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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솔 Feb 28. 2022

EP.3 다정함도 따듯함도 체력이다

상담자의 자기 관리

*공지*

본 시리즈는 초심상담자가 상담을 통해 배우고 느끼는 것들을 일기로 기록한 것입니다.

매우 주관적이고 사적이며 자기 맘대로인 글이기때문에

'상담사로서의 전문성'보다 고군분투하는 개인의 기록으로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꽤 오랜만에 브런치 페이지를 열었습니다.

약 한달만이네요.

분명 매주 1개의 글을 발행하겠다고 굳게 다짐했는데그 다짐이 무색하게 한달동안 무소식이었죠.

'꾸준함'은 참으로 어려운 마음인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갖고 싶은 마음이지만 쉽게 가질 수 없는 마음이니까요.


오늘은 조금 편안하게 글을 쓰고 싶습니다.

원래도 개인적인 글을 쓰는 사람이지만 오늘은 저의 사족이 많을 예정이거든요.


여러분은 다정함도 체력이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저는 주변인들에게서 어쩜 그렇게 타인에게 다정하고 친절할 수 있냐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그 말 뒤에 꼭 붙는 말이 바로 "다정함도 체력이야~"인데요.

칭찬받은 걸 자랑하려는 건 아닙니다. 단지 제가 그 체력을 많이 간과했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에요.


음, 상담자가 아닐 때도 저는 타인의 이야기를 경청하다 못해 과몰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친구들의 고민을 듣다가 먼저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평소라면 잘 하지 않을 험한 말을 와다다 쏟아내기도 하는 사람이었죠.

아무리 피곤해도 제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면 시간을 내고 에너지를 끌어 모아 들었습니다.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일 때엔 몸을 사리긴 했지만 그건 제 주관적인 생각일 뿐이고

걱정어린 조언을 참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다 병난다구요.


저는 그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제가 가진 유일한 능력이 듣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하핫, 지금 생각하면 참 오만했네요.)

피곤하고 힘들 때에도 사람들 앞에 앉았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이야기를 듣고 대화를 나눴습니다.

근데 그러다 정말 병이 났습니다.


제 글을 오래 읽어주신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저는 우울증과 조울증 진단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ㅎㅎ 놀라셨을까요?



어떻게 상담을....하시게 되셨어요?



아팠단 이야기를 잘 하진 않지만

블로그나 유튜브를 통해 절 알게 된 분들께서 비슷한 질문을 주실 때가 종종 있습니다.

조금 쑥스럽지만 전 제가 상담자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는 시간들을 보내왔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부족한 점도 많고 아팠던 만큼 신경써야 할 부분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길이 제가 열심히 싸워온 시간들의 결말이자 NEXT STEP이라고 생각해요.


상담자의 길은 제게 '그냥 듣기'란 없다는 걸 알려줬습니다.

제가 아팠던 이유는 마구잡이로 듣기 바빴기 때문입니다.

물론 타인이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건, 그 자체로도 위로가 되고 힘이 됩니다.

그래서 제가 부족한 모습으로 마주 앉아있음에도 칭찬을 들었던 거겠죠?

하지만 타인의 힘들고 외로운 이야기를 저는 제대로 소화할 줄 몰랐습니다.

저와 분리할 줄 몰랐어요.

속절없는 마음은 제 안에 쌓여만 갔어요.

그러다 병이 난 겁니다. 제대로 소화하지 못해서 다시 토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 무렵, 사람들과의 관계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많이 멀어지고 끊어지고 그러다 아슬아슬한 마음의 문턱에 서 있기도 했습니다.


그때 문득 떠오른 말이 바로 "다정함도 체력이다" 였습니다.

네, 저는 에너지를 채울 줄 모르고 긁어 모아 어떻게든 쓰기 바빴습니다.

힘들었을텐데 스스로를 탓하기 바빴습니다.

유일하게 이 세상에 존재해도 된다고 여겼던 '타인의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는 타이틀을 잃었으니까요.

근데 진짜 타인의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타인을 타인의 자리에 둘 줄 알아야 했습니다.

저는 아주 오랫동안 그걸 모르고 살았거든요.

상담자의 길을 좋아하지만 다시 돌아오기까지 긴 시간이 걸린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습니다.

무너질 것 같았어요.



사람을 좋아하고 돕고 싶고 함께 살고 싶지만 다시 무너지면...어떡하지?
그럼 이젠 나만이 아닌 다른 이의 탓을 할 거 같은데...



근데 신기하게도 상담 공부를 하면서 배웠던 가장 기본적인 태도는 

"내담자의 이야기와 나를 분리하기" 였습니다.

지칠 것 같을 땐 쉬어가야 하고 

피곤할 땐 상담을 하지 않아야 하고 

평소에는 남들보다 더 자기 마음에 신경을 써야하고

다른 누구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을 줄 알아야 하는 사람이 바로 상담자였습니다.


아직 잘 하진 못하지만 저는 조금씩 저의 한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중입니다.

'한계'라고 표현하니까 조금 부정적인 느낌인데 아닙니다.

저는 초인이 아닙니다. (이건 스스로에게 던지는 경고이기도 합니다 ㅋㅋㅋㅋ)

저는 모두를 도울 수 없습니다.

저는 누군가를 구할 수 없습니다.

저는 저 한 사람의 생을 살기에도 충분히 힘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길을 걷고자 한다면 

우선 스스로를 돕고 

스스로를 구하고 스스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타인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기 전에 저의 이야기에 집중해야합니다.

잘 듣는다는 맹목적인 공감이나 과몰입이 아니라는 걸 이젠 압니다.

그럼 무엇이냐?


상대방이 어떤 이야기를  나에게 하는 가를 생각하며 듣고

그 이야기 속에 숨어 있는 상대방의 진심, 감정을 알아차리고 

결론이나 섣부른 조언이 아닌 스스로 그 이야기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생각해 볼 수 있도록

적절한 질문을 하는 것부터 시작이겠죠.


결국 듣는다는 건 말하는 사람이 주체가 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아닐까

감히 생각해봅니다.


아! 물론 여기서 말하는 건 전부 상담 장면에서의 이야기입니다.

친구들과 이야기 할 때는 저 역시 편하게 수다 떠는 모습이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한달은 저에게 조금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직장이 생겼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시간과 에너지가 절실히 필요했습니다.

이론적으론 아는데 마음이 잘...안됐어요.

무리를 좀 했습니다.

그리고 뼈저리게 깨달았죠.


급할 거 없다.


저는 이 길을 오래 걸어 갈 거고 

항상 진심이고 그 진심을 제 손으로 망가뜨리고 싶지 않아요.

마음이 앞서 제가 감당할 수 없는 만큼의 일은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다정함도 체력이다.

따듯함도 에너지다.


저는 체력과 에너지를 기르러 가보겠습니다.

더 다정하고 따듯한 사람이 되는 것보다 

지금 갖고 있는 마음을 잃지 않는 게 우선이니까요.


오랜만의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항상 응원하고 건승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우리 우리 인생을 살아요.





- 늦은 밤과 이른 새벽 그 어딘가에서 진솔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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