 또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단단함'이 핵심이 아니라는 점이다. 방금 전에 단단함을 생각하고 느낄 수 있도록 한다면서 그게 핵심이 아니라니, 이게 무슨 소리야 싶겠지만 나는 '단단함'을 자처하지 않았다. 그저 내담자가 '단단하다'라는 표현을 사용했을 뿐이다.
상담을 하다보면 이런 식으로 내담자의 언어를 마주하는 경우가 많다. 아니, 상담 자체가 그렇다. 우리는 한국어를 사용하고 공통적이고 일반적인 의미에서 서로의 말을 이해하지만 사실 그 '공통적이고 일반적인' 이라는 게 참 애매하다. 친구들과의 대화에선 그렇겠거니, 그렇구나 하면서 대애충 넘어가지만 상담 장면에서는 그 애매함을 가만히 두지 않는다. 넘겨선 안된다. 내담자의 말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다. 숨기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단단함'이 아닌 무엇을 자처했길래 내담자가 '단단하다'고 말했을까?
상담 장면에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가 "선생님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선생님은 어떠셨어요?"와 같이 나의 생각이나 의견을 묻는 것인데 정말 어려운 질문이다. 질문 자체가 어렵다기보다 대답이야 할 수 있지만 그 대답이 상담을 어지럽힐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친구들의 고민을 들어줄 때야 "나라면 이렇게 하겠다. 나는 안 그럴 것 같다." 며 온갖 이야기를 늘어놓겠지만 상담 장면에서는 다르다. 내담자들은 상담자의 의견을 정답이라 여기기도 하고 자신과 다르다고 단정짓는 계기로 삼기도 한다. 어쩔 땐 평가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상담의 흐름이 내담자가 아닌 상담자에게 오는데 갓 수련을 시작했던 1년 전의 나는 그 흐름에 아주 가뿐히 올라타곤 했다. 내담자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고 힘이 되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구구절절 나의 이야기를 늘어 놓다가 소중한 상담 시간을 다 쓴 적도 있다.
뭐 어때요, 묻는 말에 열심히 대답한거잖아요!
하하, 맞다. 열심히 성심성의껏 답했다. 그리고 그 내담자는 다음 상담에 오지 않았다. 물론 상담이 이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그 상담이 좋았니 나빴니 평가할 수는 없지만 나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상담 마무리에 내담자가 보인 친절이 가득 묻어나는 눈웃음을^^ "선생님 이야기하는 거 좋아하시나봐요." 라는 말을.
조언은 상담이 아니다. 하지만 초심 중의 초심인 나는 뭐라도 해야할 것 같아서 무슨 말이라도 건네야 할 것 같아서 조잘조잘 내 이야기를 읊어댔다. 진정으로 해야했던 일은 그 질문을 되돌려 주는 것이었다. 어떻게 하겠냐 물으면 내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을 지 궁금하다고 묻고 나에게 어땠냐 물으면 당신은 어떠했냐고 다시 물어야 했다. 내 이야기는 그 다음이어야 했는데 - 물 만난 고기마냥 신나게 떠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물 만난 고기가 아니라 물 없는 바닥에서 파닥거리는 고기였다.
왜 단단하다고 생각해요? 어떤 부분이?
사실 이 질문도 좋은 형태는 아니다. 내담자가 혼란스럽지 않게 간결하게 하나만 질문하는 게 좋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번엔 물었으니 됐다. 나의 질문에 내담자는 꽤 긴 시간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아까 말씀하신 것 중에-" 그날의 상담은 그때부터가 진짜였다. "아니에요, 제가 무슨~"이라며 나의 것으로 받아들였다면 정작 중요한 이야기는 영영 듣지 못하거나 아주 나중에나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상담을 공부하면서 지금까지 내가 해온 고민상담이 얼마나 형편없고 자기중심적이었는지 깨닫는다. 누구보다 '리스너'임을 자부했던 나는 그냥 내 이야기가 하고 싶은 '소심한 토커'였다. 내 이야기를 하기 위해 타인의 소스가 필요했고 그들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척했지만 결국엔 내 이야기로 끝냈다. (물론 이해하지 않고 공감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다른 사람의 언어를 궁금해하는 것이야 말로 상담에서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자세라는 걸 매번 깨닫는다. 꼭 상담 장면에서만이 아니라 일상 대화 속에서도 '진짜 리스너'가 되기 위해 노력중이다.
진짜 듣는 사람은 귀로만 듣지 않는다.
머리로 듣고 마음으로 듣고 눈으로 듣는다.
내담자의 언어를 온 몸과 마음으로 듣기 위해 노력해야한다.
그래야 진심으로 내담자를 사랑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