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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솔 Jan 24. 2022

EP.2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를 기다려 주는 일

0(zero)의 나를 마주하기

*공지*

본 시리즈는 초심상담자가 상담을 통해 배우고 느끼는 것들을 일기로 기록한 것입니다.

매우 주관적이고 사적이며 자기 맘대로인 글이기때문에

'상담사로서의 전문성'보다 고군분투하는 개인의 기록으로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자책'

그는 아주 오랫동안 나의 시간을 채우는 일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침대에서 일어나 몸을 일으키는 일조차 버거울 때

가만히 누워 시간을 보내는 게 죄스러워서 선택한 일이었다.


"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은데 저는 너무 게을러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요."


얼핏 보면 그럴듯한 말이지만 이 말에는 어색한 곳이 있다.

'게으르다'와 '할 수 없다'

두 단어는 종종 같이 사용된다.

할 수 없을만큼 지친 사람들이 자신을 게으르다고 탓한다.


"한 것도 없는데 왜이럴까요? 너무 힘들어요. 제가 너무 싫어요."


'번아웃'이라는 단어가 유행처럼 번지고

온 국민이 번아웃에 시달릴 정도로 무조건 '달리기'를 강요하는 이 나라에서

우리는 살아내기 위해, 그저 살아있기 위해 에너지를 다 쓰고 있는 게 아닐까?


쉼은 곧 나태함이고

공백은 게으름이며

잠은 죽어서도 잘 수 있다 말하는 열정 과잉의 시대를 나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무엇을 해야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할 시간도 주지 않고

앞서 가는 누군가의 뒤를 쫓아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채 꾸역꾸역 시간을 견뎌내는 삶.

우리는 우리로 존재함에 자책을 느낀다.

숨 고를 시간마저 사치라 여기며 턱 끝까지 올라온 숨을 참고 형체 없는 목표를 향한다.



 그냥 다 그만두고 싶어요. 그만하고 싶어요. 죽고 싶어요


왜 달리고 있지? 무엇을 위해 달리고 있지? 끝은 어디에 있지? 끝은 무엇이지? 끝은...있나?

그리고 나즈막이 뱉는 한 마디,  "왜 살아있지?"


상담은 조언을 주는 일이 아니다. 조언 할 바에야 침묵을 유지하는 게 낫다.

그만두고 싶다는 사람에게, 죽고 싶다는 사람에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어떤 말이 필요할까?

거창한 말은 필요하지 않다.

손을 잡아줄 수는 없지만 의자를 살짝 당겨 앉아 책상 위의 손을 조금 더 가까이 옮긴다.



숨 좀 쉬고 싶다. 그쵸?


숨이라는 단어에 자연스레 호흡을 뱉게 되고 다시 숨을 들이 마실 때, 우리는 종종 눈물을 흘린다.

이 단순하고 별 거 아닌 숨이 살아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진다.


호흡마저 잊은 채 너무 오래 달려오지 않았던가

그 짧은 숨 한번 고르지 못하게 자신을 너무 미워하지 않았던가

살아있음에 무감각해질만큼 살아오지 않았던가


주변 사람들에 비해 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한 나의 지난 날이 비참할 정도로 보잘 것 없어서 '죽음'말고는 다음을 생각할 수 없었던 날이 있었다. 언제 따라잡지, 어떻게 살아야하지, 뭘 해야하지, 자신에 대한 의심은 계속 늘어만 갔다. 있는 그대로의 나, 아무것도 아닌 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를 제대로 봐주지 않았다. 볼 수 없었다. 끔찍했다. '텅 빈 껍데기' 그게 바로 나였으니까.


하지만 '텅 빈' 그 상태야말로 시작하기 가장 좋은 상태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물론 좀 늦게 알긴 했다.)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무엇이든 넣을 수 있다. 내가 원하는 것들로 채울 수 있다. 내가 될 수 있다. 0(zero)의 나를 마주해야만 우리는 다음으로 갈 수 있다. 그러니까 아무것도 아닌 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를 기다려줘야 한다. 충분히 실망하고 슬퍼하고 미워하고 그러다 문득 '그럼 이제 어떡해야하지?' 라는 생각이 들 때 비로소 다시 걸을 수 있다. (처음부터 달리지 말자. 걷자. 관절에 무리가는 일은 가능한 줄이자)



자책은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않아요. 미움뿐이에요.

아무것도 아닌 나를 마주했다면 자책은 멈추도록 하자. '그 때 그렇게 할 걸, 이 때 이렇게 할 걸, 이랬다면? 저랬다면?' 후회도 그만하자.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저는 좀 혼나야 해요." 혼난다고 해서 힘이 생기거나 용기가 나진 않는다. 오히려 더 빼앗을 뿐이다. 자책은 신기한 녀석이라 반복할 수록 몇 배씩 커진다. 자책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든다. 나중엔 자책만 하는 나를 자책한다. 


그래서 나는 자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의심을 거두고 질문을 시작한다.

나를 탓하지 않고 나에게 묻는다.

당장 답할 수 없어도 괜찮다. 기다린다.

생각이 나지 않아도 괜찮다. 기다린다.

기다려 준 적 없는 나를 기다리는 일부터 시작한다.


시간이 필요하다. 모든 일이 그렇다.

그 중에도 '나의 일'은 가장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상담자로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역할은 '버티기'다.

기다리고 버티고 끝까지 함께하는 일.

이 사람만큼은 늦는다고 나무라지 않는구나 믿을 수 있도록 항상 그 자리를 지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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